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7월 네 번째 주의 <청취자의 벗>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과 함께하는 아나운서 박은옥(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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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월
갑:
7월 23일은 양력 2020년의 204일째 되는 날로 올해가 끝날 때까지 161일 남았습니다.
역사상 7월 23일은 건국의 날인데요, 이집트의 건국의 날, 미국의 체육축제, 리비아의 혁명의 날 즉 건국의 날이 7월 23일 이날입니다.
2015년의 7월 23일 이날, '청결공의 날 온라인 명절'이 설립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1921년 7월 23일,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가 상해에서 열렸습니다.
1937년 7월 23일, 모택동 주석이 글 "일본 진공을 반대하는 방침과 방법, 전도"를 발표했습니다.
2020년 7월 23일, 일본 도꾜 도정부는 올림픽경기장에 점등 행사를 하게 됩니다.
도꾜올림픽조직위원회는 21일 점등행사는 올림픽경기대회의 초읽기 1주년을 기념하고 또 내년의 올림픽경기대회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모든 선수 그리고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모든 의료 인원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도꾜 올림픽경기대회는 올해 7월 24일 개막하기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2021년 7월 23일로 미뤘습니다. 일본의 코로나19 환자는 7월 이래 여전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21일 도꾜도의 신규 확진자는 237명이었습니다.
2. 지명과 연변
계속하여 ‘지명으로 읽는 이민사’, ‘연변 100년 역사의 비밀이 풀린다’ 이런 제목으로 지명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중국 동북부와 조선반도 북부에 널리 알려져 있는 지명 '오랑캐령'의 이야기입니다.
"오랑캐꽃 피는 아흔아홉 굽이의 고갯길"
꼭 마치 악마의 저주가 내린 것 같았다. 옛날 그 꽃이 필 때면 두만강 남쪽의 마을에는 어김없이 난리가 일어났다고 한다. 이맘때면 양식(糧食)이 떨어진 오랑캐가 북쪽에서 약탈을 하러 내려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꽃은 본의 아니게 난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되였으며 차츰 고운 모양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혐오스런 존재로 떠올랐다.
나중에 이 꽃은 제비꽃이라고 하는 원래의 이름을 버리고 오랑캐꽃이라고 불렸다. 아예 꽃의 뒷모양이 흡사 머리채를 드리운 오랑캐의 뒷머리와 같다고 저주하듯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오랑캐는 옛날 두만강 연안과 그 북쪽에서 살던 여진족(女眞族)을 지칭, 그들을 미개한 종족이라는 뜻으로 멸시하여 이르던 말이다. 오랑캐라는 이 명칭이 생긴 데는 여진족의 시조가 본래 개와 사람 사이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이 오랑캐라고 불렸다는 설화가 전하고 있다.
“한 재상이 얇은 껍질로 만든 북을 놓고 이 북을 찢지 않고 치는 사람에게 딸을 준다고 했다. 종잇장처럼 얇아 자칫하면 찢어지는 북을 두고 누구도 감히 언저리에 얼씬하지 못했다. 나중에 개가 와서 꼬리로 북을 쳤는데 수북한 털 때문에 북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 재상은 별수 없이 딸을 개와 혼인시켰다. 그런데 개는 밤마다 딸을 발로 할퀴고 입으로 물어뜯었다. 드디어 이를 참지 못한 딸은 개의 네 발과 입에 따로 주머니를 씌웠다. 이들이 자식을 낳자 북쪽으로 쫓겨나 후손을 퍼뜨렸다. 그 후 다섯 주머니의‘오낭五囊’을 낀 개狗라는 의미인 ‘오낭구’가 ‘오랑캐’로 변해 북쪽에 사는 사람들을 그렇게 불렀다.”
설화는 단순히 지어낸 것이 아니며 그 속에는 역사의 진실이 숨어있다. 여진족에게서 당했던 과거의 수모가 응어리로 되어서 그러한 이야기가 생겨났으며 나중에 항간에 널리 퍼지면서 ‘오랑캐’라는 이름이 고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오랑캐를 고대하고 있은 것처럼 그맘때면 시기를 어길세라 피는 제비꽃에 미운털이 박혔으며 따라서 ‘오랑캐’의 모자를 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랑캐의 이름자는 꽃이 아니라 또 산에도 달려있다. 일명 ‘오랑캐령’이 바로 그러하다. 오랑캐가 북쪽에서 넘어오던 산 아니, 해마다 그맘때면 꼭 오랑캐꽃이 피는 산이라고 그랬을까…
아무튼 ‘오랑캐령’은 오랑캐꽃이라는 이름처럼 오랑캐와 연줄이 닿아있는 게 확실하다. 정작 오랑캐령은 오랑캐가 아닌 조선인 이민들과 더불어 덩달아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이민사 하면 식탁에 오르는 된장이나 고추장처럼 의례히 따라다니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간도’, 즉 연변지역에 살던 조선인들의 비참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대표적인 소설 “탈출기”(최서해 작, 1925)에는 이런 단락이 있다.
“두만강을 건너고 오랑캐령을 넘어서 망망한 평야와 산천을 바라 볼 때 청춘의 내 가슴은 리상의 불길에 탔다. 구수한 내 소리와 헌헌한 내 행동에 어머니와 아내도 기뻐하였다.
오랑캐령에 올라서니 서북으로 쏠려오는 봄새 찬바람이 어떻게 뺨을 갈기는지.
‘에그 칩구나! 여기는 아직도 겨울이로구나.’
어머니는 수레위에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무얼요. 이 바람을 많이 마셔야 성공이 올 것입니다.’
나는 가장 씩씩하게 말하였다. 이처럼 나는 기쁘고 활기로왔다.”
오랑캐령은 이처럼 두만강을 처음 건너는 사람들마저 귀에 익히고 있는 명물 지명으로 되고 있었다. 그런데 오랑캐령은 그 명성과 위상에 걸맞지 않게 지명지(地名志)에서 그 위치나 이름을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
“민간에서만 불리는 이름이니까 그렇지요.” 연변의 지리와 역사에 밝은 연변대학 역사학부 방학봉 전임교수는 이렇게 해석했다.
오랑캐령은 백의민족의 백년 이주의 행로에 경계의 상징처럼 되었던 산이며 그래서 옛날부터 우리들만 부르던 지명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랑캐령이 특정된 어느 고개가 아니라는 설이 있다. 두만강 기슭을 따라 칡넝쿨처럼 줄레줄레 뻗어 내린 남강(南崗) 산맥의 산줄기를 하나로 아울러 오랑캐령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두만강을 건너고 다시 이 산줄기를 넘으면 비로소 ‘오랑캐’의 넓은 땅이 펼쳐진다. 오랑캐령은 남부여대하며 두만강을 건넜던 겨레들이 희망의 땅 ‘간도’에 가기 위해 꼭 넘어야 할 고개였다.
그런 연장선에서 나온 설이 아닐지 한다. 항간에서는 해관령(海關嶺)을 오랑캐령으로 알고 있다. 해관령은 삼합에서 서북쪽으로 10여㎞ 상거, 삼합에서 용정 쪽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가 이곳을 지난다. 간도의 오지로 향한 두만강 일대의 제일 유명한 통로이다. 가파른 골짜기를 따라 굽이굽이의 길이 오불꼬불하게 이어진 해관령은 말 그대로 아흔아홉 관문의 해관을 지나는 것처럼 고생스럽다. 아무튼 해관령은 이런저런 상징성 때문에 오랑캐령이라는 이름을 혼자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또 해관령 남쪽의 오봉산(五峰山)을 오랑캐령이라고 주장한다. 오봉산은 다섯 봉우리가 있다고 해서 불리는 이름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해관령 남쪽에 잇닿은 오봉산을 해관령과 하나의 동일한 산으로 오인했기 때문에 생긴 설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오봉산의 원래의 이름은 개똥바위산으로 알려진다. 꺼림칙한 이 이름에는 역시 오랑캐꽃처럼 그럴만한 사연이 깃들어 있었다. 옛날 개똥바위산 아래에 있던 부암동(富岩洞)에는 웬 일인지 마을사람들이 까닭 없이 죽어나가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언제인가 마을을 지나던 늙은 스님이 산에 구렁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주봉 비탈에 암자를 지으며 구렁이의 천적인 독수리의 이름을 따서 주봉을 독수리봉이라고 작명한다. 들쑥날쑥한 다섯 봉우리의 산은 그때부터 오봉산이라고 달리 불렸다는 것이다. 정작 ‘개똥바위산’이라는 지명은 버림받은 ‘개똥’처럼 남쪽의 산봉우리로 옮겨졌고 훗날에는 그 이름마저 바뀌어져 개바위산으로 되었다고 한다. 거짓인지 진짜인지 몰라도 8.15 광복 후 암자를 철거할 때 암자 밑에서 구새통 같은 큰 구렁이가 나왔다는 풍설은 지금도 항간에 파다히 전한다.
오봉산의 이 지명 이야기는 어쩌면 오랑캐령에 있는 비밀의 실마리를 빠끔히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정말이지 오랑캐령 역시 개똥바위산처럼 그 어떤 다른 이름에 꽁꽁 묻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교롭게 개똥바위산처럼 꺼림칙한 이름의 산이 오봉산처럼 바로 해관령의 북쪽에 잇닿아 있다. 만족어로 일명 ‘돼지의 머리꼭지’라는 의미라고 지명지에 기록되어있는 ‘올량합령(兀良哈嶺)’이다.
기실 올량합은 만주족 말로 ‘돼지의 머리꼭지’가 아니라 ‘변경지역의 주민’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일본학자 아베 다케오(安部健夫)는 올량합은 만족어의 ‘uJan’ 다시 말해서 몽골어의 ‘uriyan’이며 ‘변계, 변연’의 뜻과 이어져 ‘변경지역의 주민, 변경지역의 오랑캐’라는 의미라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펴고 있다.
올량합은 그 의미가 구경 무엇인지를 떠나서 부족 이름으로 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조선이조실록(朝鮮李朝實錄)”은 당시 여진인(女眞人)을 알타리(斡朵里), 올량합(兀良哈), 여진(女眞), 올적합(兀狄哈) 등 여러 부족으로 나누고 있다.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의 기록에 따르면 이 가운데의 올량합은 한때 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압록강 상류에 이르는 곳에 분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부족이 바로 조선 초기에 흉년이 들면 조선의 변방을 자주 침입했던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제비꽃에 진드기처럼 매달린 오랑캐의 이름은 여진족, 아니 그 보다 여진족의 부족인 올량합(兀良哈)을 지칭하던 말이었다. 오랑캐는 올량합이며 따라서 올량합령은 ‘오랑캐령’이였던 것이다.
사실 이런 어원적인 시비를 떠나서 올량합령은 해발 1,085m로 해관령이나 오봉산을 제치고 부근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다. 진짜 ‘돼지의 머리꼭지’처럼 유표한 산꼭대기는 강을 건넌 사람들에게 방향을 가리키는 최적의 지상 표지물로 되고 있다. 아흔아홉 굽이의 고갯길에 상징적인 지명 패쪽을 붙인다면 오봉산이나 해관령이 아니라 올량합령이 적임자라는 얘기가 된다. 더구나 해관령은 고개라기보다 좁은 산 어구를 가리키며 또 1915년을 전후하여 이곳에 해관이 설립되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진실한 오랑캐령은 그렇게 베일에 가려졌던 윤곽을 마침내 세상에 드러내고 있었다.
잠깐, 오랑캐령의 이야기는 채 끝나지 않았다. 오랑캐령의 북쪽비탈에서 분명 길을 내리는데 이상하게도 내리막 아닌 오르막에 잘못 들어선듯하다. 착시현상 때문에 높낮이가 다르게 보이는 일명 ‘괴이한 비탈길’이 조화처럼 오랑캐령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은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오랑캐령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별난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아흔아홉 굽이의 힘든 고개를 넘은 이주민들의 눈앞에는 바야흐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하나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갑:
네, 중국 동북부와 조선반도 북부에 널리 알려져 있는 지명 '오랑캐령'의 이야기를 들려 드렸습니다.
[청취자의 벗 편지 사연]
갑: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개해드리는 ‘편지가 왔어요“ 시간간입니다.
오늘은 먼저 중국 길림성 연변의 이강춘 청취자가 보내온 소식을 들어 보겠습니다.
[청취자의 편지]
이강춘 청취자님은 이메일로 현지의 소식 여러 편을 보내왔습니다.
이 소식에 따르면 "왕청현 무형문화유산 대상 및 조선족민속활동 전시공연을 개최"했다고 합니다.
상모춤으로 유명한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에는 전문팀인 '왕청현상모춤예술단'이 있는데요, 또 이밖에도 32명의 노인들로 구성된 '노인 농악무(상모춤) 공연팀'이 있다고 합니다. 일전에 왕청현에서 열린 문화재의 날 조선민속활동 전시공연에서 왕청현노인농악무(상모춤) 공연대의 전통 상모춤이 관중들의 주목을 끌었다고 합니다.
이강춘 청취자님은 또 왕청현에서 감주장사로 생활난을 이겨내고 자립한 양주의 이야기, 황청현 가야하예술단이 즐거운 들놀이를 조직한 이야기도 보내왔습니다.
이강춘 청취자님은 왕청현 신문보도센터의 특약기자로 있다고 이메일에 자아소개를 했는데요, 현지의 다양한 소식을 우리 방송에 전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네, 앞으로도 우리 방송을 애청해 주시고 좋은 소식과 이야기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의 박철원 청취자님도 연길시 한 지역사회의 이직과 퇴직 인원들이 지역사회에서 모범과 선두 역할을 발휘하고 있다고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이 소식에 따르면 이직과 퇴직 공산당원들의 ”제1신분”, ”제1책임”감을 높여 선봉적인 모범역활을 더 잘 발휘하게 하기 위해 연길시 건공가두 연춘지역사회위원회에서는 “초심을 잊지 않고 사명을 명기하기”를 주선으로 <공산당원의 집>편액을 달아 신분을 밝히고 구역내에서 선두작용을 발휘하도록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우리 방송의 열성 청취자인 한국 대구의 구원모 청취자님은 7월 21일자의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 지역의 코로나19 현황을 알려왔습니다.
우리 방송에 하루같이 항상 관심을 기울인 여러 청취자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우리 방송을 애청하시고,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노래 한곡 듣고 다음 코너로 이어가겠습니다. 욱일, 양광이 부릅니다. "고향"
[노래 한곡]
[퀴즈 한마당 코너]
갑:
[퀴즈 한마당] 코너는 달마다 한 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이달에는 지명과 관련한 퀴즈를 내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무엇’과 ‘무엇’이 있다.”
여기서 ‘무엇과 무엇’은 어느 도시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여기서 ‘무엇’과 ‘무엇’은 어느 도시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네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청취자의 벗과 연계하는 방법]
갑:
편지는 우편번호 100040번, 주소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주시구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감하는 말]
갑:
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편성에 진행에 박은옥, 편성에 김호림이었습니다.
방송을 청취하면서 여러분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든지 전해주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청취자의 벗]과 함께 한 여러분 감사합니다.
[청취자의 벗]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