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풀이: 죽을 상(喪 sàng), 집 가(家 jiā), 갈 지(之 zhī), 개 구(狗 gǒu).
◎뜻풀이: ①상갓집의 개. ②의지할 곳 없는 불쌍한 신세. ③뜻을 얻지 못해 떠도는 사람.
◎출전: 한(漢) 사마천(司馬遷)『사기•공자세가(史記•孔子世家)』
◎유래: 춘추시대(春秋時代) 공자(孔子)는 열국(列國)을 주유(周遊)하였으나 여러 제후들이 공자의 주장을 받아 들이지 않았고 공자도 그 뜻을 펼수 없었으며 길에서 여러가지 일을 당하군 했다. 위(衛)나라에 도착한 공자는 제자인 자로(子路)의 친척집에 기거했다.
위령공이 진나라에서 받은 녹봉만큼 공자에게 주도록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나라의 관리중에 공자에게 불만을 가진 자들이 생겼다. 이들은 공자와 정견(政見)이 다르거나 그 재능을 시기하여 위령공의 면전에서 공자의 험담을 하군 했다. 위령공은 암둔한 군주인지라 공자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으며 공손여가(公孫餘假)를 파견해 손에 병기를 든 채 공자의 처소를 들락날락했다. 감시 겸 위협공갈인셈이었다.
공자는 이를 언짢게 여겼고 이곳에 더 머무르다가는 사단이 일어나 억울한 죄명을 쓸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여 공자는 10개월 후 위나라를 떠나 진(陳)나라로 향했으며 길에서 광(匡)이라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과거 노(魯)나라의 귀족인 계씨(季氏)의 가신 양호(陽虎)가 이곳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광지역의 사람들을 수없이 죽였다. 이곳에는 양호가 성을 진공하면서 파괴한 성벽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공자 일행이 이곳을 지날 때 수레를 몰던 안회(顔回)가 채찍을 들어 성벽이 무너진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지난번에 왔을 때는 저 허물어진 곳으로 성에 들어갔댔습니다.”
광지역의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는 노나라의 양호가 또 사람들을 거느리고 못된 짓을 하러 왔다고 여겨 공자 일행을 포위했다. 공교롭게도 공자의 생김새가 양호와 비슷하였으니 그곳 사람들은 양호를 잡았다고 여겨 이들을 구금했다.
광지역의 사람들이 공자를 연속 5일간 구금했고 공자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제자들은 모두 근심이 태산같았다. 그러나 공자는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주문왕(周文王)이 죽은 이후 지금까지 전대의 문화는 모두 내 몸에 남았다. 만약 하늘이 이 문화를 없애려 했다면 나는 이를 배우고 또 장악했을 수가 없을 것이다. 만약 하늘이 이 문화를 소멸하려 하지 않는다면 광지역의 사람들이 나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후에 현지인들은 사실의 진상을 알고는 공자일행을 풀어 주었다.
공자는 정(鄭)나라에 이르러 또 제자들과 흩어졌다. 공자가 홀로 성 동문밖에 서 있는 것을 정나라 사람이 보고는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에게 이렇게 말했다. “동문밖에 어떤 사람이 서 있는데 이마는 요(堯)임금과 같고 목은 고요(皐陶)와 같으며 어깨는 자산(子産)과 같고 하반신은 대우(大禹) 임금보다 좀 짧더군요. 그 재수없는 모양은 상갓집의 개와도 같았습니다.(상가지구)”
후에 자공이 이 말을 들려주니 공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누구를 닮았다는 것은 믿을바가 못되나 내가 주인을 잃은 들개 같았다는 것은 맞는 말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