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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구  "長驅直入(장구직입)"  순풍에 돛단듯, 순조롭게 전진하다
2011-05-25 15:42:39 cri

長驅直入

◎글자풀이: 긴 長(장), 몰 驅(구), 곧을 直(직), 들 入(입)

◎뜻풀이:말을 제쳐 달리다. 승승장구로 전진하다, 순풍에 돛단듯, 순조롭게 전진하다.

◎유래:

적벽대전이 끝난후 류비(劉備)는 제갈량(諸葛亮)의 보필을 받아 익주와 한중을 점령했다.

이때 관우(關羽)는 형주에서 군사를 일으켜 중원에로 진격했다. 이 소식을 접한 조조(曺操)가 우금(于禁)을 대장군으로 임명하고 서량의 투항장수인 방덕(龐德)을 선봉으로 내서워 관우와 정면대결을 벌였다.

관우가 인솔한 형주군은 그 사기가 높았고 양양, 범성 등 요충지들을 연이어 함락하면서 성을 지키는 장군인 조인을 사지로 내몰았고 드디어 한수의 상류요충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한편 조조의 명을 받은 우금은 관우와의 일전을 벼르면서 한수의 하류에 진을 쳤다. 관우는 우금이 진을 친 형세를 보고나서 한수의 뚝을 터뜨리라고 명했다. 삽시간에 우금이 이끈 군사들이 전부 수장될 위험에 처했다.

관우는 조조군에 숨돌릴 기회를 주지 않았고 직접 수군을 지휘해 섬멸전을 벌였다. 우금과 그 부하장령들이 높은 언덕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강물이 산같이 밀려오고 자기의 군사들은 물속에서 목숨을 부지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더는 도망할수도 없고 관우의 배가 이르는 곳마다 관우의 병사들이 전혀 저항할 힘이 없는 조조군을 무찌르니 죽는 자가 부지기수요, 나머지는 너도나도 투항했다.

우금은 도망할 길도 없고 살아서 돌아가도 조조가 살려두지 않은 것임을 아는지라 관우에게 투항했다. 그의 선봉장인 방덕은 생포된후 투항을 거부했고 후에는 참살되었다.

이 싸움으로 조조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관우의 군사는 그 사기가 더욱 충천해 이르는 곳마다 승전고를 울렸다. 조조는 관우의 예봉을 피해 수도를 옮기는 것이 어떨가 수하들과 상의했다.

조조가 이 제안을 내놓자 주부인 사마예가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주공, 신이 생각하건대 지금 도읍을 옮기게 되면 나라의 혼란을 초래할 것입니다. 민심이 흩어지게 되면 전세를 돌려세우기가 더욱 어려워 집니다. 신이 보건대는 다른 유능한 장군을 보내 관우와 싸워야 합니다."

이때 대장 서황(徐晃)이 나서서 대군을 이끌고 관우와 싸우겠다고 고했다.

동오의 대장인 려몽(呂蒙)은 관우의 대군이 원정을 가고 형주의 수비가 허술하다는 것을 알고는 오나라 군사들을 상인으로 가장시켜 형주에 들여보냈다. 이들이 기습작전을 펼치니 형주의 수성장군인 미방이 싸움에 패하고 동오에 투항하게 되고 형주도 오나라에 점령되었다.

형주가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관우는 크게 놀라 일부 병력을 갈라 형주를 탈환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위나라의 서황과 급급히 교전하려 했다.

서황이 군사는 거의가 정규적인 훈련을 받지 않았고 전투경험도 없는 신병들이었다. 이런 오합지졸을 이끈 서황은 관우와의 정면대결을 잠시 피하고 군사들은 양릉에 주둔시키고 성을 굳게 지키라고 명했다. 조조는 이런 신병들로는 관우의 대군과 필적할수 없을 것이라 판단하고 은서, 주개 수하의 20개 영의 군사들을 서황에게 보충해 주었다. 병력을 보충받은 서황은 이제는 관우와 한판 대결을 할수 있다고 판단했다.

승승장구하던 관우의 대군은 비록 형주수복을 위해 일부 군사를 보내기는 했지만 그 병력은 여전히 막강했다. 관우는 군사를 위두와 사가라는 두곳에 나누어 주둔시켰다. 조조군의 공격을 대비해 관우는 군영 주위에 참호를 깊이 파고 거기에 녹채를 10여층 깔았다.

관우의 군사가 두곳에 나누어 주둔한 것을 본 서황은 위두를 공격할 것이라는 거짓 정보를 흘렸고 진짜 공격목표는 사가로 정했다. 공격이 시작된후 관우는 관우는 사가쪽이 위험해 진것을 보고 군마 5천을 직접 이끌고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서황은 기실 전부의 병력을 모아 사가를 치고 있었던 지라 수적으로 열세에 처한 관우의 군사는 대패하고 말았다.

서황은 여세를 몰아 관우의 군영까지 쳐들어갔고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 소식을 접한 조조는 크게 기뻐하면서 "서황을 격려하는 령"이라는 글을 썼다. 그중에는 "옛날 군사를 잘 자휘하는 장군은 많았으나 서황처럼 포위된 와중에 적진에 들어가 승리를 거둔 사례는 없었으니 서황의 공로는 손무보다 더 크다"는 내용이 있다.

지금에 와서 이 성구는 군사들이 승승장구로 진격하는 속도와 그 기세를 형용하는데 많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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