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전통음악 (2009년 12월 19일 방송분)
지난 한주 안녕하셨습니까. 중국전통음악에서 인사드리는 임봉해입니다. 올해 12월 20일은 마카오 조국 귀속 10주년이 되는 기념일입니다. 중국전통음악, 오늘은 "七子之歌""일곱 자식의 노래"를 소개해드립니다. 중국악기 코너에서는 중국 조선족의 전통악기 세피리를 소개합니다. 여러분들의 애청을 기대합니다.
간주
음악 깔며
"당신은 "마카오"란 이름이 나의 진짜 성이 아닌줄 아시겠지요? 나는 너무 오래동안 어머니 품을 떠나 있었답니다. 어머니, 그들은 나의 육체를 빼앗아갔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속깊이 영혼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3백년동안 꿈에도 그리던 나의 어머니여, 나의 어릴적 이름 한번 불러주세요. 나를 오문이라고 불러주세요. 어머니, 이제는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렵니다. 어머니!"
1999년 마카오가 조국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해 이 노래는 어머니를 잃은 어린이의 말투로 조국 어머니에 대한 마카오의 그리움의 정을 표현했습니다. 이 노래가 바로 지금 여러분께서 듣고 계시는 노래 "일곱 자식의 노래"입니다.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하는 이 노래는 문일다 작사, 이해영 작곡, 용운림(容韻琳)이 선창했습니다.
노래 작곡가 이해영씨는 개혁개방이래 대량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들을 창작해 냈습니다. 이 노래는 그가 마카오 조국 귀속을 맞이하기 위한 다큐멘터리를 위해 창작한 주제곡입니다. 그의 소개를 들어봅니다.
음향
"이 노래는 1997년에 창작한 것입니다. 그때 마침 중앙텔레비죤방송국의 촬영팀이 마카오 조국 귀속을 맞이하기 위해 다큐메터리를 제작하는데 주제곡을 창작해 주십사하는 펙스를 보내왔습니다. 가사는 문일다 선생의 시였습니다. 시의 제목은 "일곱자식의 노래-마카오"였습니다. 온 종일 이 시를 들여다보다가 이튿날 오후 피아노 연주에 맞춰 곡을 창작했습니다. 그때 약간의 변동이 있었는데 바로 문일다 선생이 마카오란 이름을 아주 괴상하게 번역을 해서 제가 마카오라고 이름을 고쳤습니다. 하여 지금 사람들이 널리 부르는 버전에 마카오란 이름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해영씨의 고향은 중국 남부의 광동성입니다. 이곳은 중국 개혁개방의 최선두이고 홍콩, 마카오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어 홍콩 대만 음악이 제일 일찍 이곳에서 중국 내지로 흘러든 곳입니다. 개혁개방이래 이해영씨는 널리 유행된 노래들을 많이 창작했는데 각계 인사들의 깊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해영씨는 마카오와 조국은 떼여놓을수 없는 혈맥관계가 있으며 자신과 마카오도 천연적으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 노래 창작에 있어서 생각밖으로 순조로웠다고 말했습니다.
음향
"마카오는 제가 아주 익숙한 곳입니다. 광동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자라난 저에게 마카오는 고향인 중산시와 아주 가까운 몇십키로 거리밖에 안되었습니다. 먼 옛날 마카오도 역시 중산시 전신인 향산현의 관할구역에 속했다고 합니다. 이밖에 또 다른 배경이라면 이른바 "성항오"라고 성은 광동성을 말하고 항은 홍콩을, 오는 마카오를 말하는데 이들은 똑같은 생활습관과 같은 음식습관, 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지역적 차이만 있을뿐 언어도 같습니다. 20세기 80년대, 저도 마카오를 다녀왔었고 그곳에 친구들도 적지 않습니다. 때문에 마카오는 저에게 있어 아주 익숙하고 친절한 곳입니다."
노래 끝까지 2'14"
마카오는 16세기에 일찍 포르투갈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하지만 중화아들딸들은 조국 어머니의 이 자식을 시시각각 그리워했습니다. 1925년 멀리 미국에서 유학중인 유명한 시인 문일다 선생이 "일곱 자식의 노래"라는 여러편의 시를 썼는데 그들은 이런 시의 수법으로 홍콩, 마카오, 위해 등 어머니 품을 떠나 있는 7 자식을 비유했습니다. 그는 시에서 어린이의 말투로 부득불 어머니품을 떠나 갖은 착취와 유린을 받고 있는 현실과 어머니 품을 그리워하는 절실한 감정을 생동하게 표현했습니다. 마카오가 조국 어머니품으로 돌아오는 이 시각, "마카오"편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면 사람들은 무한한 감동에 젖어들게 됩니다. 이해영씨는 너무나 감동적으로 씌여진 문일다의 시때문에 그의 창작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음향
"문일다선생의 가사는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1925년 당시, 조국의 일곱 아들딸들은 모두 외국인들의 손에 있었습니다. 그는 분노에 찬 마음을 걷잡고 교묘한 수법으로 마카오를 어머니품을 떠난 어린이에 비유하면서 생동하게 표현했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 노래를 창작함에 있어서 어린이 어투를 최대한 살렸는데 특히 시작부분 중간 단락에서 어린이의 부름, 웨침소리가 파도를 타고 자연스럽게 안겨오게 했습니다. 비록 간단한 수법이지만 효과는 좋았습니다."
이해영씨는 노래가 마무리되자마자 어린이가 선창하고 혼성 합창을 하는 형식으로 이 노래를 표현해주길 바랐습니다.
음향
"어린이 목소리로 어머니품을 잃은 자식을 표현하고 뒤이어 혼성합창의 방식으로 어머니품을 재현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노래창작이 끝나자마자 제작팀 인원들은 마카오에 가서 노래를 부를 어린이를 찾아 나섰습니다. 아이디어가 참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후 마침내 마카오의 7살짜리 용운림이라는 여자애를 선택했고 그의 마카오식의 표준어는 중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노래 깔며
"일곱 자식의 노래" 이 노래는 출범하자마자 광범한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마카오에서도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이 노래를 선창한 소학생이었던 용운림 어린이도 어느덧 마카오대학 1학년 학생으로 자라났고 그의 표준어도 날로 익숙해졌습니다. 용운림 어린이는 해마다 중국 내지에 와서 공연을 하고 있는데 부르는 노래가 바로 이 노래 "일곱 자식의 노래"입니다. 그는 금방 이 노래를 부를때는 노래에 함축된 의미를 몰랐었는데 오늘날 이 노래를 부르면서 조국에 대한 감정이 깊어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노래 가사에 담겨진 내용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마카오가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치 어린이가 어머품을 찾아 돌아온 것 처럼 말입니다."
녜, 용운림 어린이가 부른 이 노래를 다시 한번 보내드립니다.
노래 끝까지
중국음악, 지금까지 "일곱 자식의 노래"를 소개해드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