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4 09:12:56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40] 진강: 천하 제일의 강산

(사진설명: 아름다운 진강)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마흔 번째는 천하 제일의 강산 진강(鎭江)이다. 3000여년의 문명사를 보유한 진강은 오(吳) 문화와 초(楚) 문화의 풍격을 자랑하며 아름다운 산수 속에 풍부한 문화재를 아우른다.

세월은 흘러도 진강고성은 강남의 운무 속에서 점점 더 또렷해지며 길에 깊게 패인 수레바퀴 자국과 반들거리는 바닥 돌, 흘러 가는 장강(長江) 물로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

강소(江蘇)성의 중부에 위치한 진강은 장강과 경항대운하(京杭大運河)가 만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빛나는 보석처럼 황금수로에 박혀 있는 진강은 물가의 옛 도시와 기복을 이룬 산발, 수려한 강물로 산중에 성이 있고 성안에 산이 있는 ‘도시산림’의 미명을 가진다.

(사진설명: 옛 도시 진강의 일각)

일찍 3000년 전의 진강은 상(商)나라 때 토착민 형만족(荊蠻族)의 집거지였으며 서주(西周) 때 의후(宜侯)의 임지가 되어 ‘의(宜)’라 불렸다. 춘추(春秋)시기 오(吳)나라에 속하여 ‘곡양(谷陽)’리라 불렸던 진강은 당시 오나라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이자 오(吳)문화의 발상지이기도 했다.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 진강을 단도(丹徒)라 개명했으며 한(漢)나라 후반에는 손권(孫權)이 이 곳에 도읍을 두고 ‘철옹성(鐵瓮城)’을 쌓고 경성(京城)이라 불렀다.

그 뒤에 진강은 경구(京口)와 남서(南徐), 연릉(延陵), 윤주(潤洲) 등으로 불리다가 북송(北宋) 때에 이르러 ‘장강을 지킨다’는 의미를 따서 진강(鎭江)으로 개명해 오늘날에 이른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금산)

구릉지대에 위치한 진강은 지세가 기복을 이루고 뭇 산이 둘러서서 예로부터 명승지로 인기를 끌었다. 아름다운 금산(金山)과 수려한 초산(焦山), 험준한 북고산(北固山) 등 다양한 모양의 산이 진강을 단장한다.

도시의 서북쪽에 위치한 금산은 원래 장강의 작은 섬이었는데 청(淸)나라 때 점점 장강의 남쪽 기슭과 연결되었다. 금산에는 금산공원과 금산사(金山寺), 천하 제일의 샘물, 백화주(百花洲), 경천원(鏡天園) 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산재해 있다.

그 중 산세를 따라 조성된 금산사는 규모가 웅장해서 멀리서 절을 바라보면 산 기슭에서 정상까지 누각과 건물이 줄지어 절만 보이고 산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금산은 또 <백사전(白蛇傳)>에 나오는 ‘금산을 물에 잠기게 한’ 이야기로 인해 더욱 신비한 색채를 띤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초산)

동한(東漢) 후반에 산중에 은둔한 선비 초광(焦光)은 한헌제(漢獻帝)가 세 차례나 벼슬을 하라고 불렀는데도 모두 완곡하게 거절했다. 후에 사람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이 산을 초산(焦山)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녹음이 무성하고 숲이 빽빽한 초산은 마치 푸른 옥이 강물에 둥실 떠 있는 듯 하다. 산중의 전각과 건물들은 모두 푸른 녹음 속에 모습을 감추어 멀리서 초산을 바라보면 산은 보이지 않고 절만 보이는 금산과 달리 산만 보이고 절이 보이지 않는다.

초산은 또 예로부터 고목과 비석으로 이름이 자자하다. 비림에 육조(六朝)이래의 역대 서예 작품 400여편이 소장되어 있는 초산은 ‘서예의 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북고산)

진강시 북쪽의 장강 기슭에 솟은 북고산은 지세가 험준해 예로부터 군사요충지로 인정되었으며 ‘경구(京口)의 제일산’이라 불린다. 동오(東吳) 때 손권이 바로 이 북고산 남쪽에 ‘철옹성’을 축성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북고산에는 삼국시기 유적이 많이 남아 있고 삼국관련 전설도 많이 전해진다. 북고산 뒤에 자리잡은 감로사(甘露寺)는 유비(劉備)가 선을 보던 자리라고 전해진다.

감로사에서 여인을 만난 후 유비는 장강 기슭에 우뚝 솟은 북고산을 바라보며 웅장한 산과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에 매료되어 “이 곳은 천하 제일의 강산이로구나”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감로사)

남과 북을 연결하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수려한 산수를 자랑하는 진강은 예로부터 많은 문인묵객들의 발길을 끌었다. 역대의 명인들은 진강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많은 시와 글을 남기기도 했다.

왕창령(王昌齡)의 “낙양의 벗들이 내 안부를 묻거든(洛陽親友如相間) 이 마음 여전하다고 전해주오(一片氷心在玉壺)”, 왕안석(王安石)의 “춘풍에 강남의 언덕은 또 다시 푸르른데(春風又綠江南岸) 명월은 언제쯤 귀향하는 나를 비춰줄까(明月何時照我還)”, 신기질(辛棄疾)의 “어디에 가면 신주 땅이 보이려나(何處望神州) 눈에 가득 들어오는 풍광은 북고루뿐이구나(滿眼風光北固樓)” 등 천고의 절창은 진강을 움직이는 화폭으로 만든다.

진강의 또 한 가지 명물은 진강향초(鎭江香醋)라 불리는, 150여년의 역사를 보유한 식초이다. 색상이 예쁘고 향이 좋으며 새콤한 맛이 순하면서 짙은 진강 식초는 국내외에서 수차 상을 받았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진강)

현지에는 두강(杜康)이 술과 식초를 빚은 이야기가 널리 전해진다. 전한데 의하면 양조로 생계를 이어가는 두강에게 흑탑(黑塔)이라 부르는 아들이 있었는데 몸집이 우람하고 힘이 장사였다고 한다.

보기에는 우락부락하지만 사실 흑탑은 온순하고 부지런하며 늘 부친이 술을 빚는 일을 도왔다. 어느 날, 흑탑이 정신을 가다듬고 술 항아리를 씻고 있는데 갑자기 고삐가 풀린 말 한 마리가 와서 술지게미를 먹는 것이었다.

털이 윤택이 나고 등이 넓은 그 말을 어여삐 여긴 흑탑은 항아리 세 개에 술지게미를 담고 물을 조금 두어 말을 먹였다. 그로부터 그 말은 매일 와서 술지게미를 먹고 마시고 했는데 곧 살도 찌고 힘도 좋아져서 일을 더 잘 하게 되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진강의 일각)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흑탑은 일에 지쳐서 막걸리 세 그릇을 마시고 마구간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벽 쪽에 놓인 세 개의 항아리가 이미 스무 하루(二十一日)가 지났다. 오늘 유시(酉時)에 그 항아리의 술지게미에서 미주가 만들어질 것이다.”

말을 마친 노인이 바람처럼 사라지는 바람에 흑탑은 잠에서 깨어났다. 흑탑이 즉시 벽 쪽에 놓여 있는 항아리 뚜껑을 여니 과연 향기로운 냄새가 풍겨 나왔고 맛을 보니 향기롭고 순해서 머리가 대뜸 맑아졌다.

후에 흑탑에게서 사연을 전해 들은 두강이 그 항아리의 술지게미 물을 맛보니 맛이 자신이 빚던 술과 달리 향기로우면서도 새콤해서 요리할 때 넣으니 별미였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진강)

흑탑은 ‘이십일일(二十一日), 유시(酉時)’라고 하던 노인의 말로 ‘초(醋)자’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술과 다른 맛의 향기로운 액체를 식초(醋)라 불렀다.

그로부터 진강 일대의 사람들은 식초의 제조 방법을 끊임 없이 개진하면서 ‘색상이 예쁘고 향이 좋으며 맛이 새콤하고 순하면서도 짙은’ 다섯 가지 특징을 가진 식초, 진강향초(鎭江香醋)를 만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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