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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구  "人死留名(인사류명)"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2010-04-19 16:57:10 cri

글자풀이

"人死留名" 이 성구는 사람 인(人)자에 죽을 사(死)자, 머무를 류(留)자에 이름 명(名)자로 이루어졌다,

뜻풀이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이다. 흔히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로 사용된다.

유래

중국역사에는 수많은 영웅인물들이 기재되어 있다.

5대시기 유명한 무장이었던 왕언장(王彦章)은 용맹스럽고 싸움을 잘하기로 유명했다. 젊었을 때 량태조(梁太祖) 주온(朱温)을 따라 각지를 옮겨다니며 싸웠으며 주온이 죽고나서는 주우정(朱友贞)이 왕위에 오르는데 큰 공을 세웠다.

당시 진(晋)나라와 당(唐)나라는 모두 량(梁)나라의 강적이었고, 그들사이에는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한번은 전주(澶州)를 공격한 진나라군대가 왕언장의 처자식을 포로하여 태원(太原)으로 끌고갔다. 왕언장에게 투항을 권하고저 진나라군대는 그의 가족들을 살해하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그들에게 새로 집까지 지어주고 좋은 음식을 먹이면서 후하게 대접했다. 그리고나서 진나라는 사절을 파견해 비밀리에 왕언장을 만나 투항을 권했다. 왕언장은 투항하기는커녕 당장에서 진나라사절의 목을 잘라버렸다.

황제 주우정은 한무리의 간신들에게 조정대권을 빼앗긴 우매하고 무능하기 그지없는 황제였다. 오래전부터 왕언장을 시기해오던 간신들은 왕언장이 군사적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따라서 량나라는 연이어 싸움에서 패배했다.

그후 진나라 군대가 운주(郓州)를 공격하자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주우정 역시 속수무책이긴 마찬가지였다. 재상 경상(敬翔)이 황제에게 달려와 통곡했다.

"선제는 살아계실때 소인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은 적이 없사옵니다. 지금 적들이 이미 변경을 넘어섰는데 폐하께서 더이상 충언을 듣지 않으신다면 오늘 저는 이자리에서 목숨을 끊겠사옵니다"

더이상 다른 방법이 없게 된 주우정은 계책을 말해보라고 했다.

"폐하, 시기가 위급하옵니다. 왕언장이 없이는 안되는줄 아옵니다"

주우정은 왕언장을 초토사(招讨使)로 명해 진나라 군대에 대항하는 일을 맡겼다. 왕언장은 병사들을 이끌고 3일내에 활주남성(滑州南城)을 공격했으나 병력이 부족하고 지원부대가 없었던 탓에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왕언장을 시기하던 한무리의 간신들은 때를 놓칠세라 왕언장은 적을 우습게 여기다가 패배한 것이라고 황제에게 고했으며, 이를 믿은 황제는 바로 왕언장을 면직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나라군대가 어둠이 깃든 틈을 타 연주(兖州)를 공격했다. 황제는 부득불 왕언장을 다시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강병들은 이미 간신들의 수중에 모두 장악되어 있었는지라 왕언장이 거느리고 싸울 군대는 서울에 있는 500여명의 어림군(御林军)밖에 없었다. 어림군이란 모집한지 얼마 안되는 군대로, 아예 싸울줄도 몰랐다. 결국 이번 전투 역시 패배로 끝났고 왕언장은 크게 부상을 입고 끌려갔다.

당장종(唐庄宗)앞에 끌려간 왕언종은 투항을 권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옛말에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나 왕언종은 무사로 살면서 나라를 배신하는 일따위는 하지 않는다"

왕언장은 죽었지만 후세사람들은 오래도록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人死留名"는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성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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