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아름다운 수현고성)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스물 네 번째는 송(宋)나라 때의 도시 수현(壽縣)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의 고장인 수현고성은 춘추(春秋) 시기에 벌써 이 지역의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수현은 또한 두부의 발상지이자 역사상 유명한 비수(淝水) 전투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안휘(安徽)성의 중부에 위치한 수현은 2500여년의 역사를 보유한 고성이다. 수현은 고대에 수춘(壽春)이라 불렀으며 은(殷) 나라 때 남방 제후의 임지였고 주(周) 나라 때는 주래국(州來國)의 땅이었다.
기원전 493년, 초소왕(楚昭王)이 채(蔡) 나라를 공격하자 채소후(蔡昭侯)는 오(吳) 나라에 도움을 청하며 수춘(壽春)으로 도읍을 옮겼다. 기원전 214년 초나라가 수춘에 천도하고 ‘영(郢)’이라 개명한 후 대 규모 도시건설을 진행했다.
(사진설명: 수현고성 성문)
2000여년 전에 인구가 많고 도시 면적이 넓은 수현은 당시 중국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중 하나였다. 기원전 221년 진(秦) 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 이 지역에 구강군(九江郡)을 세우고 수현에 군 소재지를 두었다.
한(漢) 나라 초반 회남왕(淮南王) 유장건(劉長建)이 이곳에 도읍을 두었고 기원전 122년 회남국이 망하고 구강군을 회복했다. 동한(東漢) 후반에 원술(元術)이 황제라 칭하고 이곳에 도읍을 정했으며 동진(東晉) 후반에 효무제(孝武帝)의 황후 정아춘(鄭阿春)의 이름을 피해 수춘을 수양(壽陽)으로 개명했다.
수(隨) 나라 때에 이르러 구강군을 폐지하고 수주(壽州)를 두었으며 당(唐) 나라 때 이곳은 회남도(淮南道)에 속했고 송(宋) 나라 때 수춘부(壽春府)를 설립하고 성을 쌓았는데 그 성이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다.
(사진설명: 수현고성의 성벽)
초 나라의 도읍이자 고대의 전장이며 초(楚) 문화의 고향인 수현에서는 많은 인물들이 났고 곳곳에 문화재가 산재한 수현은 ‘지하 박물관’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 중 ‘중국 제일의 못’이라 불리는 안풍당(安豊塘)과 완전하게 보존된 송나라 때 성벽, 회남왕 유안(劉安)의 무덤, 조(趙) 나라 대장군 염파(簾波)의 무덤, 강회(江淮)의 불교사원 보은사(報恩寺), 화동(華東)지역 최대의 이슬람사원, 도가(道家)의 성지 사정산(四頂山), 중국 10대 샘물의 하나인 진주천(珍珠泉) 등이 대표명소이다.
오늘까지 보존된 수현의 고대 성벽은 중국의 7대 고대 성벽 중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송나라 성벽이다. 남송(南宋) 때인 1200년대에 축조한 수현의 성벽은 둘레가 7,147m에 달하고 동서남북에 네 개의 성문을 두었으며 성문에는 원래 모두 옹성(瓮城)이 있었다.
(사진설명: 수현고성의 성문과 월패)
수현고성의 성문 앞에는 월패(月坝)라고 하는 특이한 홍수방지 시설이 축조되어 있다. 성문 밖에 조성된 이 월패로 인해 성밖에 아무리 큰 물이 져도 성안은 홍수의 피해를 전혀 입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안의 물은 내성하(內城河)를 따라 성밖으로 흘러 나가고 성밖의 수위가 성안에 비해 높을 때면 월패의 수위도 따라서 높아져 성밖의 물이 성안으로 흘러 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성안에서는 월패의 수위에 따라 성밖의 수위를 알 수도 있다.
1991년 안휘에 큰 물이 져서 수현고성은 50여일간 홍수에 포위되었으나 성안의 주민들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여전히 정상적인 일상을 이어나갔다.
(사진설명: 수현고성의 일각)
초유왕묘(楚幽王墓)는 현재 중국에서 발굴된 초 나라 무덤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연대와 무덤 주인이 확실하며 출토 문화재가 가장 많은 제후 왕의 무덤이다.
이 무덤에서는 4,000여 점의 문화재가 출토되었으며 그 중 청동기가 가장 많아 1,000여점 이상이다. 무게 400kg의 초대정(楚大鼎)은 중국에서 사이즈가 가장 크고 무게가 가장 무거운 주(周) 나라 때의 정이자 현재까지 중국에서 출토된 최대의 원형 모양의 정이다. 초대정은 사이즈는 크지만 무늬는 아주 세밀한 것으로 유명하다.
수현에서 남쪽으로 30km 거리에 위치한 안풍당은 사면에 언제를 쌓은, 둘레 100km 이상의 큰 못이다. 춘추(春秋) 시대 초(楚) 나라 재상 손숙오(孫叔敖)의 주도로 건설한 이 수리시설은 하천의 물을 받아 들이고 홍수를 방류하며 주변의 옥토를 관개하는 역할을 하면서 초나라의 정권유지와 경제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안풍당)
2500여년 전의 수리시설인 안풍당은 오늘날에도 수면 면적 34㎢, 저수량 1억 ㎥에 달한다. 1972년 유엔 댐 위원회는 내외 전문가들을 조직해 안풍당을 돌아보고 ‘천하 제일의 못’이라고 평가했다.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문화를 보유한 수현에서는 역대로 많은 명인들이 났다. 전국(戰國) 시기 4군자 중 한 명인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이 이 곳을 임지로 받았고 그후 곳에서 죽었다.
사람들은 황헐을 기념하기 위해 수현성안에 춘신방(春申坊)과 춘신대(春申臺) 등을 축조했다. 회남왕 유안은 또 수 천명의 빈객(賓客)과 방사(方士)를 이곳에 불러 도를 논하며 <회남자(淮南子)>를 펴냈다. 이 저서에서 논한 연단술은 중국의 화학발전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팔공산)
팔공산(八公山)은 두부의 발상지이다. 전한데 의하면 회남왕 유안이 소비(蘇非), 좌오(左吳)를 비롯한 팔공(八公)과 함께 이 산에서 불로장생을 위한 연단술을 연구했으나 선단(仙丹)은 조제하지 못하고 대신 두부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색깔이 하얗고 맛이 개운하며 식감이 부드러운 공산두부는 현지의 샘물로 만들어 특히 식감이 부드럽고 색상이 희며 콩 비린냄새가 나지 않아 두부 중의 일품으로 인정된다.
수현에서 회남왕과 연관되는 것은 두부만이 아니라 회왕어(淮王魚)에도 회남왕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돌아온 물고기라는 의미의 회왕어(回黃魚)라고도 불리는 이 물고기는 회하(淮河) 강이 경유하는 흑룡담(黑龍潭)에서 난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수현고성)
모양이 메기와 비슷하고 주둥이가 납작하며 비늘이 없는 회왕어는 물밑의 바위 틈에서 자란다. 이 물고기는 맛도 좋아서 서한(西漢) 때 사람들이 회남왕 유안에게 바쳤다.
요리를 맛 본 회남왕은 맛이 좋다고 칭찬하며 돌아온 물고기라는 의미로 회황어(回黃魚)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후에 사람들은 회남왕이 이 물고기 요리를 좋아한다고 해서 회왕의 물고기라는 의미로 회왕어(淮王魚)라고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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