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아름다운 준의)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일흔 여섯 번째는 아름다운 홍색의 도시 준의(遵義)이다. 파주토사(播州土司)가 이 곳에 풍부한 유산을 남겼고 이 곳에서 중국공산당 정치국 회의가 열리면서 준의는 세상에 이름을 날렸다. 오늘날 준의고성은 귀주(貴州) 북부에서 가장 중요한 중심도시이자 아름답고 매력적인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귀주성 북부, 운귀고원(雲貴高原)이 사천분지(四川盆地)로 이행하는 과도지대에 위치한 준의는 귀주성 제2의 도시이자 귀주성 북부의 정치와 문화, 교통의 중심도시이다.
2500여년 전에 준의는 파(巴)와 촉(蜀), 야랑(夜郞) 등 제후국들의 영지였고 당(唐) 나라 초반에 당 왕조가 이 곳에 파주(播州)를 두었다. 준의의 도시역사는 남송(南宋)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준의고성)
1176년 당시의 파주 토사(土司) 양진(楊軫)이 자신의 도읍을 상강(湘江) 유역의 파주로 옮기면서 준의의 도시사가 시작되어 준의고성은 8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명(明) 나라 때인 1601년 파주성의 성벽을 다시 쌓으면서 파주를 준의군민부(遵義軍民府)로 개명했고 그로부터 파주라는 지명 대신 준의를 사용해 오늘날에 이른다.
북쪽에 루산(婁山)을 업고 남쪽으로 오강(烏江)을 마주한 준의는 지세가 험준하고 요새가 많아 역대로 많은 군사가들이 너도 나도 다투는 군사의 요충지였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준의고성)
독특한 구도의 준의고성(遵義古城)은 노성(老城)과 신성(新城)으로 나뉘는데 강물을 사이 두고 마주하는 두 성이 중국에서 보기 드물게 두 성이 나란히 하는 독특한 구도를 유지한다.
상강의 북쪽 기슭에 위치한 노성은 1382년 토사제도를 폐지하고 명왕조의 제도를 도입하면서 귀순한 관리와 명왕조의 준의 주둔군 및 그 가족들을 위해 축조한 것이다.
한 쪽으로 강물과 이웃하고 삼면에 산이 둘러선 노성은 성벽을 높게 쌓아 멀리서 보아도 군사보루의 색채가 다분하다. 이와 반면에 신성은 청(淸)나라 때인 1858년에 축조했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준의고성 중 신성)
사천-귀주 통로를 중심으로 조성된 신성에는 많은 상가가 입주했고 그 후 남북방향의 사천-귀주 통로를 따라 계속 도시를 확장해 신성은 두 개의 좁은 벨트모양을 형성한다.
군사적 방어의 목적으로 산기슭에 조성한 노성은 지세의 제한으로 불규칙적인 원형을 유지하고 경제발전의 수요에 의해 건설된 신성은 교통로를 따라 확장되면서 강의 양쪽에 길게 펼쳐져 준의고성 고유의 특색을 자랑한다.
준의는 중국혁명의 사적지 도시이기도 하다. 이 곳에는 준의회의 사적지와 모택동(毛澤東) 중국 개국 주석의 옛 집, 홍군(紅軍) 열사릉, 루산관(婁山關) 등 많은 혁명기념 사적지가 보존되어 있다.
(사진설명: 준의회의 사적지 일각)
준의회의 사적지는 원래 중국 국민당(國民黨) 제25군단 제2사단장 백휘장(柏輝章)의 사저였다. 1930년대에 동서양의 양식을 접목해 신축한 이 건물은 당시 준의에서 가장 웅장했다.
건물의 정문 위에는 모택동 주석의 친필로 된 <준의회의회지(遵義會義會址)> 액자가 높이 걸려 있다. 1935년 중국 홍군(紅軍)이 준의에 이른 후 이 곳에 총사령부를 두었고 그 해 이 건물 2층 회의실에서 중국공산당 중앙 정치국 확대회의, 즉 준의회의를 개최했다.
홍군이 가장 위급한 상황에 처한 때 개최된 준의회의는 ‘좌’적인 경향을 반대하고 모택동 주석의 당 및 군대의 지도적 지위를 회복했으며 이로써 중국공산당은 다시 정확한 궤도에 올라서게 되었다.
(사진설명: 홍군열사릉의 일각)
중국혁명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 역할을 한 준의회의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준의회의실의 배치는 오늘날도 당시의 모습을 유지한다.
홍군열사릉은 상강을 마주하고 뒤에 봉황산(鳳凰山)을 둔다. 홍군열사들의 골회가 소장된 납골당과 홍군기념비 등 유적이 보존된 홍군열사릉은 중국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혁명열사를 기리는 좋은 장소이다.
해발고도 1,576m의 루산관(婁山關)은 북쪽으로 사천, 남쪽으로 귀주와 연결된 험준한 관문이다. ‘한 사람이 만 명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험준한 루산관은 예로부터 유명한 군사요충지였다.
(사진설명: 험준한 루산관)
명나라와 청나라 때 서남지역의 농민봉기군이 수차 이 곳에서 중앙정부의 군대와 싸웠고 1935년 2월 중국홍군이 두 번째로 적수(赤水) 강을 건너 귀주로 돌아가던 도중 이 곳에서 귀주의 지방군대와 격전을 벌였다.
당시 홍군 제2군단장 팽덕회(彭德懷)의 지휘로 홍군은 루산관 기슭에서 귀주 지방군의 3개 연대를 격파해 준의전투 승리의 서막을 열었다. 모택동 주석은 당시의 상황을 <억진아·루산관(忆秦娥·婁山關)>에 담았다.
준의는 홍색의 도시이면서도 녹색의 도시이다. 준의시 중심에 솟은 봉황산은 20여 개의 산봉우리를 거느린 18km 길이의 산발이다. 기복을 이룬 산발에는 숲이 우거져 일년 사시절 녹음이 무성하고 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른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봉황산)
준의의 ‘녹색 병풍’이자 자연 식물원으로 불리는 봉황산에는 또 용산사(龍山寺)와 문묘(文廟), 공곡사(空谷寺), 사자산사(獅子山寺)를 비롯한 많은 절이 있어 아름다운 자연에 문화적 분위기를 가미한다.
준의는 또한 유명한 술의 고장이기도 하다. 준의에서 나는 모태주(茅台酒)와 동주(董酒), 압계요주(鴨溪窯酒)는 내외에 이름이 자자하며 그 중에서도 특히 준의시 서쪽 적수하 강반에 위치한 모태진에서 나는 모태주는 중국의 국빈연회에 오르는 국주로 으뜸을 자랑한다.
스카치 위스키, 프랑스 코냑과 함께 세계 3대 증류주에 속하는 모태주는 장향형 백주의 시조로 8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모태주는 양질의 수수와 소맥으로 중국 전통의 독특한 양조법에 따라 7회의 증류, 9회의 발효를 통해 술을 빚은 후 그 술을 오랫동안 움에 저장한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모태진)
모태주의 생산주기는 보통 9개월이 소요되며 일반적으로 움에 5년간 두었다가 출시한다. 이렇게 만든 모태주는 색깔이 투명하고 맛이 향기롭고 그 맛의 여운이 오래 간다.
모태진에는 세계 최대의 술문화 박물관인 중국주문화성(中國酒文化城)이 건설되어 모태주의 역사와 문화를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중국의 음주문화도 설명한다.
조각과 서예, 비석, 문화재, 실물 등 다양한 전시품을 소장한 문화성은 중국 술의 기원을 보여주는 전시관과 양조법, 중국 술의 운치, 중국의 술 풍속, 다양한 주기 등을 보여주는 전문 전시관, 그리고 모태주 전문 전시관 등을 통해 중국 술의 기원과 양조기술, 술 풍속, 모태주의 발전과정, 중국 각지의 유명한 술 브랜드, 세계 증류주의 문화 등을 설명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