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5 09:45:45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33] 임해: 바닷가 신선의 나라


(사진설명: 아름다운 임해)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서른 세 번째는 바닷가 신선의 나라 임해(臨海)이다. 대주부성(臺州府城)에 들어서면 청색의 벽돌마다에 역사의 풍상고초가 새겨진 듯 하고 자양(紫陽) 옛 거리를 거닐면 바닥의 푸른 돌마다에 명청(明淸) 시기의 옛 이야기가 적혀 있는 듯 하다.

또 용흥사(龍興寺)의 수계대(受戒臺)에서 중국과 일본간 교류를 느끼고 동호(東湖)에서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강남 정원을 거닐 수 있는 곳, 이 곳이 바로 바닷가의 관광도시 임해이다.

절강(浙江) 동남 연해에 위치한 임해는 뒤에 산을 업고 바다를 마주한, 산악지대와 구릉지대 중심의 도시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임해는 하(夏)와 상(商), 주(周) 왕조 시기 구(甌)의 속지이고 춘추(春秋)시기에는 월(越)의 속지였으며 전국(戰國) 시기에는 초(楚)에 속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임해고성)

진(秦) 나라가 6국을 통일한 후 이 곳에 회포향(回浦鄕)을 두었고 서한(西漢) 때인 기원전 85년에 회포현을 두었으며 삼국(三國) 시기 오(吳) 나라 대제(大帝) 때 임해군(臨海郡)을 두었다.

622년에 이르러 임해군을 대주(臺州)로 개명했으며 진(晉)나라 때부터 대주군은 줄곧 현지 행정구역의 소재지였다. 1986년 임해현을 임해시로 격상시켰고 그로부터 임해시는 대주지역의 정치와 경제, 문화, 교통 중심지가 되었다.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인문을 자랑하는 임해는 예로부터 ‘문화의 고장’이라는 미명을 가진다. 당(唐) 나라 때 학관(學館)을 세우고 계몽교화를 시작한 후 현지에는 교육을 중시하는 붐이 형성되어 많은 유명인물들이 배출되었다.

(사진설명: 임해의 거리와 건물)

청(淸) 나라 후반에 이르러 임해에는 중학당(中學堂) 2개와 고등학당(高等學堂) 6개가 있었으며 초등학당(初等學堂)의 수는 30개에 달했다. 또 역대의 과거시험에서 장원으로 급제한 선비가 3명, 차석 급제자 1명, 삼등 급제자 1명이 나타났으며 진사(進士) 급제자는 357명에 달한다.

유구한 역사는 임해에 옛 성벽과 옛 거리, 옛 사찰, 옛 탑 등 많은 명승고적을 남겨 도시에 예스러움을 가미한다. 임해고성과 척공사(戚公祠), 도저(桃渚) 고성, 자양가 등을 거느린 임해에 들어서면 거리와 골목마다 유구한 역사를 말하고 산과 물마다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대주부성(臺州府城)이라고도 하는 임해고성은 진(晉)나라 후반에 조성을 시작했으며 당(唐) 나라 때에 대 규모 증축공사를 진행하여 강물이 성을 감돌아 흐르게 함으로써 성이 산에 의지하고 산 자락으로 물이 흐르고 물이 성을 감도는 독특한 도시를 형성했다.

(사진설명: 임해고성의 옛 성벽)

임해고성에서는 건산쌍탑(巾山雙塔)과 당 나라 때의 사원, 명나라와 청나라 때의 거리 등 어느 하나 명승고적이 아닌 것이 없다. 그 중 6,000m 길이의 성벽이 가장 대표적이다.

외적의 침입과 홍수 방지용으로 축조한 임해고성의 성벽은 1500여년의 풍상고초 속에서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오늘날까지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산세를 따라 축조되어 강물을 내려다 보는 임해고성의 옛 성벽은 마치 거대한 용이 이 땅에서 춤을 추는 듯 웅장하기 그지없다. 따라서 임해고성의 옛 성벽은 ‘강남의 팔달령 장성’이라 불리기도 한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자양 옛 거리)

구불구불 뻗은 1,080m의 자양(紫陽) 옛 거리는 서쪽에 송(宋) 나라 때의 도교(道敎) 남종(南宗)의 비조인 장자양(張紫陽)의 생가가 있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중국에서 길이가 가장 긴 이 거리는 보존도 잘 되어 지금까지도 송나라 때의 구도와 명나라, 청나라 때의 모습을 유지하며 거리의 양쪽에는 온갖 가게들이 즐비하다.

약방과 다실, 술집 등 백 년 역사의 노포들이 거리의 양쪽에 산재해 항상 흥성거리는 자양 옛 거리는 천 년 역사를 보유한 임해고성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용흥사)

임해고성의 동쪽, 건자산(巾子山) 기슭에 숙연하면서도 고요한 불교 사원 용흥사(龍興寺)가 있다. 당나라 때인 705년에 신축한 이 사원은 부지가 1만㎡에 달한다.

당나라 감진대사(鑒眞大師)가 불교의 교리를 전파하기 위해 여섯 차례나 일본을 오고 가면서 모두 이 곳을 경유했다. 그리고 용흥사의 고승 사탁(思托)이 바로 감진대사의 제자이며 그도 감진대사와 함께 여섯 번이나 일본으로 가서 불교 천태종(天台宗)을 일본에 전파했다.

일본 천태종의 비조 최징(最澄) 스님은 사탁이 전파한 천태사상의 영향을 받아 당나라에 와서 천대종의 교리를 배웠으며 일본으로 돌아간 후 일본 천태종을 창립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도저고성)

고대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일본 천태종은 ‘일본 문화의 어머니’라 불리며 이로 인해 임해 용흥사는 중일 불교 교류의 사원이자 일본 천태종의 중요한 발상지라 할 수 있다.

임해에는 외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한 명나라 때 성인 도저고성(桃渚古城)이 있다. 높이 4m의 도저고성은 명나라 때 절강 동부의 바닷가에 축조한 41개 위소(衛所) 중 유일하게 보존된 성이다.

사서 기록에 의하면 명나라의 애국 명장 척계광(戚繼光)이 바로 이 도저고성에서 일본군과의 싸움에서 9전9승의 대승을 거두었다. 오늘날 고성의 안팎에는 조각과 정자, 전시관, 옛 거리 등 많은 고적들이 남아 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동호공원)

사람들은 척계광을 기리기 위해 북고산(北固山) 자락에 명나라 때의 풍격을 모방한 척공사(戚公祠)를 세웠다. 임해는 유구한 역사와 두터운 문화적 함의를 품은 천 년의 고성이자 현대화한 신도시기이도 하다.

오늘날 임해는 연해개방도시이자 유명한 역사문화의 도시이며 귤의 고장이자 육로교통의 허브, 문화교육보건의 도시이다. 이밖에 아름다운 동호(東湖)와 운봉(雲峰) 국립 산림공원, 우두산(牛頭山) 리조트 등 다양한 명소들이 어우러져 임해를 아름답게 단장한다.

또 대주 고유의 악기와 임해 현지의 민요, 독특한 사자춤 등 민간예술은 임해에 짙은 문화적 분위기를 가미하고 팥소를 넣어 계란 흰자를 씌워 기름에 튀긴 떡과 엷은 전병에 온갖 야채를 넣어 둘둘 만 음식, 잡곡 수프 등 현지의 특미를 맛보면 또 임해의 여유로운 민풍을 체험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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