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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화가, 문학가 당인
2011-08-09 09:38:30 cri

당인(唐寅)은 중국 명(明)나라 때의 문인, 화가로서 자는 자외(子畏), 백호(伯虎)이고 호는 육여거사이다. 오현, 지금의 강소성 소주의 부유한 상인가정에서 태어났다. 당인은 명나라의 4대 명화가중의 한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당인은 남보다 뛰어나게 총명했다. 그러나 그는 부모들의 기대에 어긋나게 소년시절을 방탕하게 보냈다. 부친이 세상을 뜨고 아들이 요절하고 부인이 병사한 후 당인은 자포자기로 세월을 보내다가 나중엔 친구의 권고를 듣고 다시 학문에 전념했다. 1498년 강남 향시(鄕試)에서 첫 사람으로 거인에 뽑혀 "해원"이라는 계관을 얻었다. 당시 시험관은 당인의 글을 보고 "기재"라고 탄복했다고 한다.

이듬해 시험을 보려고 서울에 올라갔다가 함께 간 친구 서경이 시험관 정민정을 회뢰한 사건에 연루돼 옥에 갇혔다. 당인은 정민정으로부터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고 그의 문하생으로 되였기에 더 심한 형벌을 받았다.

옥에서 풀려난 당인은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 매일 술과 벗하며 글과 그림으로 소일했다. 그는 "강남 제일 풍류 재자(江南第一風流才子)"라는 인장을 사용하여 정묘한 산수, 인물, 화조를 그렸다.

후처와 갈라진 후 당인은 또 주색으로 방탕한 나날을 보냈다. 후에 호남, 강서, 복건, 절강 등 지방을 돌고 온 후 당인은 고향에 "도화암"을 축조하고 거기서 그림을 그려 팔면서 세월을 보냈다. 당시 그가 그린 산수화와 사녀도는 강남지역에서 잘 팔렸다.

당인은 그림을 팔아 호의호식하며 나날을 보내다가 1514년 45살 나던 해 녕왕의 초청을 받아 남창에 가서 빈객으로 한동안 있었다. 당인은 녕왕 주변에 있는 막료들이 거이 다 학문이 없고 아첨만 일삼는 자들임을 안 뒤 더 눌러앉아있을 생각이 없어 우정 술주정을 부리면서 미친 척 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때로부터 당인은 출세할 생각을 단념하고 친구들을 불러들여 고금중외를 논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당인의 그림 작품에서 "강산취우도", "매화도", "우죽도", "춘앵도", "기려귀사도"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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