权香花
2020-07-20 18:55:20 출처:cri
편집:权香花

감주로 자립한 양주

길림성 왕청현에 살고있는 고창남씨와 그의 안해 전복숙씨는 조선족전통음식인 감주장사로 생활난을 이겨내고 생활을 자립해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고있다.

1970년에 부대생활을 끝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영예군인 고창남씨는 안해와 손잡고 질 좋고 맛 좋은 감주를 빚어 팔아 연길시는 물론 멀고 먼 흑룡강성, 할빈, 해림, 목단강 등지의 고객들도 차를 몰고 와 감주를 실어가군 하는 호황을 맞고있다.
1970년, 고창남은 부대생활을 마치고 왕청현 대흥구진 쌍하촌으로 돌아왔다. 그는 선후하여 하마탕곡물창고와 왕청기름공장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월급 800원으로는 도저히 가정의 정상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특히 고중에 다니는 두 딸애의 뒤바라지를 위해 푼돈도 아껴가면서 써야 했다. 그는 친척들의 알선대로 감주장사를 하는것이 가장 적절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들 부부는 나라에 손을 내밀지 않고 내손 내 힘으로 실속있게 감주장사를 해 치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일은 생각처럼 되는것이 아니였다. 2006년부터 감주를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실패에 실패를 얼마나 거듭하였는지 모른다. 처음에는 누룩을 비롯한 재료의 합당한 배비가 부족하고 감주의 맛이 좋지 않아 고객들의 평판이 좋지 않았다.

자금난으로 냉장고를 준비하지 못하다보니 만든 감주가 변해서  몇천근이나 되는 감주를 부득불 버릴 때도 있었다. 그들은 이에 실망하지 않고 경험있는 사람을 청해 배웠으며 고객들과도 허물없이 의견을 물으면서 해결방도를 찾아 부단히 감주의 맛과 질을 높혔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고 감주장사는 드디어 호황을 맞이했다. 밤중에도 전화가 오면 어김없이 감주를 날라다 주고 눈보라 휘몰아치는 겨울이나 무더운 여름이면  밀차에 확성기를 달고 다니며 팔기도 했는데 그후엔《감주요》하는 소리만 나도 기다렸다는듯이 사람들이 몰려와 너도 나도 사갔다. 그들 내외는 또 신용을 지켰다. 한번은 고객이 10원을 낸다는것이 50원짜리를 내밀었다. 전복숙씨는 돌아가는 손님을 불러세우고 40원을 되돌려 주었다.

그들 량주는 이렇게 14년간 감주를 만들어 팔았다. 이제는 입소문이 돌아 밖에 나가 팔지 않아도 고객들이 줄을 서서 감주를 사갔다.

고객들의 만족과 선호에 갈수록 힘이 솟구친다는 고창남씨는 감주 젓는 밥주걱을 놓을새 없이 안해를 도와 걸싸게 일하군 한다. 현재 고창남량주는 왕청현교육국 아파트를 사고 10년전에 쌍하촌 낡은 단층집으로부터 왕청시내로 이주하여 왔다.

주내와 타성의 감주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딸 고향화와 사위 리명수도 열심히 부모들의 일손을 돕고있다. 고창남 양주는 이제는 자식들의 뒤바침을 위해 감주를 빚고있다. 

길림성왕청현신문보도센터/특약기자 :리강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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