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2 11:09:54 출처:CRI
편집:权香花

[청취자 내신] 2022년 5월 12일 방송듣기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5월의 두번 <청취자의 >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 함께하는 아나운서 임봉해(MC)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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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목요일인 12일은 양력으로 올해 132일째 되는 날입니다. 한해가 마감할 때까지 233 남았습니다.

역사 속의 오늘 말씀드리겠습니다.

1958 5 12 대의동풍표 국산 승용차가 생산되었습니다.

대의동풍 국산 승용차는 장춘 1자동차제조공장에서 생산되었습니다. 승용차는 중국 자동차 공업기술 수준이 새로운 높이에 이르렀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장춘 1자동차제조공장의 기술수준은 새로운 단계에 올라섰으며 중국 대의홍기 승용차를 만들었습니다.

2002 5 12, 중국텔레비젼방송국 12채널이 개국되었습니다. 초기의 채널 이름은서부 채널 주요하게 서부의 발전을 선전했습니다. 개국 2 동안 채널은 서부에 방송되었으며 동부 유선방송망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동부에 방송되었습니다.

그때 중앙텔레비젼방송국 채널의 자원 자체가 아주 제한되었으며 채널을 개국한 것은 서부의 발전을 널리 선전하기 위한데 있었습니다. 사명을 완성한 중앙텔레비젼방송국은 전국적인 종합채널을 꾸리려고 했으며 따라서 채널에 자금을 투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서부 채널은 개국한 줄곧 적자 상태에 있었고 서부 지역의 방송 조건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채널은 12 28사회와 채널 이름을 바꿨습니다

2008 5 12 사천성 문천현에서 리히터 규모 8.0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문천현에서 일어난 대지진은 베이징, 중경, 호남성, 호북성, 산서성, 섬서성, 하북성 절반의 중국 대륙에 진감이 있었습니다.

문천 대지진은 공화국이 창건된 이래 파괴성이 제일 강하고 파급 범위가 제일 지진이었습니다. 이번 지진으로하여 50만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이 손실을 입었습니다. 문천 지진에서 조난당한 동포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기 위해 국무원은 2008 5 19일부터 21일을 전국 애도의 날로 결정했습니다.

5 12일은 전국 재해 방지와 감소의 날입니다.

중국 국가재해감소위원회, 민정부는 2009 3 2 소식을 발표하고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해마다 5 12일을전국 재해방지와 감소의 정한다고 전했습니다.

해마다 5 12일은 세계 간호사의 날입니다.

세계 간호사의 날은 1912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이날은 간호사 직업의 창시자이며 영국 간호학 선구와 현대 간호교육의 정초자인 나이팅게일을 기리기 위해 설립했습니다. 국제간호사이사회는 나이팅게일의 생일을 세계 간호사의 날로 정하고 이로써 간호사가 간호사업의 영광스런 전통을 계승하며애심, 내심, 세심, 책임심으로 모든 환자를 대하고 간호사업을 것을 격려했습니다.

1988년부터 해마다 세계 간호사의 날은 하나의 주제를 수립했습니다. 국제 혹은 지역의 관련 기구는 주제를 둘러싸고 기념활동을 벌입니다.

2012년은 100번째 세계 간호사의 날입니다. 이날의 주제는격차를 줄이고 간호 실증으로부터 임상 응용에 이르자입니다.

[청취자의  ]

5 8일자의 우리 방송을 청취하고 중국 흑룡강성 흑하시 눈강의 왕용지 청취자가 수신 보고서를 보내왔습니다.

왕용지 청취자는 수신보고서와 함께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위한 노래를 주문했는데요,

그럼 여기에서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위한 노래함께 미래로 감상하겠습니다.

[간주]

시간에는승려를 따라 찾은 이야기 이런 제목으로고려의 승려는 송나라의 파계승을 만났을까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려의 승려는 송나라의 파계승을 만났을까

파계승이 있었던 중국 개봉開封 고찰은 대륙 장안을 드나드는 역로의 길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려의 사절과 승려는 문헌의 행간에 불쑥불쑥 나타나 고찰을 자주 만나고 있다.

개봉은 일찍 춘추春秋 시대에 생겨난 유명한 성읍이다. 그때 장공庄公 나라의 동북 변강에 있는 이곳을 선정하여 식량을 저장하는 도성을 축조하고계척봉강啓拓封疆’이라는 뜻으로계봉啓封’이라 명명했다, 서한西漢 경제景帝 즉위하자 그의 이름 유계휘劉啓諱 피해 啓’ 같은 의미의 開’ 고쳤으며 계봉을 개봉으로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개봉은 중국 8 고도古都 하나로 북송北宋 시기에는 당시 세계적으로 으뜸가는 대도시로 거듭나고 있었다. 유명한 그림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북송의 동경東京 배경으로 창작되었듯 많은 역사 이야기는 동경에서 생겨나고 기록되고 있다. 중국의 4 고전명작의 하나인 수호전水滸傳》 역시 북송 말년 개봉의 북쪽지역 양산梁에서 봉기를 일으켰던 108 호한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삼국이 아니라 유독 고려 승려의 행적만 개봉에 남고 있는 원인을 같다.

이러니저러니 택시 기사가 말하고 있는 상국사上國寺 더는 사찰이 아니었다. 황하黃河 범람하면서 훼손되었고 지금의 사찰은 새로 지은 것이다.

역사상 황하는 한두 번만 범람한 아니다. 개봉에 물난리가 자꾸 생기자 나라 가정嘉靖 2(1523), 성읍의 동남쪽 언덕 위에 우왕묘禹王廟 세운다. 그러나 치수의 공적을 쌓은 대우大禹 이름도 제멋대로 날뛰는 황하를 더는 길들일 없었다. 명나라 , 개봉은 황하가 범람하면서 물에 잠겼으며 상국사는 전부 폐허가 되었다. 나라 건륭乾隆 31(1766), 옛터에 사찰을 재건했지만 도광道光 21(1841), 황하의 언제가 터지면서 개봉 성내에 물이 들이닥쳤던 것이다.

기실 상국사는 천재天災 아니라 모진 인재人災 겪고 있었다. 북제北齊 천보天保 6(555) ‘건국사建國寺’라는 이름으로 개봉에 나타난 얼마 곧바로 병란으로 훼손되었다. 나라 경운景雲 2(711) 재건했고 이듬해 예종睿宗 상왕相王 신분으로 황위를 계승하면서대상국사라는 이름을 내렸다. 나라와 나라 전란으로 엄중하게 훼손되었으며 날을 따라 내리막길을 걸었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章 여러 상국사를 재건하면서 흥성했으나 나중에 물난리를 만나 폐허로 것이다.

상국사로 가는 길은 일방통행이었던 . 차의 흐름을 거슬러 사찰로 향했다. 천년의 고찰은 그렇게 세월의 저쪽에서 지척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불현듯 길가에 장마당 건물이 나타났다. 이름하여대상국사 시장市場’, 시장 어귀에 돌사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약간 얼떨떨했다 장마당에 사찰이 있는 걸까 아니면 사찰에 장마당을 벌인 걸까

북송 상국사는 근처에 변하卞河 있었고 부두가 있었기 때문에 개봉의 아주 번화한 민간교역 장소였다. 달마다 절간장이 다섯 열렸고 상인이 명으로 헤아렸다고 한다. 와중에 이청조李淸照 달마다 초하룻날과 보름날이면 상국사 일대에 가서 서예와 그림 작품을 사들였다. 참고로 이청조는 북송 시기의 유명한 여류시인이다. 그는 작품을 사기 위해 고기를 먹지 않고 옷을 입지 않은 일화를 문학사에 남기고 있다.

이청조와 같은백락 개봉에 운집하고 있어서 상국사가천리마 고향으로 되었을지 모른다.

당나라 상국사에는 유명한 벽화와 서예 작품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그림의 성인으로 불리는 오도자吳道子 많은 화백과 지엄智儼 명승이 상국사에 작품을 남겼다. 송나라 상국사는 황제가 기복祈福 하는 곳이었으며황실의 사찰 불렸다. 이에 따라 당시 유명한 화백들이 사찰에 그들의 작품을 남겼다. 이런 희대의 작품들은 결국 건물과 더불어 다른 세상으로 사라진 것이다.

옛터에 다시 세운 사찰은 장마당에서 불과 수십 상거하고 있었다. 수풀처럼 늘어선 부근의 건물에 묻혀서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평일이라서 상국사에서 열리고 있는 행사가 더구나 유표했다. 일명성지순례 만리 이었는데, 민간인들이 국가종교사무국의 비준을 받아 정부의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실행하는 문화교류활동이라고 했다. 자가운전의 방식으로 대륙의 100여개 고찰에 가서 수집한 신자들의 소원에 대해 기복을 한다고 한다. 물어보니 대륙의 남단인 해남海南에서 시작하여 네팔의 석가모니 탄생지까지 무려 2 답파한다고 한다.

기왕 말이 났으니 말이지 고찰 상국사는 옛날 대륙만 아니라 외국 승려의해외의 이루는 도장이었다. 일찍 당나라 상국사는 벌써 대륙 불교활동의 거점으로 되고 있었다. 대륙에 와서 구법을 했던 일본의 고승 구카이空海 상국사에 오랫동안 머물렀다고 전한다. 그처럼 바다를 건너온 삼국의 승려도 상국사를 찾을 한다. 미구에 송나라 때에는 보다 많은 나라의 외교사절과 승려가 상국사에 와서 참배하고 불법을 배웠다.

반도의 고승 의천(義天, 1055~1101) 마찬가지였다. 의천은 고려 문종文宗 아들로 고려 천태종天台宗 대표인물이다. 1085, 의천은 바다를 건너 구법행을 하는데, 개봉에서 1개월 체류한다. 이때 그는 상국사에서 운문종雲門宗 고승 종본宗本 방문하고 흥국사興國寺에서 인도의 고승 천길상天吉祥 만나 범학을 배운다.

잠깐, 의천은 귀국 상국사의 유명한 벽화를 주변에 얘기했는지 모른다. 아니, 상국사의 방문에 앞서 벽화 이야기를 들은 있을지 모른다. 의천이 상국사를 방문하기 , 고려의 사절은 특별히 상국사의 벽화를 찾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송나라 희종熙宗 7(1074), 고려의 사신 최사훈崔思訓 여러 화백을 데리고 상국사에 와서 벽화를 전부 모사했다. 휘종(徽宗, 재위기간 1110~1125) 태종太宗 친필 편액대상국사 사절에게 하사하여 귀국하게 했다고 한다. 상국사는 대륙 불교의 상징적인 도장으로 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유명한 상국사에 파계승이 등장하는 역시 무렵의 일이다. 파계승은 술을 먹고 고기를 뜯고 불을 지르고 사람을 죽이는 불교의 계율을 제멋대로 어기는망나니 승려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종국적으로 상국사는 파계승 때문에 더구나 항간에 명성을 널리 전한다.

정말이지 상국사의 주지 스님을 몰라도 파계승 노지심魯智深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 같다. 파계승은 원래 송나라 지방의 작은 관리였다. 그는 부녀자를 우롱하는 백정을 때리다가 살인죄를 짓게 되자 오대산五臺山 도망하여 승려로 되었던 것이다. 뒤미처 술을 먹고 계율을 어겨 오대산에서 쫓겨나며 개봉의 상국사에 자리를 옮기게 된다. 상국사의 장로는 노지심을 감히 사찰에 두지 못하고 채마지기로 보냈다. 노지심은 채마전을 노리는 건달들을 혼낸 그들에게 수양버들을 당겨서 뿌리 뽑는 무서운 괴력을 과시한다.

수호전 따르면 노지심은 미구에 사찰을 떠나 양산의 열세 호한으로 된다.

상국사를 찾는 관광객들이 너나없이 사진을 남기는 장소는 바로 노지심의 조각상을 세운 곳이다. 노지심은 수마선장水磨禪杖 옆에 세워놓고 버드나무를 무슨 갈대인양 손으로 당겨서 우두둑 뽑고 있었다.

한국의 고대의 승려는 몰라도 현세의 승려들은 파계승과 자주 만나고 있는 듯했다. 상국사를 찾아오는 한국의 승려가 적지 않다고 객당客堂 당직 스님이 소개하고 있었다. 그들은 혹자 팀을 묶어 방문을 하거나 혹자 개인적으로 탐방을 온단다.

그러고 보면 건너 너머성지 참배만리 백년, 천년 후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 고전수호전 나오는 유명한 사찰상국사 반도의 승려가 다녀간 이야기었습니다.

 “고려의 승려는 송나라의 파계승을 만났을까 이런 제목으로승려를 따라 찾은 이야기 말씀드렸습니다.

[퀴즈 한마당 코너]

MC:

[퀴즈 한마당] 코너는 달마다 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계속하여 이달의 퀴즈를 내어드리겠습니다.

강소성 연운항은 중국의 종합교통중추로 새로운 유라시아 대륙교의 동방 교두보라고 불립니다. 2500 , ‘세계 4 성인 사람으로 불리는 공자가 바로 이곳에서 산에 올라 바다를 구경했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이름난 연운항은 어떻게 지은 이름이겠습니까

다시 말씀드립니다.

강소성 연운항은 어떻게 지은 이름이겠습니까.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청취자의 벗과 연계하는 방법]

MC: 편지는 우편번호 100040, 주소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16 중국 중앙방송총국 아시아아프리카지역 방송센터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주시구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감하는 ]

MC: ,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시간 진행에 임봉해(MC),편성에 김호림이었습니다.

방송을 청취하면서 여러분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든지 전해주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청취자의 ] 함께 여러분 감사합니다.

[청취자의 ]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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