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풀이: 상처 상(傷 shāng), 바람 풍(風 fēng), 패할 패(敗 bài), 풍속 속(俗 sú).
◎뜻풀이: 풍속을 문란케 하다.
◎출처: 당(唐) 한유(韓愈) 『논불골표(論佛骨表)』
◎유래: 당(唐)나라 유명한 산문작가 한유(韓愈)는 나이 서른다섯에 도읍 장안(長安)에 와서 관직을 맡게 되었다. 당시에는 불교가 성행해 고관대작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신봉했고 황제인 당헌종(唐憲宗)까지도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어느 한번은 헌종이 성대한 의식을 차려 석가모니의 사리를 궁에 모셨다. 한유가 당헌종의 이런 행위를 반대해 『논불골표(論佛骨表)』라는 표문(表文)을 올렸다.
글의 요지는 이러하다.
“불교는 외국에 전래한 것입니다. 요,순,우(堯舜禹) 등 고대의 성인(聖人)들은 불교가 무엇인지 알리가 없었으나 나라를 잘 다스렸으며 이들은 재위한 시간이 길고 또한 장수했습니다. 불교는 동한(東漢) 명제(明帝) 때 중국에 들어왔는데 명제는 재위기간이 18년밖에 안되었습니다. 또한 송(宋)나라와 제(齊)나라,양(梁)나라,진(晉)나라와 북위(北魏) 이후의 여러 조대에서는 불교를 깊이 믿었으나 그 조대들이 존속한 역사는 매우 짧았습니다. 특히 양무제(梁武帝)는 제례때 가축을 사용하지 않고 육식도 하지 않았으며 세번이나 절에 출가한 적이 있었으나 반란군에 포위되어 아사(餓死)하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부처의 사리를 궁에 모셨고 이에 왕공귀족들이 너도나도 보시를 하니 대량의 재물을 낭비하는 것이옵고 일부 백성들이 우매하여 지어는 자기 몸에 불을 붙이는 방법으로 부처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회풍기를 문란케 하는(상풍패속) 이런 일은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되고 있으니 이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옵니다. 신이 보기에는 그 사리를 물에 버리거나 불속에 던져야 마땅합니다.”
헌종이 이 표문을 읽고는 크게 노했다. 그는 한유가 황제인 자신을 오래 살지 못할것이라 저주한 것이라 생각하고 한유를 죽이려 했다. 다행히도 재상(宰相)인 배도(裵度)가 한유를 위해 극구 변명을 해주었고 한유는 결국 외관(外官)으로 좌천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