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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한 명의(名醫) 화타
2010-08-02 11:01:54 cri

 

화타는 동한 후기의 인물로 자는 원화(元化)이고 패국 초(沛國), 지금의 안휘성 호현(毫州) 태생이다. 화타는 중국의 안휘, 강소, 하남 일대를 를 전전하면서 의술을 배웠다.

화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려서부터 독학을 하면서 서주에서 학문을 익혀 박학다식 했으며 특히 의학 분야에 정통했다. 당시의 지방관이나 조정의 대신들은 그의 학문이 깊고 의술이 고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서로 앞 다투어 그를 청해 벼슬을 주려고 했다. 화타는 병든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 기꺼이 의술을 폈지만 관장생활을 혐오해 벼슬은 끝까지 사양했다. 그는 강소와 산동, 하남, 안휘 등지를 두루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해 주고 목숨을 구해 주면서 무수한 미담을 남겼다.

지방의 한 관리가 병을 얻어 항상 가슴이 답답하고 배가 아프며 얼굴이 빨개져 음식마저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되자 화타를 청해 진찰을 받았다. 화타가 그의 맥을 짚어보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평소에 제대로 익지 않은 생선이나 고기를 많이 먹어 뱃속에 벌레가 생겨서 그렇습니다."

화타가 지어준 약을 먹고 그 관리가 토해낸 음식물에서 과연 적지 않은 기생충들이 나왔고 관리의 병은 깨끗이 나았다. 화타는 부인병 진단에서도 유명했다. 한번은 한 관리의 아내가 병세가 심해 화타를 청해 진찰을 받았다. 역시 맥을 짚어보고 나서 화타가 말했다.

"임신 중 부상을 당한 후에 죽은 태아가 체외로 나오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이 말에 옆에 있던 관리가 깜짝 놀랐다. 아내가 임신 중에 몸을 다쳐 유산을 하긴 했지만 당시에 이미 죽은 태아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화타는 자신의 진맥이 정확하다고 하면서 태아가 아직 뱃속에 있다고 말했지만 모두 화타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며칠 후 환자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다시 화타를 찾게 되었다. 또 다시 진맥을 하고 나서 화타가 말했습니다.

"맥을 짚어보니 지난번과 똑같습니다. 아무래도 쌍둥인 것 같습니다. 유산됐을 때 출혈이 너무 심해 두 번째 태아가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지요. 지금으로선 침을 놓은 다음 탕약을 먹여 죽은 태아를 꺼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화타는 환자에게 침을 놓고 탕약을 먹이고 배를 눌러가면서 간신히 죽은 태아를 끄집어냈다. 화타는 내과와 침술뿐 아니라 외과 분야에도 정통하여 외과수술의 발전에 커다란 공적을 남겼다. 특히 그가 발명한 "마비산(麻沸酸)"이란 약은 세계 최초의 마취제로 간주되고 있다. 세계 최초로 마취약을 이용해 외과수술을 진행한 화타는 외과수술의 1인자로 추앙받았다. 한번은 환자 하나가 심한 복통을 호소하더니 열흘쯤 지나자 머리와 눈썹이 전부 빠져 버렸다. 가족들은 서둘러 환자를 화타에게 보내 치료를 부탁했다. 반복되는 진찰 결과 화타는 환자의 비장에 염증이 생겨 개복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진단을 내리고 즉시 "마비산"이란 약을 꺼내 술에 탄 다음 환자에게 먹였다. 그러자 환자는 인차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화타가 수술도로 환자의 배를 열어보니 과연 비장의 반이나 썩어 있었다. 화타가 발명한 마비산은 복용과 동시에 모든 감각이 약해져 수술시의 고통을 줄여주었다.

"마비산"은 서양에서 발명된 마취제보다 약 1,600년 정도 빠른 것이다. 또한 화타는 예방의학에도 조예가 깊어 평소에 체력단련을 하면서 항상 일정한 활동을 해야만 혈액순환과 소화기능을 정상으로 유지하여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가 발명한 건신술인 "오금회(五禽戱)"는 호랑이와 곰, 사슴, 새, 원숭이 등 다섯 짐승의 동작을 본떠서 만들어낸 체조의 일종으로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조조도 항상 두통에 시달리다가 화타의 의술이 고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청해다 침을 맞은 이후로 두통이 말끔히 사라졌다. 조조는 몹시 기뻐하며 그를 곁에 두고 수시로 치료를 받고자 했으나 화타는 명예와 벼슬을 추구하지 않는 인물이라 한 사람만 보살피는 의사가 되기 싫어하였다.. 조조가 자신의 시의(侍醫)가 되기를 강요 하였으나 화타는 아내가 아프다는 핑계로 집으로 돌아갔다. 조조가 누차 재촉하여도 화타가 오지 않아 사람을 보냈더니 아내가 아프다는 것이 거짓이었음이 발각되어 화타는 감옥에 갇혔다가 마침내 살해되었다.

화타는 처형을 기다리는 중에 비방이 담긴 의학저서 "청낭경(ôìÒ¥Ìè)" 몇 권의 간수에게 건네주며 보관해 줄 것을 당부했지만 간수는 처벌이 두려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화타는 긴 한 숨을 내쉬며 자신의 의서들을 태워버리고 나서 건안13년(208년) 무고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화타의 저서로는 "화타내사(華타內事)", "화타방(華타方)" 등 여러 권이 있다고 하지만 모두 전해지지 않았다. 화타의 비방(秘方)이 기록된 그의 청낭서(靑囊書)가 대부분 유실되었지만 불에 타다가 남은 일부가 겨우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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