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2 10:25:18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촌-34] 염촌: 복건 선비의 첫 동네

(사진설명: 아름다운 염촌의 일각)

중국의 고촌(古村) 시리즈 서른 번째는 복건 선비의 동네 염촌(廉村, Liancun)이다. 염촌에 들어서면 바위와 정자, 고목, 저녁놀, 맑은 냇물, 스러운 건물이 어울려 비경이다.

염촌은 원래 염촌이라 부르지 않았다. 설령지(薛令之)라는 사람이 복건(福建, Fujian) 최초로 진사(進士) 급제하고 벼슬을 했는데 청렴하기로 유명해 ()나라 황제가 그의 고향에 청렴한 동네라는 뜻으로 염촌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그로부터 염촌을 흐르는 시냇물은 염하(廉河)이고 염촌을 둘러싼 산은 염령(廉嶺)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오늘날 염촌에는 마조묘와 진수안택(陳樹安宅), 총명천(聰明泉), 설령지 생가, 설령지가 글을 읽던 영곡초당(零谷草堂) 망라해 많은 건물과 문화재가 남아 있다.

마을을 둘러싸고 조성된 성벽 염촌고보(古堡) 길이가 1400m, 두께가 3.6m, 높이가 4.4m 달하는 방어적 성격을 가진 시설이다. 여섯 성문은 유교학적 차원에서 염문(廉門), 충문(忠門), 효문(孝門), 예문(禮門), 의문(義門), 신문(信門)이라는 이름을 가진다.

오늘날까지 남아 내려오는 성문은 충문과 효문뿐이며 성문앞으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 염계, 곁의 무성한 , 기슭의 부두, 삼삼오오 빨래하는 여성들과 어울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성벽의 남쪽에는 당송(唐宋)시기의 부두가 완정하게 보존되어 있다. 커다란 자갈이 깔려 있는 돌계단이 비스듬히 하천바닥으로 뻗어 있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곳은 과거에 인근에서 유명한 중심부두였다고 한다.

염촌에는 또한 옛적에 관료들만이 오갔던 육로인 ()나라때의 고관도(古官道) 있다. 청석을 줄이나 줄로 길게 깔고 좌우에 굵은 자갈을 고관도는 염촌의 마을안까지 통한다.

돌과 자갈은 다양한 무늬를 만들면서 여러 가지 의미를 보여준다. 벼이삭 모양의 무늬는 풍작을 의미하고 파도형은 단합을, 계단형은 승진을 의미한다.

고관도와 골목의 양쪽에는 높은 하얀 담벽의 명청시기 건물들이 즐비하다. 어젯날의 소박함과 정교한 조각물을 지금까지 보존한 고건물들은 염촌의 역사를 가장 보여주는 매개물이다.

청나라때 신축한 일문오진사(一門五進士) 선비가문의 특징을 보여준다. 문위의 취일첨운(就日添雲)” 웅장한 기백과 장원한 뜻을 나타내는 간판이다.

그리고 고처시돈(古處是敦)”이라는 말은 집의 가훈으로 사람들처럼 서로 화목하게 지내고 순박함을 잃지 말라는 의미를 전한다. 건물에는 이밖에도 많은 글들이 좋은 내용과 깊은 서예기법을 보여준다.

염촌에는 후호궁(後湖宮) 진씨종사(宗祠), 진씨장사(長祠), 진씨차사(次祠), 진씨삼사(三祠) 사당만 해도 다섯개나 있다. 이로부터 염촌 진씨가문의 번성과 문화적 분위기를 느낄수 있다.

명나라 초반에 지은 설씨가문의 사당인 후호궁은 문루와 무대건물, 뜰과 주변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의 중앙에는 설령지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고 상단의 벽에는 물은 배를 띄울수도 뒤집을수도 있으니 관료라면 백성을 위하고 세상에 복을 마련하라 의미의 복재자생(覆載資生)”이라는 글자가 씌여져 있다.

별채에는 역대로 사당을 보수한 기록과 사당에 자금을 제공한 사람의 이름이 적힌 비석이 놓여 있다. 또한 염촌의 가보로 인정되는 정교한 입체조각의 병풍이 눈길을 끈다.

오늘날 염촌의 모든 학생들이 대입이나 고입때면 먼저 곳에 와서 설령지의 조각상앞에서 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소원을 빈다. 염촌에 대한 설령지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명나라 후반에 지은 진씨종사는 염촌에서 규모가 가장 사당이다. 무대건물을 겸한 문루(門樓) 안채, 별채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무대 건물위의 태자정(太子亭) 특이하다.

오늘도 해마다 동지날이면 염촌의 모든 사람들이 곳에 모여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 다른 개의 사당에서 덕망이 있고 삼대가 함께 사는 노인을 한명씩 선정해 윤번으로 종사의 제사를 사회하게 한다.

사회자는 자손의 도움을 받으며 종사의 정문에서 시작해 도합 360회에 걸쳐 절을 하면서 종사의 안채에 이른다. 안채의 홀에는 돼지와 양을 비롯한 제물이 놓여져 있으며 점심에 시작되는 제사는 밤이 어두워야 끝난다. 동시에 사흘밤 사흘낮 내내 노래와 춤판이 벌어져 인근 사람들까지 모여와 즐긴다.

이밖에 진씨삼사에는 분야의 유지 300여명이 직접 서예작품이 전시되어 있기도 한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벽에 씌여져 있는 청렴할 ()자가 눈길을 끈다.

염촌은 인근에 이름이 자자한 진사촌(進士村)이기도 하다. 가문에서 다섯 진사가 났다는 일문오진사 부자 삼명이 모두 진사라는 부자 삼진사”, 삼형제 과거급제를 이미하는 형제삼무거(兄弟三武擧)” 미담이 많이 전해진다.

송나라때만 해도 1109년부터 1258년까지의 150여년동안 염촌의 설씨가문과 진씨가문에서는 과거에 급제한 진사가 17명이 났으며 설씨가문과 진씨가문에서는 도합 33명의 진사가 났다고 한다.

염촌에서는 광병(光餠)이라는 떡을 먹어야 한다. 떡을 반으로 접어서 속에 굴을 싸서 먹으면 고소한 맛과 싱싱한 해물의 맛이 어울려 별미이다.

위치: 복건(福建, Fujian) 녕덕(寧德, Ningde) 복안(福安, Fu’an) 계담(溪潭, Xi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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