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8 11:23:25 출처:CRI
편집:权香花

[청취자의 벗] 2022년 4월 7일 방송듣기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4월의 첫 째 <청취자의 벗>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과 함께하는 아나운서 임봉해(MC)입니다.

--------------------------------------

목요일인 7일은 올해 양력으로 97일째 되는 날입니다. 올 한해가 마감할 때까지 268일 남았습니다.

‘역사속의 오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4월 7일은 세계 보건의 날입니다. 해마다 이날이면 세계 각 지역의 사람들은 모두 여러 가지 기념행사를 열고 노동의 창조와 행복한 생활에 대한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1948년 제1차 세계보건대회는 ‘세계 보건의 날’를 창설하여 세계보건기구의 탄생을 기념한후 해마다 4월 7일은 ‘세계 보건의 날’을 경축하는 날로 되었습니다. 해마다 세계 보건의 날은 주제를 선정하고 세계보건기구가 주목하는 중점 영역을 두드러지게 합니다.

세계 보건기구의 날은 세계적인 기회로서 국제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공공보건 문제에 중시를 돌립니다.

전세계적으로 몇 년이 넘도록 지속해온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의 보건 종사자들의 수고가 더욱 빛을 발하는 요즘, ‘세계 보건의 날’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세계 보건의 날’ 올해의 슬로건은 ‘우리의 지구, 우리의 건강! 깨끗한 우리의 공기, 물, 그리고 음식”입니다. 이 슬로건d한 공기, 물, 그리고 음식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다시 꿈꿀 수 있을까요? 건강과 웰빙에 중점을 둔 경제 시스템은 무엇일까요? 자신과 지구의 건강을 통제할 수 있으며, 살기 좋은 도시는 어디일까요?”

금주 화요일인 4월 5일은 청명절이었습니다. 또 3월절, 들놀이의 날, 제사와 성묘하는 날 등으로 불립니다. 절기는 중춘과 늦봄이 어울리는 시절입니다. 청명절은 상고시대의 조상의 신앙과 봄철 제례의 습속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자연과 인문 2대 내용을 갖고 있습니다. 자연 절기일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명절입니다. 제사와 조상 제사 그리고 들놀이는 청명절의 풍속의 주제입니다. 이 2대 전통적인 풍속은 중국에서 옛날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청명절은 중화민족의 옛스런 명절입니다. 제사, 성묘의 엄숙한 명절이며 또 자연과 가까이하고 들놀이를 하며 봄날의 즐거움을 향수하는 즐거운 명절입니다.

양력 4월 5일을 전후하여 이 절기는 생기가 왕성하고 음기가 쇠퇴하며 만물이 ‘낡은 공기를 뱉어내고 신선한 공기를 흡수’합니다. 청명한 전기로 대지에는 봄의 기상이 나타납니다. 교외에 가서 봄놀이와 성묘, 제사를 하는 시절입니다.

청명절은 음력설, 단오절, 추석과 더불어 4대 전통적인 명절입니다. 중국을 제외하고 세계적으로 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 일부 나라와 지역에서도 청명절을 쇱니다. 2006년 5월 20일,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가 신청한 청명절은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제1진 무형문화재에 등록되었습니다.

청명절은 기나긴 세월 속에서 북방지역 한식절의 불 금지, 냉식 습속을 융합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한식절은 춘추시대 진나라의 충신 개자추를 위해 설립한 명절이라고 합니다. 민간 전설에 따르면 한식은 개자추와 연관되지만, 한식은 기실 상고시대의 구습을 따른 것입니다. 한식절은 중국 북방과 중원 일대에서 옛날부터 있었던 명절에서 기인되었다고 합니다. 한식절은 처음에는 불꽃놀이를 금지하고 다만 냉식을 먹던 데로부터 후세에서는 성묘, 그네뛰기, 투계 등 습속이 늘어났습니다.

‘후한서’의 기재에 따르면 최초의 한식절은 아주 길었는데, 최장 105일이었으며 제일 짧은 것 역시 약 1개월이었습니다. 한식절 기간에는 불을 지필 수 없었으며 생식만 가능했습니다.

1964년 4월 5일 미국 유명한 군사가 맥아더가 담결석으로하여 사망했습니다.

1975년 4월 5일, 장개석이 대북에서 병사했습니다. 장개석은 국민당 집권 시기의 당과 정부, 군대의 주요한 지도자였습니다.

1983년 4월 5일, 중국인민무장경찰부대 본부가 베이징에서 설립되었습니다.

[청취자 내신]

[간 주]

이 시간에는 ‘승려를 따라 찾은 옛 이야기’ 이런 제목으로 “대륙의 고찰에 울린 반도의 향음鄕音”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시기를 두고 다양한 설이 전해오고 있다. 명明나라의 불교전적 《불법금탕편佛法金湯編》에는 진秦나라 시황始皇 때 서역의 실리방室利防 등 승려 18명이 불경을 갖고 함양咸陽에 왔다는 기록이 있다. 일각에서는 또 선진先秦 시기의 지리서 《산해경山海經》의 서술을 빌어 하夏나라 초의 동이수장 백익伯益이 벌써 부처를 알았다고 주장한다.

어찌됐거나 한漢나라 명제明帝 때부터 비로소 불교가 종교로 정부의 승인과 숭신崇信을 받고 그 기초와 규모를 이뤘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영평永平 7년(A.D.64년), 명제는 사절使節 12명을 서토西土에 보내 불법을 구했다. 그로부터 3년 후, 사절들은 인도 승려와 함께 경서와 불상을 갖고 귀국했다. 이때 수도 낙양洛陽에 중국의 첫 불교사원이 서는데, 이 사원이 바로 현존하는 낙양의 백마사白馬寺이다. 백마사는 그때 경서와 불상을 실어온 백마 때문에 지은 이름이라고 전한다.

불교는 대륙 복판의 중원까지 육지와 해상의 실크로드를 통해 전래되었다. 실크로드는 옛날 비단무역을 계기로 중국에서 시작되어 아시아와 서방세계를 연결하던 교역로交易路를 이르는 말이다.

바닷길을 통한 불교의 전래는 육로를 통한 불교의 전래 시기와 엇비슷하였다. 일부 학자는 불교가 서기 50년을 전후로 벌써 강소성江蘇省과 산동성山東省 등 연해지역에 침투되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연운항連雲港에 있던 옛 사찰 법기사法起寺는 중국의 첫 사찰이라고 불리는 백마사와 간발의 차이를 두고 나타나고 있었다.

불교는 남북조南北朝 때 널리 선양되었으며 당唐나라 때에 이르러 한창 흥성했다.

불교의 발상지 인도는 중원은 물론 대륙 동쪽에 있는 고구려와 신라, 백제에는 더구나 먼 나라였다. 불교가 육로의 서역이나 바다 연안의 항구를 통해 중국 대륙의 중원에 점진적으로 정착되었다면 고구려와 신라, 백제에는 중원을 발판으로 삼아 들어가고 있었다. 필경은 불교가 흥기하고 있는 중원이야말로 삼국의 승려들의 구법 수도로 향한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중원에 왔던 삼국의 구법승 가운데서 오늘날까지 그 이름을 전하는 승려만 해도 100여명이나 된다. 와중에는 의상義湘처럼 해동海東 화엄華嚴의 초조初祖로 명성을 날린 신라 고승이 있으며 또 의각義覺처럼 대륙의 불교명산 구화산九華山에서 불상을 직접 한반도에 가져간 백제 고승이 들어있다.

대륙을 지나 직접 인도에 다녀간 삼국의 승려도 적지 않았다. 당시 삼국에서 인도까지의 왕래는 아주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일찍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은 배를 타고 가락국에 와서 김수로왕과 혼인을 맺는 것이다.

현존하는 기록에 따르면 백제 승려 겸익謙益은 첫 사람으로 인도에 가서 불교를 구해온 구법승이었다. 여행기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의 저자인 신라 승려 혜초慧超도 당나라에서 활동하다가 인도에 다녀왔다. 고구려 승려 현유玄遊는 인도로 다녀오면서 사자국(獅子國, 스리랑카)에까지 거류했다고 전한다.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은 구법승 61명의 전기를 수록, 이 중에는 신라의 구법승 7명과 고구려 구법승 1명이 포함되어 있다.

잠깐, 흥미로운 일이 있다. 채소 가지茄子는 마침 불교가 전래되던 동한東漢 무렵 중국에 수입되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원산지가 인도와 동남아인 이 가지가 엉뚱하게 신라로부터 중국에 전해졌던 것이다. 훗날 수隋나라 양제煬帝는 가지를 특별히 편애하여 ‘곤륜자과崑崙紫瓜’ 즉 곤륜의 검은 오이라고 하라는 칙명까지 내렸다고 한다.

실제로 가지는 한반도에서도 임금님의 진상품 품목에 든 식품이며, 오늘도 대륙의 연변 등 지역에 ‘조선가지’라는 이름으로 남아서 한때 ‘귀한 몸’으로 높이 있었던 옛 신분을 자랑한다.

자칫 역설적인 이야기로 들릴 법 한다. 삼국 구법승의 대부분은 본국으로 돌아가서 본국의 불교문화에 기여했지만, 일부는 계속 대륙에 머물면서 중국의 학계나 교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와중에 또 일부 구법승은 대덕大德, 고승高僧, 주지승住持僧으로 화려한 변신을 했다. 황제가 내린 대덕大德으로 신방神昉 등이 있었고 주지住持로는 법청法淸 등이 있었다. 김교각金喬覺은 지장보살의 현신으로 평가되며 승랑僧郞은 양무제梁武帝가 파견한 고승들에게 삼론학三論學을 가르친다.

그러고 보면 삼국의 승려는 인도의 달마達磨대사가 바위에 수행의 흔적을 남기듯 대륙의 옛 사찰에 그들의 승적僧跡을 또렷이 찍어놓고 있는 것이다.

옛날 사찰은 대륙의 동서남북 곳곳에 적지 않았다. 남조南朝의 양무제 때 수도 건강(建康, 지금의 남경)에 불교사원이 5백여 개나 되었다. 북조北朝 때 낙양에만 해도 불교사원은 1,300여 개 되었으며 각 주와 군에 무려 3만여 개나 되었다고 한다. 2015년 현재 대륙의 종교계에서 개방한 불교사원은 33,652개이며 그 가운데서 한전漢傳 불교사원이 28,083개, 남전南傳 불교사원이 1,716개, 장전藏傳 불교사원이 3,853개 된다고 한다. 중국 불교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사원에 있는 승려와 비구니는 약 24만 명에 달한다.

오늘날 대륙의 불교 사원은 여러 조대와 시기를 거치면서 적지 않게 훼손되고 소실되었다. 그러나 잔존하는 많은 옛 불교 사원에서 여전히 삼국 승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신라 승려 무상無相대사는 5백 나한羅漢의 한 사람으로 사찰에 모셔져 있으며, 석굴 사원인 용문龍門 석굴에는 옛날 신라 승려가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신라상감新羅像龕이 있다. 신라 승려 원측圓測은 고전소설 《서유기西遊記》의 주인공 삼장三藏법사의 실제 모델인 현장玄奘법사의 수제자인데, 그의 부도탑浮屠塔은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의 흥교사興敎寺에 세워져있다.

기실 대륙의 여기저기에 나타나고 있는 삼국의 승려는 중원으로 다녀간 삼국 사람들의 일부였다. 승려는 물론 사신 그리고 상인을 비롯한 민간인의 중원으로 향한 행렬은 그 후의 통일신라, 고려 등 여러 조대를 계속 잇고 있었다. (편폭의 제한으로 책은 고려의 일부까지만 소급했다.) 일부 지역에는 아직도 고려항高麗巷, 고려산高麗山, 신라초新羅礁, 신라산新羅山 등 지명이 잔존하며 신라삼新羅參, 신라송新羅松 등 식물이름도 있다. 항구도시 천주泉州에서는 박래품인 포채(包菜, 양배추)를 지금도 ‘고려채高麗菜’라고 부르고 있다.

그때 그 시절, 대륙 연해에 집성촌을 이룬 신라인들은 신라촌新羅村, 신라원新羅院, 신라방新羅坊, 신라역어처新羅譯語處, 구당신라압아소勾當新羅押衙所 등 조직과 기구를 만들고 있었다. 신라인들의 이런 동네에는 또 그들의 이름을 따서 지은 신라사新羅寺가 늘 그림자처럼 함께 등장하고 있었다. 사찰은 이역 땅에서 사는 신라인들의 하나의 구심점으로 되고 있었던 것이다.

대륙의 고찰에 울린 풍경소리에는 분명히 반도의 향음鄕音이 함께 날리고 있었다.*

[퀴즈 한마당 코너]

MC:

[퀴즈 한마당] 코너는 달마다 한 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먼저 지난달의 퀴즈 답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길림성 돈화에는 세계의 제일 큰 비구니의 수련 도장이 있는데요, 이 도장은 현지를 도시 이름을 의미하는 자연적인 조형물로 되고 있습니다.

이 도장은 정각사(正觉寺)라고 합니다. 아세아에서 제일 큰 불교 도장입니다. 산 정상에는 세계적으로 제일 높은 석가모니 청동 로천 좌불이 있습니다.

계속하여 이달의 퀴즈를 내어드리겠습니다.

북대하는 하북성(河北省) 북단의 해변 마을로, 중국에서 유명한 휴양지입니다. 이곳에는 화북지역 언어문화의 ‘외로운 섬’이라고 불리는 한 조선족마을이 있는데요, 이 마을의 이름을 뭐라고 부르겠습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중국의 유명한 휴양지인 하북성 북대하에는 화북지역 언어문화의 ‘외로운 섬’이라고 불리는 한 조선족마을이 있는데요, 이 마을의 이름을 뭐라고 부르겠습니까.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청취자의 벗과 연계하는 방법]

MC: 편지는 우편번호 100040번, 주소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 중앙방송총국 아시아아프리카지역 방송센터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주시구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감하는 말]

MC: 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진행에 임봉해(MC),편성에 김호림이었습니다.

방송을 청취하면서 여러분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든지 전해주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청취자의 벗]과 함께 한 여러분 감사합니다.

[청취자의 벗]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공유하기:
뉴스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