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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방직기술자-황도파
2009-11-12 16:55:39 cri

황도파(黃道婆)는 황파라고도 불리우며 중국 남송시기 송강부 우니경진(오늘의 상해부근)사람이다.

황도파는 가난한 농민가정의 출신으로 생활의 압력에 못이겨 13살 되는 해 유족한 집에 민며느리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낮에는 밭에서 힘든 일을 하고 밤에는 늦게까지 천을 짜야 했으며 시부모와 남편의 학대를 받는 것이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하루, 황도파는 시부모와 남편한테 심하게 구타받은 후 헛간에 갇혀 밥도 못먹고 잠도 제대로 못자는 신세가 되었다. 더이상 비인간적인 학대에 견딜 수 없어 황도파는 천정에 자그마한 구멍을 내고 어느 한 밤중에 도망을 나왔으며 황포강변에 정박된 배에 숨어 있다가 결국 그 배와 함께 해남도의 야현이라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봉건사회에서 종래로 먼 길을 나서보지 못했던 젊은 부녀로서 홀로 타향을 떠돌게 된다는 것은 어떤 어려움인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현지의 여족(黎族) 동포들은 뜨거운 열정으로 황도파의 불행한 처지를 동정하고 받아들여 그녀의 정착지를 제공했으며 공동한 노동생활 과정에서 그들은 황도파에게 방직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했다. 당시 여족인민들이 생산한 천과 장식품은 유명했고 현지의 면방직 기술도 비교적 선진적이었다. 총명하고 부지런한 황도파는 여족동포들에게서 방직기술을 허심하게 배웠으며 여족과 한족 인민의 방직기술 우점을 결합시켜 점차 훌륭한 방직의 명수로 발전되었다. 현지에서 30년간 생활하면서 황도파는 여족인민과 돈독한 우정을 쌓아왔고 현지인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지만 시종 고향을 잊을 수 없었다.

원나라 원정연간(약 1295년), 황도파는 결국 여족지역을 떠나 고향에 돌아왔다. 당시 목화재배업은 장강유역에서 광범위하게 보급되었지만 방직기술은 여전히 낙후한 상황이었다. 황도파는 귀향한 후 고향의 면방직 생산도구를 개혁하기 시작했으며 수십년간의 풍부한 방직경험에 근거해 자신의 직조기술을 고향인민들에게 전부 전수했다.

비록 황도파는 귀향한 후 얼마 안되어 세상을 떴으나 그녀의 신근한 노동은 고향 면방직업의 신속한 발전을 크게 추동했으며 방적공예에서 신식 물레를 창조해 후세인들에게 많은 편리를 도모했다.

황도파는 면방직도구의 개혁에서 중요한 기여를 한 외 여족인민에게서 배운 기술과 자신의 실천경험을 결합해 선진적인 직조기술을 총화해내어 고향사람들에게 전수했다. 당시 그 곳에서 생산한 면직물은 부근의 상해와 태창 등 지역에 큰 영향을 일으켰고 얼마 안되어 송강일대는 전국의 면직업 중심으로 발전되었으며 18~19세기에 이르러 현지의 천은 유럽에 전해져 높은 명성을 떨쳤다.

봉건사회에서 하층 인민들에 대한 완고한 편견이 존재했기에 황도파와 같은 방직 혁신가 및 그 공적은 정사에 상세한 기재가 없다. 이는 중국 역사학의 보편적인 유감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 상해에서 "황파파, 방직기술 전수했네…"라는 가요가 여전히 전해지고 있으며 이는 중국 면방직 기술에 대한 황도파의 탁월한 기여를 노래한 것이다.

황도파는 중국 고대에서 부지런하고 총명한 부녀의 대표로서 그녀의 이름과 공적은 영원히 광범위한 인민들의 기억속에 남겨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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