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아름다운 병안촌)
중국의 유명한 고촌(古村) 시리즈 중 아흔 번째는 고요한 명청시기 보루동네 병안(丙安, Bing’an)촌이다. 한 갈래의 물길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한 병안촌은 오늘날까지 명청(明淸)시기 보루의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오고 있다. 바같세상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병안촌의 옛 길을 거닐면 낡은 집과 오래된 기와, 색바랜 처마에서 세월의 풍상고초가 보이는 듯 하다.
삼면이 적수(赤水)에 안겨 있는 병안은 원래 병탄(炳灘)으로 불렀는데 마을에 자주 화재가 발생하면서 병(炳)자의 불 화(火)를 떼내고 병(丙)자를 사용하면서 아예 여울 탄(灘)자도 편안 안(安)자로 바꾸어 병안(丙安)으로 이름을 고쳤다.
동네 양쪽에 위치한 예스러운 산채문은 지금도 완전하게 보전되어 있다. 상하 이층으로 된 산채문은 너비 2m, 높이 7m로 아담하면서도 운치를 자랑한다.
(사진설명: 물가의 건물)
산채문밖에는 돌 계단이 배를 대는 물가까지 뻗어 있고 양쪽에는 키 높은 고목이 하늘을 찌른다. 양쪽 벼랑의 움푹 패인 곳에는 크고 작은 고상가옥들이 즐비하게 장관을 이룬다.
녹음속에 몸을 감춘 이런 건물들은 혹은 허공에 떠 있는 듯 하고 혹은 외다리 기둥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있어서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건물사이에는 벼랑을 따라 낸 돌계단이 꼬불꼬불 뻗어 있다.
산채문에 들어서면 양쪽의 아찔한 벼랑에 가려 하늘이 가는 실처럼 보이는 일선천(一線天)을 지나야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커브를 돌면 길이 보이지 않아 마치 막다른 골목이 이른 듯 하다.
(사진설명: 병안촌의 건물과 강물)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 곳에 넓은 청석을 깐 길이 눈앞에 나타나 순간 선경에 들어선 듯 몸과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게 된다. 그 길이 바로 400m길이의 인근에서 주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시장인 병안촌의 옛 길이다.
푸른 이끼가 가득한 청석을 밟으며 페인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원색의 나무문위로 노오란 황혼의 햇빛이 비치면 색바랜 사진을 보는 듯 세월의 무상함과 고풍스러움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병안촌은 예로부터 교통요충지로써 병안촌 사람들은 주로 여인숙과 식당, 다방을 경영한다. 외지에서 온 상인들도 이 곳에 눌러앉아 사업하면서 양호회관(兩湖會館)이라고 하는 우왕궁(禹王宮)을 세우기도 했다.
(사진설명; 병안촌의 다리)
청나라때 적수하 물길을 대폭 정리한 후 이 곳은 소금업자들이 머물다 가는 곳이 되면서 시장이 더욱 커지고 마을은 더욱 번성일로를 달리게 되었다.
신비로운 청석교(淸石橋)는 길이가 28m, 너비가 1.4m이며 교각과 교면은 모두 커다란 바위로 되어 있다. 아무런 선진설비도 없었던 과거에 어떻게 커다란 바위를 움직였는지 지금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난간에는 용 두 마리와 사자 두 마리를 정교하게 새겼는데 사자 두 마리는 이에 앞서 있은 홍수에 어디론가 밀려가고 용 두마리는 계속 남아 다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설명: 병안촌의 건물과 폭포)
삼면이 강물에 둘러싸인 병안촌은 강물의 수면으로부터 14m 높은 험준한 절벽위에 위치해 수비가 용이하고 공격이 힘들며 따라서 이 곳은 줄곧 군사가들이 너도 나도 다투는 요충지였다.
중국혁명시기 공농홍군(工農紅軍)이 2만 5천리 장정을 할때 홍1군단 사령부가 바로 이 곳에 지휘부를 두고 홍군의 적수하 도강작전을 지휘하면서 혁명의 승리를 거두었다.
병안의 자연경관도 아주 기이하다. 손님을 맞이하는 폭포라는 뜻으로 영객폭(迎客瀑)이라는 이름을 가진 폭포는 너비 7m, 높이 14m에 달하는데 백여년의 수령을 가진 고목그루에서 솟아나 강물위로 날아내린다.
부두위의 산 허리에도 고목이 한 그루 자라는데 나무 뿌리만 산속에 깊이 박고 몸 전체는 산 아래로 내밀어 강물을 바라보는 듯 하다. 이 고목은 병안촌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지키는 견증자일 것이다.
위치: 귀주(貴州, Guizhou)성 준의(遵義, Zhunyi)시 적수(赤水, Chishui)시 병안(丙安, Bing’an)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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