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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5대 황제 옹정
2012-04-06 15:59:14 cri

옹정(雍正)의 이름은 윤진이며 묘호는 세종이다. 시호는 헌제이며 재위 연호에 따라 옹정제라 부른다. 강희제(康熙帝)의 넷째 아들로서 강희제의 어명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옹정제는 재위하자마자 황태자 지정을 공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는 황태자를 정해놓고 공포하면 황태자를 둘러싼 당파 싸움이 일어나고 또 황태자가 교만해진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여 옹정제는 "태자밀건법"을 실시했다. "태자밀건법"이란 황제가 선정한 황태자 이름이 적힌 친서를 건청궁(乾清宫)에 걸린 시조황제 순치제가 쓴 "정대광명(正大光明)"편액 뒤에 숨겨두고 밀지는 내무부에 간직하였다가 황제가 죽은 후에 개봉하여 밀지와 황제 친서를 맞추게 하는 법이다. 이 법은 조정내의 정치혼란을 감소하고 정세의 안정을 유지함에 있어서 일정한 역할을 놀았다.

옹정제는 황제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취한 중요한 조치의 하나는 친왕이나 황족들이 청조의 핵심적인 군사조직인 팔기군(八旗军)을 지휘하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옹정제가 제위에 올랐을 때 8기 가운데 3기는 황제 직속으로 되여 있었지만 나머지는 친왕들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옹정제는 친왕들이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군사력을 이용해서 개인적인 야심을 채울까 우려해 군사지휘권을 박탈한 외에도 군권을 한 손에 틀어쥐기 위해 만족 귀족의 특권을 수호하는 최고 결책기구인 의정왕대신회의를 폐지하고 대신 자신이 직접 통솔하는 "군기처"를 내왔다. 옹정제는 곁에 군기처대신을 두고 군기처가 내각을 대신하여 6부를 지배하게 하였다. 원래 신속한 용병과 기밀보존을 목적으로 설치된 군기처는 처음에는 군사상의 사무만을 보았으나 점차 황제의 자문에 응하고 조칙을 작성하고 군사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중요사항까지 처리하는 국가 최고기관으로 되였다.

옹정제는 서남지역의 지방 행정제도에 대해 개혁을 단행했는데 그것이 바로 개토귀류 정책이다. 당시 서남지역에서는 토사제가 실시되었는데 이 제도는 세습적인 토사들이 지방 세력을 키우고 할거하는데 이로웠다. 중앙 집권제를 강화하고 지방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옹정제는 정부에서 파견한 관리인 유관으로 하여금 지방을 다스리게 하고 조정이 파견한 군대로 지방 무장을 대체하게 했으며 토지를 통일적으로 측량하고 세수표준을 통일시켰으며 세습적인 토사제를 폐지하고 부역제도를 개혁하는 등 일련의 조치를 취했다.

개토귀류의 정책 실시는 지방 할거 세력을 견제하고 변방을 공고히 했으며 나라의 통일, 서남지역의 경제발전과 문화 발전을 추진했다.

영토완정을 수호함에 있어서 옹정제는 1723년 10월에 일어난 청해의 란을 평정해 청해 지역을 청나라 관할 하에 넣었고 황실의 지배체제를 확립하였다.

옹정제에 와서 청나라 황권은 크게 강화되었고 봉건전제제도는 전성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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