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9 09:20:00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57] 무위: 銅奔馬의 고장

(사진설명: 아름다운 무위)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쉰 일곱 번째는 동분마(銅奔馬)의 고장 무위(武威)이다. 황하(黃河) 강의 서쪽, 기련산(祁連山) 산발과 용수산(龍壽山) 사이에 조성된 좁고 긴 통로는 황하의 서쪽에 위치했다 해서 이름이 하서(河西) 회랑이다.

하서회랑은 예로부터 중원(中原)에서 신강(新疆)과 중앙 아시아, 서아시아로 통하는 통로였고 고대 실크로드의 요충지였으며 따라서 주변에 많은 마을과 도시가 조성되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실크로드가 남긴 눈부신 보석 중 하나인 무위이다.

하서회랑의 동쪽에 위치한 실크로드의 도시 무위는 남쪽으로 기련산과 마주하고 북쪽으로는 텡그리(騰格里) 사막과 인접한다. 무위는 옛적에 량주(凉州)라 불렸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무위)

서한(西漢) 초기 한무제(漢武帝)는 서역의 여러 나라들과 함께 흉노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으로 장건(張騫)을 서역(西域)에 파견했고 기원전 121년 한무제의 어명으로 파견된 곽거병(霍去病)이 하서에 주둔한 흉노를 격파해 대승을 거두었다.

한무제는 곽거병의 ‘무공군위(武功軍威)’를 표창하기 위해 량주를 무위라 개명하고 이 곳에 무위와 장액(張掖), 돈황(敦煌), 주천(酒泉) 등 하서 4 군(郡)을 두었으며 이로부터 하서는 서한에 편입되었다.

기원전 106년 한무제가 천하를 13개의 주(州)로 나누면서 무위는 량주자사부(凉州刺史府)에 속했다. 동서 교통의 원활함을 유지하고 흉노와 강(羌)족의 연계를 차단하기 위해 한 왕조는 무위와 주변의 하서지역에서 이민둔전(移民屯田)제도를 시행하고 담벽을 쌓았다.

(사진설명: 무위고성의 성문)

그 후 십육국(十六國) 시기 전량(前凉)과 후량(後凉), 남량(南凉), 북량(北凉)도 모두 이 곳에 도읍을 두었고 수(隨)와 당(唐), 송(宋), 명(明), 청(淸) 왕조는 선후로 이 곳에 군(郡)과 부(府), 주(州), 위(衛), 도(道)를 두었다.

2천여 년 동안 줄곧 ‘사막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를 끼고 다섯 도시로 통하는 요충지’였던 무위는 고대에 서역과 경제, 문화 교류를 진행하는 도시 중 하나였다.

유구한 역사는 무위에 많은 문화재와 명승고적을 남겼다. 무위 도심에 위치한 뇌대(雷臺)는 전량국이 축조한 영균대(靈鈞臺)였으며 뇌조전(雷祖殿)과 삼성투모전(三星鬪姆殿) 등 단 위에 솟아 있는 고건물은 명(明)과 청(淸) 왕조 때 신축한 것이다.

(사진설명: 웅장한 뇌대유적)

고건물의 주변에는 또 고목이 울창하고 맑은 물결의 호수가 펼쳐져 예스러운 명소에 아름다움을 가미한다. 1969년 뇌대의 동남쪽에서 186년~219년 때의 동한(東漢)의 대 규모 무덤을 발견했다.

벽돌로 묘실을 쌓은 이 무덤에서 귀중한 문화재 231점과 고대 동전 30,000개가 출토되어 무위는 사학가들로부터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문화를 자랑하는 ‘지하 박물관’이라 불린다.

출토 문화재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정교한 청동기로 된 마차 의장용(儀仗俑) 99점인데 그 중 달리는 말을 주조한 청동기 동분마(銅奔馬)의 예술적 가치가 가장 높다.

(사진설명: 박물관에 소장된 동분마)

마초용작(馬超龍雀), 마답비연(馬踏飛燕)이라고도 하는 이 동분마는 34.5cm 높이에 45 cm 길이, 무게 7.15kg에 달하는 초록색과 고동색이 어우러진 청동기이다. 머리를 쳐들고 울부짖는 동분마의 세 말발굽은 공중에 떠 있고 오른 쪽 뒤의 말발굽 하나만 놀란 새를 밟고 있다.

모양이 날렵하고 기색이 생동한 동분마는 전통적인 천마(天馬)의 틀에서 벗어난 동시에 역학적 균형 원리에 부합해 청동기 예술의 극치를 자랑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3년에 중국관광의 심벌로 정해지고 1986년에 국보로 선정된 이 동분마는 현재 감숙성 박물관에 소장되고 동분마가 출토된 뇌대에는 천마문화를 테마로 하는 공원을 조성했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무위 문묘의 숭성사)

‘롱서(隴西) 학부의 으뜸’이라 불리는 무위 동남쪽의 문묘(文廟)는 황궁 건물을 모방해서 조성한 고건물의 군락이다. 이 곳에서는 고건물이 장엄함을 연출하고 그 사이사이에 뿌리 내린 울창한 고목이 하늘을 가린다.

이 고건물은 전량국 혹은 서하(西夏) 시기인 1437년부터 1439년 사이에 신축되었다고 전해진다. 5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문묘는 25,000 ㎡의 부지에 다양한 건물을 거느린다.

그 중 동쪽에는 ‘만세문종(萬世文宗)’이라 불리는 문창제군(文昌帝君)을 공양한 문창궁(文昌宮)을 중심으로 다양한 건물이 자리 잡고 남쪽에는 산문(山門)이 있으며 북쪽에 숭성사(崇聖祠), 중앙에 공자의 사당 공묘(孔廟)가 있고 서쪽에 양주부유학원(凉州府儒學院)이 자리 잡고 있다.

(사진설명: 서하박물관의 일각)

위무 문묘의 앞에 위치한 서하(西夏) 박물관은 건축물의 단면이 한자로 회(回) 모양으로 조성되어 있다. 서하민족은 중화민족의 한 구성원으로 중국의 역사무대에서 한 때 위풍을 떨쳤다.

하지만 서하 문명이 몽골의 말발굽에 정복되는 과정에 서하의 문물과 도서 다수가 사라지고 수 백 년의 세월 속에서 현재는 심지어 당항족(黨項族)도 역사의 무대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서하의 문화재가 가장 많이 출토되고 서하 문화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무위는 서하역사와 중국역사를 연구하는 소중한 자료를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으며 그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서하 박물관이다.

(사진설명: 웅장한 천제산 석굴)

무위산에서 남쪽으로 50km 거리에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고 깎아지른 벼랑에 하늘 사다리를 방불케 하는 계단이 조성된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이 바로 하늘 사다리의 산이라는 의미의 천제산(天梯山)이다.

천제산 석굴은 중국의 초기 석굴 중 하나로 ‘중국 석굴의 비조’라 불린다. 십육국(十六國) 시대 북량(北凉) 때 축조를 시작한 천제산 석굴은 16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천제산 석굴은 현재도 많은 문화재와 흔적을 보존한다. 벽화도 넓은 면적으로 보존되고 3층으로 된 석굴에 크고 작은 불감 17개에 100여 기의 조각상, 그리고 위(魏)와 수(隨), 당(唐)나라 때의 많은 소중한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천당사)

그 중 중심 석굴에 자리 잡은 불상은 뒤에 산을 등지고 발 아래 맑은 호수를 밟고 앉아 있는데 가벼운 물안개가 불상을 감돌아 흐르면 산과 물과 불상과 구름이 장엄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펼쳐 감탄을 자아낸다.

유구한 불교역사를 보유한 무위에는 또 서역의 고승 구마라습이 무위에서 불법을 전파하고 불교경전을 번역한 공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나습사탑과 중·일간 친선 교류를 증명하는 대운사(大雲寺), 하서(河西)의 4대 유명 사원인 해장사(海藏寺), 정교한 건축을 자랑하는 성용사탑(聖蓉寺塔)을 비롯해 많은 불교사원과 탑이 보존되어 있다.

그 중 당나라 때인 800년대에 신축한 티베트 불교 사원 천당사(天堂寺)는 불조 석가모니전과 공행궁(空行宮), 문수전(文殊殿), 대경당(大經堂), 용왕전(龍王殿), 천불전(千佛殿) 등 다수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원을 감싼 산발에 숲이 무성하고 사원 앞으로는 맑은 강물이 흘러 자연경관도 빼어난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무위사막공원)

북쪽으로 텡그리 사막에 인접한 무위에는 사막과 초원, 정원이 어우러진, 중국 최초로 사막과 오아시스를 접목한 관광놀이공원 무위사막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독특한 지리적 여건과 알맞은 기후로 인해 무위에서는 포도가 많이 나고 따라서 무위는 중국 와인의 고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당(唐)나라 때 시인 왕한(王翰)의 시 <양주사(凉州詞)>에 나오는 ‘포도로 빚은 멋진 술을 야광 옥잔에 부어(葡萄美酒夜光杯)’라는 구절이 바로 무위의 와인을 말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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