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09:08:13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3] 항주: 인간세상의 천당

(사진설명: 아름다운 항주)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세 번째는 인간세상의 천당, 화려한 도시 항주(杭州)이다. 천백 년 동안 수많은 문인묵객들이 이 도시에 매료되어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항주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라 감탄했고 송(宋)나라 문호 소동파(蘇東坡)는 “맑은 날이면 찰랑이는 호숫물이 햇빛아래 눈부시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먼 곳의 산색이 보일 듯 말 듯 몽롱해 아름답다”고 썼다.

항주는 과거에 전당(錢塘)이라 불렀고 589년 수(隨)나라 때 전당군을 페지하고 항주로 개칭했으며 봉황산(鳳凰山)에 성을 쌓기 시작한 오월왕(吳越王)이 이 곳에 왕성(王城)을 축성하면서 도시의 규모를 갖추었다.

남송(南宋)이 도읍을 임안(臨安), 오늘의 항주로 천도하면서 오월 왕성을 황궁으로 증축하고 산 위에 웅장하고 눈부신 궁전을 신축했다. 이 곳에는 한 때 장엄한 전각과 말발굽 소리 우렁찬 금군(禁軍)의 훈련장, 금빛으로 눈부신 누각,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지만 남송 후반의 전란으로 모두 소각되어 오늘날은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봉황산)

휘황찬란했던 건물은 다 사라지고 오늘날은 봉황산에 일부 석각과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비석들이 바위들 속에 산재해 이 산의 눈부셨던 어제를 말해준다. 과거의 황궁 건물은 더는 볼 수 없지만 황제가 궁을 나와 산수를 즐길 때 건설했던 어가(御街)는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남쪽으로 황성의 북문인 화령문(和寧門)에서 출발해 북쪽의 천수교(天水橋)에 이르는 어가의 양쪽에는 10보 너비로 벽돌을 깔고 가운데는 모래를 깔고 그 하단에 배수로를 파서 이 길은 아무리 비가 많이 내려도 물이 고이지 않는다.

과거 새 계절이 시작되면 황제는 호호탕탕한 대오를 거느리고 황궁에서 나와 이 어가를 통해 궁궐 밖의 다른 거처로 이동했다. 그 때면 어가 양쪽의 가게는 다 문을 닫아야 했고 백성들도 거리에 나올 수 없었다.

(사진설명: 항주의 운하)

과거의 그 어가가 바로 오늘날의 중산로(中山路)이고 거리 가운데 위치한 고루(鼓樓)는 조천문(朝天門)이라고도 하는, 항주에서 유일하게 보존된 성루(城樓)이다.

과거 황성은 조천문을 경계선으로 해서 조천문의 남쪽에는 조정의 관아가 자리잡고 조천문을 나서면 서민들이 살아가는 곳이었다. 거기에서 더 북쪽으로 가면 중안교(衆安橋)인데 남송(南宋) 때 이 곳은 항주에서 규모가 가장 큰 유흥장소여서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며 연극과 설창을 하는 등 거의 모든 놀이가 집중되었다.

세계적으로 길이가 가장 긴 인공운하인 경항(京杭) 운하와 조수로 유명한 전당강(錢塘江)이 도시를 가로 질러 흐르며 얼기설기한 물길과 여기저기 산재한 호수, 풍부한 물산으로 항주를 ‘물고기와 쌀의 고장’, ‘실크의 고장’, ‘인간세상의 천당’으로 만든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서호와 항주)

강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항주라면 항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당연히 서호(西湖)이다. 송나라 문호인 소동파는 “이 세상에 서호가 서른 여섯 개나 있지만 그 중 항주의 서호가 최고”라고 평가했다.

소녀와 같이 청아하고 수려한 서호는 삼면이 산에 둘러싸여 산 좋고 물 맑은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진한 분장을 하든 연한 화장을 하든 언제나 아름다운” 미인과 같다.

곳곳에 명승이 펼쳐진 서호는 60km²의 면적에 40여 곳의 명소를 품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명소는 ‘서호 십경(十景)’과 ‘신 서호 십경’이다. 서호 십경 중 대표적인 경관은 ‘미니 영주산(瀛州山)’이라 불리는 삼담인월(三淡印月)이다.

(사진설명: 달밤 서호의 삼담인월)

옛날 소동파는 서호를 정비하면서 호수의 바닥에서 파낸 진흙으로 호심에 섬을 만들고 섬의 둘레에 언제를 쌓아 ‘호수에 섬이 있고 섬에 호수가 있는’ 정원을 조성했다.

섬에는 남북으로 꼬불꼬불 뻗은 구곡교(九曲橋)를 만들고 동서방향의 언제에는 나무를 심어 녹음이 무성하게 했다. 섬에는 또 선현사(先賢祠)와 구사석(九獅石), 개망정(開罔亭), 화조청(花鳥廳), 삼담인월비 등 다양한 모양의 많은 건물이 산재해 있다.

소동파는 서호를 정비할 때 호수에 세 개의 석 탑을 세워 세 탑의 주변에서는 연의 재배를 금지시켰다. 호수 바닥에 진흙이 싸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소동파가 쌓은 기존의 탑은 무너지고 지금 보이는 석 탑은 명(明)나라 때 다시 세운 것이다.

(사진설명: 서호의 아름다운 뇌봉석조)

이 세 탑은 높이 2m가 조금 넘고 속이 비어 있다. 둥근 공 모양의 탑 외벽에 다섯 개의 구멍을 내서 달 밝은 날 밤 그 속에 촛불을 켜면 호수에 어린 달빛과 불빛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서호의 또 다른 경관인 뇌봉석조(雷峰夕照)는 서호의 남쪽 기슭에 솟은 석조산(夕照山)에 위치해 있다. 석양 때면 높이 솟은 탑이 금빛으로 빛나고 그 모습이 호수에 어려 황홀하다.

벽돌로 쌓은 뇌봉탑의 외곽에는 나무로 회랑을 만들고 탑의 내부에는 <화엄경(華嚴經)>을 새겼으며 탑의 지하에는 금빛의 16 나한상을 공양하고 있다. 뇌봉탑이 유명한 또 다른 원인은 자신을 살려준 은혜를 갚고자 인간으로 환생해 한 선비를 사랑한 흰 뱀이 이 곳에 갇혀 있었다는 전설 때문이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서호의 일각)

신 서호 십경 중 하나인 호포몽천(虎跑夢泉)은 서호 남쪽의 대자산(大慈山) 정혜선사(定慧禪寺)에 위치해 있다. 전한데 의하면 당(唐) 나라 때 한 승려가 이 곳에 머물다가 이 곳에 물이 없다고 다른 곳으로 가려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승려는 꿈에 한 신선을 만났다. 그 신선은 승려에게 “남악 형산(衡山)에 동자천(童子泉) 샘이 있는데 두 마리 호랑이에게 시켜 그 샘물을 이 곳으로 옮겨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승려가 잠에서 깨어나니 과연 호랑이 두 마리가 땅을 팠고 그러자 샘물이 퐁퐁 솟아났다고 전해지며 그로 인해 이 샘은 호포몽천이라 불린다. 현재도 맑고 단 이 샘물은 용정차(龍井茶)와 더불어 ‘절묘한 서호의 두 가지 명물’로 인정된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영은사)

아름다운 서호는 자연이 내린 것이자 역대 선인들이 창조한 것이기도 하다. 자자손손 내려 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서호에 아름다운 경관을 조성했기 때문에 오늘날 서호는 많은 사람들이 꿈에도 찾는 명소가 되었다.

항주에 오면 사람들은 모두 첫 번째로 서호를 보고 두 번째로 영은사(靈隱寺)를 찾는다. 서호 서쪽의 비래봉(飛來峯) 을 마주한 영은사는 16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전한데 의하면 동진(東晉) 때에 인도의 한 승려가 산 봉우리가 기이하고 경치가 수려한 이 곳에 신령한 선인이 숨어 있다고 여겨 이 곳에 절을 짓고 영은이라 이름했다고 한다.

(사진설명: 기이한 비래봉의 일각)

천오전(天五殿)과 대웅전(大雄殿), 약사전(藥師殿), 운림장사(雲林藏寺) 등으로 구성된 영은사는 중국 불교 선종(禪宗)의 10대 유명 사찰 중 하나이다. 영은사의 곁에는 또 강남에서는 보기 드문 고대 석굴 예술의 보고인 비래봉이 있다.

168m 높이의 비래봉은 석회암으로 구성된 바위산으로 주변 환경과 전혀 다른 모습이어서 유난히 눈에 띈다. 기이한 바위와 울창한 고목이 즐비한 비래봉에는 72개의 동굴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비래봉의 이런 동굴과 시냇물 기슭의 바위에는 오대(五代) 때부터 송나라, 원나라 시기의 석각물 470여 점이 있어 비래봉 석각은 사천(四川)의 대족(大足) 석각과 그 아름다움을 비견한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항주)

비래봉에서 가장 일찍 조성된 석각물의 대표작은 청림동(靑林洞) 입구의 오른쪽 바위에 새겨져 있는 미륵보살과 관음보살, 대세지(大勢至) 등 3기의 불상이다.

바위는 모두 기이하고 나무는 모두 고목이며 동굴은 모두 아늑한 비래봉은 수려하고 절묘한 경치로 독특함을 자랑한다. 영은사와 비래봉을 거닐면 불교예술의 매력을 만끽하고 아름다운 서호의 산수 속에서 그 속에 함유된 풍부한 역사문화적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아름다운 항주는 뛰어난 정치가와 문학가, 예술가, 과학자, 충성스러운 지사, 현명한 관리 등을 배출했고 그들은 또 항주에 수많은 흔적을 남겨 오늘날 항주가 ‘문화의 도시’, ‘역사의 도시’ 가 되게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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