챵족은 중국 서부의 오래된 민족이다. ‘구름 위의 민족’으로 불리는 챵족은 ‘얼마’(尔瑪) 또는 ‘얼메’(尔咩)로 지칭한다. 챵족은 주로 중국 사천성 아바(阿坝) 티베트족 챵족 자치주의 무현(茂 懸), 문천(汶川), 이현(理懸), 송반(松潘), 흑수(黑水) 등 현과 면양(綿陽)시의 북천(北川) 챵족 자치현에 모여 살고 있다. 그리고 일부는 사천성 감제(甘孜) 티베트족 자치현의 단바(丹巴)현, 면양시의 평무(平武)현, 귀주(貴州)성 동인(銅仁)지역의 강구(江口)현과 석천(石阡)현에 살고 있다. 대다수 챵족은 높은 산이나 산허리 지대에 거주하고 있고 소수가 도로 연선의 각 향진 인근에서 티베트족, 한족, 회족 등 민족과 잡거한다. 2010년 제6차 전국인구보편조사에 따르면 챵족의 총 인구는 30만 9576명이다.
챵족은 역사가 유구한 민족이다. 일찍 3천여년전 은나라 때 갑골문에 챵족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갑골문 중 민족 또는 씨족, 부락의 호칭과 관련된 최초의 유일한 문자 기록이 있었는데 바로 ‘챵’(羌)이다. 챵은 타칭으로서 당시 중원 부락은 서부의 유목 민족을 챵이라고 범칭했다. 따라서 챵은 단일한 민족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언어나 복식, 풍속습관은 다르지만 ‘풀과 물이 있는 곳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민족에 대한 통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서의 기재에 따르면 기원전 3000년 경의 앙소(仰韶)문화 말기 황하 중유에서 염, 황 양대 부락이 나타났다. 염제는 강(姜)씨인데 성씨 강자와 챵족의 강자는 같은 글자에서 분화된 것으로 갑골문에서도 상호 통용할 때가 많았다. 또 성씨 강자와 챵족의 강자는 모두 양을 토템으로 하는 중국 서북부의 원시유목부락을 대표했다.
중국인들은 습관적으로 중화민족을 염황 자손이라고 부르는데 한족의 시조는 황제, 챵인의 시조는 염제로 알려져 있다.
염제는 원래 고대 챵족 부락에 속했다고 한다. 허나 후에 전쟁과정에 염제 부락과 황제부락이 서로 융합되어 오늘 날 한족의 선민인 화하족(華夏族)을 형성하고 서쪽 또는 남쪽으로 이주한 챵족은 현지 토착민들과 융합돼 한어 티베트어계 한족과 티베트족, 이족, 나시족의 선민이 되었다.
기원전 2100년 경 치수에 능한 고대 챵족의 후손인 화하족의 대우(大禹)가 부락연맹의 총 두령으로 선임됐다. 대우는 아들 계(启)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며 계는 즉위 후 여러 부락과 연합해 중국 역사상의 첫 공식 국가인 하(夏)나라를 세웠다.
그 후 동주(東周)시기, 서북의 챵인은 진(秦)나라의 압력에 못 이겨 대규모로 먼 곳에 이주하기 시작했다. 한(漢)나라 때 챵인들은 아주 널리 분포되었으며 부락도 많았다. 흉노족과 챵인들의 연계를 단절하기 위해 한 왕조는 하서주랑에 돈황(敦煌)과 주천(酒泉),장액(張掖), 무위(武威) 등 4개군을 설치하고 지방행정체계를 형성해 챵인들의 사무를 관리했다. 아울러 챵인들이 내지에 대거 이주하며 지역적으로 동챵(東羌)과 서챵(西羌)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중원에 이주한 동챵은 한족들과 잡거하고 통혼하며 농업생산을 시작하고 봉건사회에 들어선 반면 중국의 서북지역과 서남지역에 남은 챵족은 대부분 씨족부락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동한(東漢)때부터 서진(西晉)말까지 북방의 대부분 챵인들이 기본상 한족과 융합되었다.
그리고 송(宋)나라 이후 남쪽으로 이주한 챵인과 서부의 챵인 중 일부분이 티베트 미얀마 어족의 여러 민족으로 발전하고 일부분이 지금의 챵족으로 되었다.
챵족의 민간에는 “챵거대전”(羌戈大戰)이란 서사시가 널리 전해지고 있다. 서사시는 챵인들이 원래 서북 대 초원에서 생활했는데 전쟁과 자연재해로 서쪽과 남쪽으로 이주하게 되고 남쪽에 이주한 챵인들이 건장한 ‘과기인’(戈基人)들과 싸워패전을 거듭하던 끝에 먼 곳으로 이주하려다 꿈속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용감히 싸워 ‘과기인’들을 전승하고 평안한 삶을 누리게 되었으며 아홉 갈래로 나뉘어 각지에 거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엮고 있다. 이 전설은 챵인들의 이주의 역사를 보여준다. 또한 사서와 고고학 자료와 함께 챵족의 기원설을 입증하고 있다.
명나라와 청나라 초반에 일부 챵족은 사천성에서 귀주성 동인 지역으로 이주했으며 이로써 챵족의 분포구도가 기본상 형성되었다.
1840년 이후 중국은 반식민지 반 봉건 사회에 들어서기 시작하고 챵족은 전국의 기타 민족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침략과 봉건통치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1921년 중국공산당 창건 후 챵족 인민들의 반제 반봉건 투쟁이 새로운 역사단계에 들어섰다. 1935년 중국 공농홍군 장정 부대가 챵족 지역을 지날 때 챵족 인민들은 당의 영도하에 공농혁명정권을 세우고 성세호대한 토지혁명을 시작했다. 1947년에는 ‘룡평사건’(龙坪事件)으로 불리는 무장봉기를 일으켜 국민당 통치에 반대해 나섰지만 챵족 통치계급내부의 배신으로 인해 실패를 모면하지 못했다.
1950년 챵족 인민들은 해방을 맞이했다.그리고 1958년 7월7일 무문(茂汶)챵족자치현을 세워 나라의 주인이 되고 자치권을 누리게 되었다.
챵족의 민족언어는 치양어(羌語)로 한어 티베트어계 티베트 미얀마어족 치양어 갈래에 속하며 북부와 남부 방언으로 나뉜다. 챵족은 장기간 한족과 왕래가 빈번했던 관계로 많은 챵족이 한어와 한문을 사용한다. 챵족은 20세기 80년대 본 민족의 문자가 없는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1989년 5월, 챵족인들의 염원에 따라 ‘사천성 챵족병음문자창제영도팀’이 설립되고 다년간의 조사연구를 거쳐 26개 라틴자모의 형식으로 된 ‘챵족병음문자 방안’(초안)을 설계했다. 이 방안은1993년에 관련부처의 심사에 통과되었으며 그 후 무현, 문천현, 이현, 송반현 등 지역에서 보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