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타타르족의 민간 문학작품은 아주 풍부하다. 신화전설, 이야기, 속담, 가요, 수수께끼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며 특히 시가와 민요가 신강 여러 민족 인민들 속에서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
하여 “시가가 있는 곳에 타타르인이 있고 타타르인이 있는 곳에 시가가 있다’는 설이 유행되기도 한다. 그 중 타타르족의 <바라미스컨> , 가여운 총각이란 민요가 신강 여러 민족들 속에서 널리 유행되어 신강의 유행가요가 되고 혼례식이나 명절 때 널리 불려지고 있다. 그 외 <백조진행곡>, <백하강변>, <나강>(那岡) 등 타타르족 민요도 신강 여러 민족 모두 즐겨 부르는 노래다.
타타르족의 서면 문학에는 서사장시와 사랑시, 소설, 연극, 가극 등이 있고 많은 역사와 문학, 의학, 종교 저서도 있다. 10세기부터 13세기까지 타타르인들은 사랑과 종교를 그린 문학 작품을 적지 않게 창작했다. 아이리(艾力)의 <왕쑤푸와 쯔라이하>(王素甫与孜萊哈)는 최초의 애정서사장시이다. 그 외 종교권계성 장시 <커스커바시>(克斯克巴希), <후생들에게 경고하노라>등이 있고 13세기부터 14세기까지 <사랑시간(詩 簡)>, <천당으로 통하는 길> 등도 역작이다. 15세기 시인 무허마이더야얼(穆赫麥德雅爾)은 다양한 소재의 장시와 서정 단편시를 창작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카잔한국을 보위하고 제정러시아의 통치에 반항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 타타르족의 시인 두라·퉈카이(都拉·托卡依)는 자신의 저서로 타타르 신문학의 기반을 닦았을 뿐만아니라 중국의 위구르족과 카자흐족의 현대와 당대 시인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타타르족 문학가이자 역사학자인 쿠르반애리·하이리디(庫爾班艾力·海力迪)가 타타르문으로 신강에서 집필하고 1910년 카잔에서 출판한 <동방오사>(東方五史)는 동방의 돌궐어 여러 민족의 인문과 역사를 널리 섭렵한 중요한 저서이다. 1930~40년대에는 <우리의 목소리>, <새 신강> 등 타타르문 신문이 출판되어 타타르문으로 창작된 소설과 시가, 극본이 신문에 실렸다. 지금 문학창작과 문학연구, 민간문학 수집 정리에 종사하고 있는 타타르족 작가와 문학종사자 대오는 빠르게 늘고 있다.
희극:
신강의 여러 민족 중에서 타타르족의 희극예술의 발전이 이른 편이다. 20세기 30년대 초반 타타르극단이 창설됐다. 타타르극단은 이닝(伊寧)과 타청(塔城), 우루무치 등 지역에서 비교적 큰 영향력을 지닌 문예단체이다. 이들은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 외에도 사회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고 노동인민의 부지런하고 지혜로우며 순박하고 선량한 품성을 구가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대표작으로는 <바시마하무>(巴西 瑪哈木), <귀여운 사람>, <하리야바눠>(哈麗亞巴諾), <날품팔이를 하는 애하매티>, <타인을 위하여> 등이 있다.
음악:
타타르족의 음악은 장단이 선명하고 선율이 유창하고 화려하며 구조가 간결하고 구성지고 입에 잘 오르는 특징이 있다. 또 음악의 정서가 열렬해 듣고 있노라면 저도 몰래 흥에 겨워 춤을 추게 된다. 보통 고조부분에서는 휘파람이나 환호를 동반해 타타르족의 열정적이고 호방하며 낙관적인 민족성격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타타르족의 악기는 종류가 아주 많은데 이공 나무 퉁소인 ‘쿠네’(庫涅), 하모니카의 일종인 ‘커비스’(科比斯), 2현 바이올린 등이 있다. 그 외 손풍금과 만돌린, 7현금도 애용된다.
타타르족인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때에 통상 손풍금과 만돌린 연주를 곁들인다. 타타르족의 무용은 동작이 가볍고 경쾌하다. 남성은 춤을 출 때 차고 접고 점프하는 등 다리 동작이 많은 편이고 여성은 손과 허리 동작이 섬세하다. 타타르족의 무용은 위구르족, 러시아족, 우즈베키족의 민족무용 특징을 골고루 받아들이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풍격을 형성했다. 타타르족의 무용은 노동가무, 명절가무, 혼례가무, 모방가무 등으로 분류된다. <농경무>, <수렵무>, <방목무> 등 노동가무는 타타르인의 근면과 지혜를 잘 보여주고 있다. 현란한 탭댄스는 경사스러운 명절에 많인 추고 <아이피파이>(艾皮拍)는 젊은이들이 혼례식에서 노래하며 추는 춤으로 유명하다. <백조>, <준마와 재갈>은 모방무용의 대표다. 타타르족은 백조의 순수함과 아름다움, 강인함을 숭상하며 사랑과 자유를 갈망한다. <백조>춤이 바로 타타르인들의 이러한 심미관과 도덕관의 예술적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준마와 재갈>은 타타르 청년들이 초원에서 말달리는 정경을 보여준 무용이다.
타타르족 무용의 전통관습을 본다면 남자 주역은 보통 여자가 분한다. 또 경사스러운 날이면 타타르족은 군중성적인 무용 경기도 가진다. 특히 매년 봄철 ‘사반절’(撒班節) 즉 ‘보습절’이면 타타르인들은 풍경이 수려한 곳을 찾아 마음껏 춤추고 노래하며 하루를 즐긴다.
자수:
타타르족의 민간 자수 공예품은 독특한 민족풍격을 띤 공예미술품의 하나이다. 타타르족의 여성들은 자수의 고수이다. 그들은 풍부하고 다채로운 자연계의 갖가지 조형을 농축적이면서도 과장적으로 도안화 하여 향토적이면서도 민족색채가 다분한 자수공예품을 선보인다. 타타르족의 자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안들로는 무늬의 변화가 다양한 각 종 화훼와 초목을 들 수 있다. 통상 모자나 두건, 베개수건, 손수건, 침대시트, 소맷부리, 목둘레, 옷깃에 각 종 화훼와 초목을 수놓는다. 특히 타타르족은 머리 장식을 중히 여기는 민족이다. 때문에 이들은 남녀노소 막론하고 풍격이 각이한 모자를 애용하는데 남자 모자는 타타르어로 ‘싸이웨이다이’(賽緋待依) 여자 모자는 ‘카러바커’(喀勒巴克)라 부른다. 모자는 민족의 상징으로 그들의 신분이나 부를 상징하며 모자의 양식마다에 나름의 함의가 담겨있다. 지금에 와서는 타타르족의 수공자수와 꽃 모자 공예가 점차 컴퓨터 수 놓이에 대체되어 수놓이를 하는 젊은 여성들이 줄고 있고 전통적인 타타르족 민간자수와 모자 제작 공예도 소실의 위험에 놓였다.
천문역법:
타타르족의 선민들은 장기적인 수렵과 채집, 농업생산 과정에 대 자연의 변화법칙을 장악하고 자신들만의 역법을 창제했다. 그들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3월 중순부터 6월 하순까지는 봄 목장에 이사해 아기양을 키우고 6월 하순부터 9월 하순까지는 여름 목장에 들어가 양을 살찌우고 양털을 깎으며 우유제품을 가공하고 9월 하순부터 11월 중순까지는 가을 목장에 이사해 양을 교미시키고 천막을 수건하며 11월 하순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겨울 목장에 이주해 바람과 눈을 이겨내고 가축을 지킨다.
종교신앙:
타타르족은 기타 돌궐어 민족과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를 신봉하기 전에 만물은 모두 영혼이 있다는 원시종교신앙을 지녔다. 타타르 선민들은 늑대가 초자연적인 비범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 민족의 토템으로 간주한 적이 있다. 오늘날 까지도 전해져 내려온 타타르 민간전설과 민속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타타르족은 오늘까지도 낭아(狼牙)장신구를 패용하며 늑대의 뒷발목뼈를 지니고 다니는 풍습이 있다. 타타르족의 이슬람교 신봉 역사는 비교적 이르다. 기원 10세기부터 이슬람교가 이미 타타르족 선민들이 생활하는 볼가강 유역에 전파되었다. 타타르족은 수니파를 신봉하며 하나피 학파에 속한다. 이슬람교 신도들과 마찬가지로 타타르족 신도들은 이슬람교 교의에서 규정한 종교의무를 엄격히 따른다.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전 종교는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리며 타타르족의 문화와 교육, 혼인, 가정을 제멋대로 간섭했다.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후 이런 특권이 철폐되고 군중들의 정상적인 종교활동이 보호를 받게 되어 많은 신도들은 자원적으로 종교활동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