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풀이: 열매 실(實 shí), 일 사(事 shì), 구할 구(求 qiú), 옳을 시(是 shì).
◎뜻풀이: ①실사구시. ②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토대하여 진리를 탐구하다.
◎출처: 한(漢) 반고(班固) 『한서•하간헌왕전(漢書•河間獻王傳)』
◎유래: 유덕(劉德)은 한경제(漢景帝) 유계(劉啓)의 아들이며 하간(河間, 현재의 하북 하간현일대)지역을 분봉받아 하간왕으로 되었다. 사후에는 익호를 “헌(獻)”이라 했기에 ‘하간헌왕’이라고도 불리웠다.
유덕은 많은 고서들을 소장했는데 그중에는 거금을 들여 산 것도 있었다. 그 당시를 보면 진시황(秦始皇)이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단행한 후 고서적들이 비교적 적은 상황이었다. 일부 문인들이 하간왕이 서책소장을 즐긴다는 말을 듣고는 조상들이 남겨준 진(秦)나라 이전 시기의 서책을 유덕에게 바쳤고 그중의 일부 사람들은 이를 인연으로 유덕의 문객으로 들어가 함께 학문을 연구하군 했다.
어느 한번은 유덕이 당시의 도읍인 장안(長安)에 갔다. 그때의 황제는 한무제(漢武帝) 유철(劉徹)이었는데 유덕은 무제와 조정관원들과 함께 고대 학술의 일부 이치들을 논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고의 『한서•하간헌왕전』에서는 유덕을 “학문을 깊이 하고 실사구시했다(修學好占,實事求是)”고 소개했다.
당(唐)나라 때에는 안사고(顔師古)라는 학자가 반고의 이 말에 “사실을 근거로 하고 정확한 결론을 구했다(務得事實,每求眞是也)”는 주해를 달았다. 이것이 바로 실사구시의 출처이다. 이 성어의 글자풀이로 보면 상술한 해석이 맞으나 유덕이 학문을 대하는 태도가 정말 “실사구시”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