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아름다운 무석)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서른 여덟 번째는 태호 기슭의 보석 도시 무석(無錫)이다. 푸른 파도 설레는 호수 태호(太湖)와 유유하게 흘러 가는 운하가 무석을 만들었다.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곳은 태호가 아름다운 경치를 펼치고 강남의 정원이 우아함을 연출하며 그 사이에 수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호수 기슭의 보석으로 거듭난다.
강소(江蘇)성 남부에 위치한 무석은 북쪽으로 장강(長江)과 이웃하고 남쪽으로 중국 제3의 담수호인 태호를 마주한다. 경치가 수려하고 인문이 풍부한 무석은 강과 호수, 샘물과 동굴의 아름다움을 한 몸에 지녔다.
(사진설명: 옛 도시 무석의 일각)
무석은 3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옛 도시이다. 기원전 11세기 상(商)나라 후반에 주태왕(周太王)의 장남 태백(泰伯)이 왕위계승권을 포기하고 동생 중옹(仲雍)을 데리고 강남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무석의 매리(梅里)에 구오국(勾吳國)을 세우고 ‘태백성(泰伯城)’을 축성했다. 주(周)가 상(商)을 멸한 후 주무왕(周武王)이 중옹의 5세 손인 손주장(孫周章)을 오(吳)의 군주로 봉해 오나라를 건국하게 했다.
매리가 태백부터 합려(闔閭)에 이르기까지 24대의 군주에 걸쳐 600여년 동안 줄곧 오나라의 도성소재지였으니 무석은 명실공히 ‘구오의 제1도시’이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태백묘)
태백과 중옹은 또 중원의 앞서가는 농경기술과 문화를 강남에 도입해 현지의 발전을 추진했다. 그로 인해 무석은 오문화의 발상지가 되었다. 강남 개화의 이 비조를 기념하기 위해 사람들은 강남 제1의 고촌인 매촌(梅村) 태백 도성 유적지에 태백묘(泰伯廟)를 세웠다.
태백묘에는 태백묘교와 지덕방(至德坊), 향화교(香花橋), 영성문(欞星門), 태백대전 등 다수의 건물이 예스러움을 자랑한다. 태백묘와 가까운 홍산(鴻山) 기슭에는 태백릉도 조성되어 있다.
천여 년 동안 이 곳은 오씨 자손과 강남의 민중이 조상을 참배하고 뜻을 키우는 성지가 되어 사람들은 이 곳에서 눈부신 오(吳)문화의 역사를 되새긴다.
(사진설명: 오문화공원의 일각)
현재 무석시 혜산구(惠山區)에는 오문화(吳文化) 공원도 조성되어 있다. 촌민들의 투자로 건설된 중국내 최초의 오문화 정원인 이 공원에는 수선관(水鮮館)과 잠상항(䘉桑巷), 오지(吳地) 인문관 등 17개의 전시관이 현지의 생산과 인문, 민속을 펼쳐 보인다.
무석은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한 유명한 ‘물고기와 쌀의 고장’이었다. 경항(京杭) 대운하가 개통된 후 무석은 운하의 중요한 항구가 되어 경제가 더욱 발전했으며 명(明)과 청(淸)나라 때에 이르러 유명한 ‘쌀 시장’으로 부상했다.
이와 동시에 무석의 쌀을 강소 북부에 운송해가고 그 쪽의 면화를 무석으로 싣고 오는 바람에 무석은 방직업도 활성화되어 면직물을 거래하는 전문 부두까지 생겨났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무석의 일각)
탄탄한 경제에 기반해 무석의 근대공업도 상대적으로 일찍 발전을 시작했다. 1895년 양종렴(楊宗濂)과 양종한(楊宗瀚) 형제가 방적공장을 차려서부터 1900년 영종경(榮宗敬)과 영덕생(榮德生) 형제가 밀가루 공장을 설립하고 1904년 주순경(周舜卿)이 방직공장을 세우기까지 면방직업과 밀가루 가공기업을 주축으로 하는 근대 공업이 궐기해 무석은 강남 경제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무석은 교육도 중시해 1920년대 무석의 신식 학당은 청나라 후반의 120개로부터 380개로 급증했으며 무석은 초·중등 교육과 직업교육을 아우르는 교육체계를 형성했다.
그 뿐이 아니다. 무석의 철도와 교량, 공원 건설도 붐을 이루어 무석이라는 도시는 눈에 띄게 빠른 발전을 가져왔다. 이와 동시에 무석 상인들이 경영에서 축적한 성공경험과 인문정신은 중국 경제사의 소중한 자산이 되기도 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태호의 원두저)
무석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소는 태호이다. 중국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큰 담수호인 태호는 중국의 동부 연해지역에서 최대의 호수이기도 하다. 호심에 솟은 48개의 크고 작은 섬과 호숫가에 솟은 산, 반도는 도합 72개에 달한다. 이런 산과 호수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태호의 기슭에는 원두저(黿頭渚)와 용두저(龍頭渚), 마산제처(馬山諸處) 등 다양한 명소가 산재해 있는데 그 중 원두저가 으뜸이다. 아름다운 경치 속에는 또 기창원(寄暢園)과 혜산사(惠山寺), 매원(梅園), 동림서원(東林書院) 등 인문명소들이 산재해 있다.
그 밖에 무석에는 근대 중국의 산문가이자 외교가인 설복성(薛福成)과 중국의 현대 학자이자 작가인 전종서(錢鍾書)의 생가를 비롯해 명인고택도 보존되어 각자 다양한 경치와 인문을 자랑한다.
(사진설명: 영화 드라마 기지)
무석에서는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도 빼놓을 수 없다. 당성(唐城)과 삼국성(三國城), 수호성(水滸城) 세 부분으로 조성된 이 곳에서는 시기별로 다양한 풍격을 자랑하는 고건물을 감상할 수 있다.
웅장함을 특징으로 하는 삼국성은 오궁(吳宮)과 조영(曹營)을 중심으로 하고 정교함과 화려함이 특징인 수호성에서는 개봉성(開封城)이 대표이다. 또 금빛으로 눈부신 당성에는 화청지(華淸池)와 당나라 궁전이 명물이다.
이 명소에서는 매일 과거의 전쟁을 복원하는 장면과 시대 별 가무가 펼쳐지고 운이 좋으면 영화나 드라마 촬영 현장을 직접 볼 수도 있다. 또 밤이면 조명쇼도 펼쳐져 야경이 현란하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무석)
무석에는 명인의 흔적이 아주 많이 남아 있다. 오나라의 개국 군주 태백과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제(秦始皇帝), 당나라 때의 유명한 시인 이백(李白), 북송(北宋)시기의 유명한 개혁가이자 문학가인 왕안석(王安石), 북송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 청나라 때의 황제들인 강희(康熙) 제와 건륭(乾隆) 제 등이 모두 무석에 유적과 시작 등을 남겼다.
무석은 근대에 이르러서도 현대 학자이자 작가인 전종서(錢鍾書)와 중국의 유명한 화가 서비홍(徐悲鴻)과 같은 근현대 중국의 유명한 시인, 예술가, 학자, 문호를 키우기도 했다.
아름다운 산수와 풍부한 인문이 어우러진 무석은 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산수를 감상하고 유구한 문화재 속에서 옛날을 탐방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 편하게 쉴 수 있는 좋은 도시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