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09:43:38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8] 정주: 중국 제8의 고도

(사진설명: 아름다운 정주)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여덟 번째는 중국 제8의 고도(古都)인 정주(鄭州)이다. 정주에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유적지들이 아주 많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부지가 25km² 밖에 안 되는 정주 상성(商城) 유적지가 가장 유명하다.

한 때 눈부셨던 고도의 유적지에 들어서면 편종(編鍾)이 내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리는 듯, 상(商)나라 왕과 대신들이 연회에서 맛 있는 음식을 나누던 장면이 보이는 듯 하다.

중국의 중원(中原), 그 중원에서도 가장 중심지에 위치한 정주는 서쪽으로 숭산(嵩山)에 의지하고 북쪽으로는 황하(黃河) 강과 이웃한다. 중국의 민족 문화가 형성된 중심지역에 위치한 정주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다.

(사진설명: 황제고향 명소)

중화민족의 비조라 알려진 황제(黃帝)는 정주인이라고 전해진다. 전설에 의하면 황제와 염제(炎帝)는 치우(蚩尤)의 부락을 격파한 후 정주 남쪽에서 20km 떨어진 곳의 헌원지구(軒轅之丘)에 웅(熊)나라를 세웠다.

오늘날 신정(新鄭)시 북관(北關)의 헌원구에 황제고향(黃帝故里) 명소가 조성되어 있다. 오래된 사당이 있고 사당 앞에 ‘헌원고리(軒轅故里)’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세워진 이 곳은 예로부터 중국인들이 민족의 뿌리를 찾고 조상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찾는 성지 중 하나이다.

3600년 전 이 곳은 상 왕조의 중요한 도읍(都邑)으로 당시 이 곳에 주거한 인구는 4만명에 달해 이 곳은 상 왕조의 정치와 군사,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가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 뒤의 서주(西周)시기에도 정주는 역시 주 나라 동부의 중요한 도시였다.

(사진설명: 정주의 대운하)

중국 역사상 최초의 노예제 왕조인 하(夏) 나라가 오늘날의 정주시 등봉(登封), 즉 양성(陽城)에 도읍을 정했으며 그 뒤의 수(隨) 나라와 당(唐) 나라, 오대(五代), 송(宋) 나라, 금(金) 나라, 원(元) 나라, 명(明) 나라, 청(淸) 나라 여덟 왕조 때에는 모두 정주에 주(州)로 두어 관리했다.

수나라 때인 583년부터 정주라는 지명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수양제(隋煬帝)가 대운하와 통제거(通濟渠)를 개통한 후 정주는 ‘상인들이 오가고 배가 끊이지 않는’ 번화함을 유지하면서 중국에서 수륙교통의 중요한 허브로 부상했다.

중화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이자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정주에는 많은 고대문화 유적과 하(夏), 상(商), 주(周) 시대의 고성(古城) 유적지들이 많이 남아 있다.

(사진설명: 정주 상성 유적지)

정주시 도심에 위치한 정주 상성 유적지는 면적이 25km² 이며 단면이 장방형으로 되어 있다. 3600년전 이 곳은 중국의 상 나라 때 가장 이르고 가장 큰 왕도(王都)로 높은 성벽과 웅장한 궁궐, 다양한 수작업 공방, 제사 장소, 청동기, 방어시설, 급수와 배수 시설 등을 보유했다.

그 밖에 상성 유적지는 중국 역사상 성곽이 있는 최초의 왕도이다. 현재도 성에는 7km 길이의 상나라 성벽이 보존되어 있는데 성을 쌓는데 총 87만m³의 흙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토록 엄청난 공사를 3000여년 전에 진행했다니 인류 역사의 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주 상성에서는 또 수천 수만 점의 문화재가 출토되었다. 그 중에는 청동기와 석기, 골기, 옥기, 도기, 원초적인 자기 등 유물이 망라되며 그 밖에 칼로 글을 새긴 뼈와 무늬가 그려진 도자기도 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하남 박물원)

정주 상성에서 출토된 문화재 중 옥으로 만든 창과 옥으로 만든 대패, 마노 등이 가장 유명하다. 정주 상성 유적지의 발견은 상나라 때의 노예사회와 중국 고대 도시의 형성, 그리고 그 발전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유적지와 문화재들을 통해 정주의 유구한 역사를 읽을 수 있지만 진정으로 정주의 역사를 이해하고 정주의 눈부신 어제를 이해하려면 하남박물원을 찾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지하에서 수천 년을 잠자던 문화재들이 인간에 의해 조심스럽게 출토되어 이 곳에 전시되었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사람들은 말 없는 전시물을 통해 머나먼 옛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사진설명: 하남 박물원의 전시물)

웅장하고 독특한 외관을 자랑하는 하남 박물원은 원나라 때 천문학가인 곽수경(郭守敬)이 만든 관성대(觀星臺) 유적지에 의해 설계했다. 메인 건물의 비스듬한 벽체에 박힌 하얗고 작은 등은 별을 방불케 하고 둥근 천정과 천정에서 날아 내린 채색의 벨트는 하늘에서 흘러 내리는 황하 강을 상징하면서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중화문명을 의미한다.

박물원에 소장된 13만 점의 문화재 중에는 ‘중국의 제일’, 심지어 ‘세계의 제일’이 적지 않아 그 속을 거닐면 마치 지식의 보고와 예술의 전당에 들어선 듯 착각하게 된다.

정주에는 풍부한 고대 문화 외에도 근대 중국 혁명의 역사 유적지도 적지 않다. 근대 중국에서 유명한 ’27 대파업’이 바로 이 곳 정주에서 있었고 파업의 영웅들을 기념하기 위해 정주시 도심에 27 기념탑을 세웠다.

(사진설명: 눈부신 27 기념탑의 야경)

눈부신 빛을 뿌리는 27 기념탑은 정주의 심벌이고 기념탑 주변에 상권이 조성되어 인권과 자유를 위해 희생된 2명의 열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쌍탑(雙塔)은 정주라는 이 도시의 문명 부호가 되었다.

높이 63m에 14층으로 된 27탑에 올라서면 아름다운 정주가 한 눈에 안겨오고 저 멀리 북쪽으로는 아름다운 황하 강이 아련하게 보인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정주에서 27탑에 오르지 않았다면 정주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황하 풍경구)

정주에서 서북쪽으로 27km 가면 유명한 황하 풍경 명승구에 이르게 된다. 북쪽으로 황하 강과 연결되고 남쪽으로 악산(岳山)에 의지한 풍경구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황하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원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풍경구에는 오룡봉(五龍峰)과 악산사(岳山寺), 낙타령 등 40여개의 볼거리가 있으며 대 규모 조각과 많은 정자, 누각 등이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조각은 자애로운 어머니가 잠 든 영아를 품에 안고 있는 <포육(哺育)>이다.

악산의 정상에 세운 부천각(浮天閣)에 올라서서 바라보면 저 멀리 흘러 가는 강물과 푸른 하늘이 하나로 이어져 웅장하고 수려하며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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