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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기 "청취자의 벗"
2010-03-05 17:45:58 cri

 

남: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 담당 김태근입니다.

여: 안녕하십니까? 한창송입니다. "1년지계는 봄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음력설의 연휴를 계기로 충분한 재충전을 한 여러분들, 이젠 한해 목표를 위해 열심히 뛰고 계시겠죠?

남: 봄을 맞으며 열심인 여러분들의 모습을 담은 편지들이 속속 들어 오고 있습니다. 연길의 손화섭 청취자의 편지사연에 의하면 연변 청취자연의회에서는 요즘 전체 대회를 열고 지난 한해동안의 사업을 총화하고 새로운 한해 방송청취사업에 대해 토론하고 특히 CRI조선어 방송 60주년을 계기로 다양한 활동들을 구상한다는 고마운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여: 중국에서 제일 추운지대인 흑룡강성 목릉시 하서향 기경촌의 박동호 청취자도 저희들 음력설 특집 방송을 감명깊게 듣고 새로운 한해 농사 대풍을 위해 이제부터는 더욱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설날저녁 청취자들에게 즐거움을 선물한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들이여!

설날 저녁 프로에서 방송국 여러분들이 함께 모여 기쁘게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까지 선물하여 정말 재밋게 들었습니다. 이곳 기경촌 박동호의 마음은 오곡백과 무르녹는 황금물결마냥 설레이었습니다. 늘 듣던 여러분들의 목소리었지만 설날 저녁에 여러분들이 평범한 생활이야기, 또는 귀맛당기는 이야기들을 전하니 또 새롭고 신기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의 방송이 있기에 저는 이곳에서 힘든 농사일을 하지만 즐거운 저녁을 보내고 세계 애청자들과도 교류를 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방송은 인생의 길동무입니다. 이젠 방송을 들으면서 스스로 여러분들의 얼굴을 그리며 한마디 한마디를 의미심장한 말씀으로 기대하고 가슴에 새깁니다.

설까지 쇠고 나니 이곳 중국의 북방 흑룡강성도 서서히 봄이 찾아 오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우리들이 바삐 서둘러야 할 때입니다. 올해는 농사에서도 좋은 수확을 안아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방송사업에서 보다 큰 성과를 이룩하길 기원합니다. 항상 좋은 방송 만들어주세요."

여: 장춘청취자 연의회 윤영학 회장님은 장춘지역 청취자들의 높은 방송청취열성을 반영한 편지를 전해왔습니다.:

<<청취자의벗>>프로담당선생님께:

안녕하십니까 우리 애청자들을 위해 남들이 즐겁게 휴식하는 설명절에도 휴식 못하고 수고많으셨습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장춘시조선족사회를 놓고 보더라도 새해에 들어서면서 귀 방송을 애청하는 열정은 계속 높아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소식보도를 애청자 김익영선생님께서 2월10일 귀 조선어부 공용이메일주소로 보내드렸는데 받으셨는지요? 그 사연을 간단히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작년 10월 귀 방송국조선어부선생님들과 장춘애청자들의 모임에 참석했던 장춘시록원구서신진쌍풍조선족로인협회 박정렬회장님은 전체 회원들의 국제방송에 대한 인식을 더욱 높이기 위해 2월7일 전체회원대회를 소집하고 애청자소조 책임자를 청하여 애청자활동경험소개를 청취했습니다. 보다 많은 회원들이 우리말 방송을 애청하겠금 하기위해 반도체라지오를 사는분들에게 협회에서 20원씩 보조해주기로 하였는데 당장에서 11명이나 사기로 하였습니다. 3일후 박회장은 친히 상점에가 반도체라지오11대를 사다주었습니다.

이는 50명회원중 20%이상이 우리말 방송을 애청하는 새로운 돌파였습니다.

이 외에도 조양구로인협회 지영숙과 개발구로인협회 구순권 두집 자식들은 부모님들이 우리말방송을 애청하라고 설 례물로 부모님들께 새라지오를 선물하는 새 기상들이 나타났습니다. 이상 장춘지역에서 방송 애청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간단히 전합니다.

윤 영 학

2월21일 "

(과도음악)

남: 새로운 한해 경공업과 농업생산에서의 일대 혁신을 위해 전민이 일떠섰다는 조선의 편지사연들입니다. 먼저 조선 평양 도시 설계사업소 변혜란: 청취자의 편집니다.

"조선어 방송부 선생님들에게

그간 안녕하십니까?

2010년 양력설을 맞이한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한달이 지났습니다. 례년에 없이 날씨가 춥고 또 이 추위가 오래 지속된 것으로 하여 엄혹하였지만 새해 공동사설을 받아안고 새로운 승리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는 우리에게는 추위가 문제로 되지 않았습니다.

귀 방송 수신상태가 여전히 좋습니다. 만수대 거리 살림집을 본보기로 하여 평양시 10만세대 주택설계로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귀방송을 놓치지 않고 듣고 있습니다. 방송을 통하여 발전하는 중국의 이모저모를 엿볼수 있습니다. 제가 보낸 편지를 소개해주어 고맙습니다. 비록 한번도 만난적 없지만 방송과 편지를 통하여 친근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보내준 신년축하장과 신문 '청취자의 벗'은 반갑게 받아보았습니다.조중친선의 해인 지난해에 더욱더 발전된 두나라사이의 친선의 뉴대를 잘 보여주는 두 나라 방송기관들 사이의 래왕을 담았는데 흥미있게 보았습니다. 경연대회에 대한 등수가 발표되었는데 제 이름이 없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다음번 경연에는 꼭 1등에 당선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선생님들의 사업에서 성과와 행복을 바라며 오늘은 이만 그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0.1.29. 변혜란 "

여: 변혜란 청취자님께서는 평양시민들에게 더 좋은 살림집을 제공하려는 정부의 뜻을 관철하는 10만세대 살림집 건설에 박차를 가한다고 하셨는데요. 평양은 공원속의 도시라고 할 정도로 도시 환경이 아름다운데 이제 새롭게 건설되는 그 10만세대의 살림집들이 시민들에게 더 좋은 행복의 보금자리로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남: 녜,평양체육기자재 공장 최영춘 청취자께서 지난한해동안 저희들 방송 청취로 인한 즐거운 나날들을 돌이키는 사연을 전해왔습니다.:

"조선말방송부 선생님들께

안녕하십니까?

선생님들이 성의껏 보내주신 새해 축하장과 잡지'청취자의 벗'은 참으로 기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 6월에 CRI조선말 방송부 부장선생님과 아시아 담당 부국장 선생님, 조설매 기자선생님과 상봉하던 뜻깊은 날이 추억되여 사진을 다시 보고 또 보았습니다. 올해에도 선생님들과 또다시 상봉의 기회가 마련된다면 얼마나 기쁠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잡지'청취자의 벗'을 보고 저의 세대주와 아들애는 저의 독사진을 보고 사진이 참 잘 되었다고 기뻐하면서 저의 발언내용을 자자구구 읽어 보았답니다. 저는 으쓱해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조중친선에 그 무엇인가 기여했다는 긍지감에서였을 것입니다.올해에도 귀 방송애청자로서의 본분을 다하렵니다. 요새 평양날씨는 차겁습니다. 어젠 함박눈이 퐁퐁내렸구요.올해에 농사풍년이 들라고 저 하늘도 축복하는듯 싶더군요.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올해 우리 조선은 경공업과 농업에 다시 한번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에서 결정적인 전환을 일으키려고 한답니다. 조선노동당의 의도랍니다. 그래서 공동사설에 명백히 밝혀져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공동사설 관철에 저도 우리 공장 모든 종업원들이 떨쳐나섰습니다. '모든 힘을 인민생활향상을 위하여!' 이 구상을 받들어우리도 있는힘껏 한해 동안 달리고 달릴 것입니다. 그래서 꼭 강성대국을 앞당겨 건설하는데 우리의 작은 힘과 지혜도 아낌없이 바칠 것입니다.

귀 방송은 여전히 잘 들립니다. 방송을 들으니 아이티에서 지진으로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들 듣게 되었습니다. 여러 나라들에서 아이티의 참상에 진심으로 가슴아파하며 지원물자를 보내고 있다는 소식, 특히 중국이 인도주의적 원조를 아낌없이 제공한데 대하여 저는 감동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인류의 선량한 마음과 정의가 있는 한 아이티의 피해도 가셔지리라고 확신합니다.

올해 설명절이 다가 옵니다. 2워14일 설명절을 맞으며 선생님들의 사업에서의 성과와 건강과 행복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올해 CRI방송 60돐을 맞이하게되지 않습니까?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귀 방송과의 친선의 뉴대를 더욱 두터이 해나갈것을 약속합니다.

그럼 귀한 몸 건강하십시오, 모두!

2010년1월29일 최영춘"

여: CRI방송을 통해 아이티 지진지역에 대한 중국의 인도주의 원조를 상세히 듣고 감동을 금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녜, 이웃이 어려움에 처할때 서로가 돕고 하는 것이 조화사회가 아니겠습니까? 말씀처럼 "인류의 선량한 마음과 정의"가 있는 한 아이티의 피해도 하루빨리 가셔지고 인민들의 새로운 터전에서 생활하게 되는 그런 날도 어서와야겠죠.

남: 평안북도 운산군 삼산리 최봉식 청취자께서 지식경연 수상기념품과 새해 축하장등을 받아 보고 무척 반가웠다는 편지사연입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조선어부 선생님들

조선 평안북도 운산군 삼산리에서 청취자 최봉식 펜을 들어 문안드립니다. 어느덧 추었던 겨울 날씨도 이제는 수그러드니 알리는 계절입니다. 베이징도 날씨가 거의 비슷하리라 봅니다. 그리고 선생님들 모두가 건강하리라 믿습니다.

편지가 좀 늦어져서 미안합니다. 저는 지금 올해 공동사설을 받들고 농사를 잘 짓기위한 준비사업으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참 귀방송국에서 보내준 새해 축하장과 신문'청취자의벗', 그리고 영예스럽게 지식경연 2등상장과 상품을 매우 기쁜 마음으로 받았음을 알리는 바입니다. 시상품을 소중히 간직하고 사용할 것이며 그때마다 조중친선의 정을 뜨겁게 느끼면서 귀방송청취와 편지도 더 열성껏 보내려고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티 지진피해 상황을 다름아닌 귀 방송을 통하여 더잘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 당과 정부와 인민들의 지진피해을 입은 아이티에 보낸 인도주의 지원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중국이 노는 역할은 날이 갈수록 더욱 뜨겁게 느껴지고있습니다.

중국의 전통적인 민속명절인 음력설 명절에 선생님들 모두가 건강하여 즐겁게 보내기를 바랍니다. 그럼 안녕히들 계십시오.

청취자 최봉식 올림"

여: 신의주시 석하 협동농장, 최봉련 청취자 황해남도 과일군 곽두석 청취자께서도 새해 인사와 함께 방송청취로 즐거웠던 지난 한해를 돌이키고 새로운 한해 대전환을 위한 사업에서 열성을 다한다는 편지 사연을 전해왔는데요, 시간상 관계로 편지내용을 읽어 드리지 못 함을 양해 구합니다.

(조선 음악 "봄노래")

남: 개혁개방속에서 중국의 농업인들이 대량 도시에 진출하여 농민공으로 부를 창조하고 더욱히는 외국에 진출하여 땀흘리는 건설현장노무인원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여: 한국에만도 중국노무인원들이 수십만명을 헤아린다고 하는데요. 힘든 현장에서 땀흘리며 돈을 벌고 그 과정에 현지 문화를 배우고 적응하고 있습니다.

길림성 도문철도에 근무하다 한국 노무현장을 뛰고 있는 김춘일 청취자가 저희들 방송국에 한국 생활 수기를 적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함께 들어보시겠습니다.

남: "안녕하세요?

저는 중국 길림성 도문시에 있던 김춘일이라고 합니다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고 자녀의 학업을 위하여 한국행 길을 선택하였어요.저의 생각에는 한 민족의 국가이고 한 민족의 글을 사용하고 언어가 소통되니 그 어느 나라를 선택하기보다 우월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어요. 정작 한국에 입국하니 신문,방송,간판의 글과 언어는 알아 보고 듣을 수도 있고 쓸 수도 있는데 막상 건축현장에서 애로상 말을 못할 속사정들이 많았어요.

한국에서는 외래어를 많이 사용해요.

그중 실례를 보면:

1996년 7월 경기도 수원의 한 개인 주택 건설현장에서 처음 일할때 한국 분이 "반생"을 가져 오라고 하였는데 처음에는 도대체 무엇을 가져 오라는지 이해를 못했어요.제 생각으로는 사람의 일생의 절반 혹은 반평생으로 생각하였으나 … 그것을 가져 오랄 수는 없고…그 누구에게도 물어 볼 수 없는 상황이여서 한국 분들이 가져 오는 것을 보고서야 "반생"이 (鐵線)인 것을 알았어요.그 당시에 철사라고 하여도 중국에서 사용되는 사투리 "쇠줄"로 대충 이해를 했을것인데 ... ... 거기에 또 10번 반생 6번 반생등으로 (中國語 로는 10號鐵線,6號鐵線)구분하니 매우 어려웠어요.

또 하나의 황당한 사연

1995년 11월 15일 경기도 수원시 3층 개인주택 건물 신축 현장에서 일을 할때 건축주 정종현 사장은 서울에 거주하면서 승용차로 출퇴근을 하였는데 저녁에 서울로 가실 때 제가 정 사장님에게 인사의 말로 "안녕히 돌아 가세요"하고 꼭꼭 인사를 하였고 어느 하루 사장님의 사모님이 서울에서 전화가 왔을때 내가"정 사장님께서 서울로 돌아 갔어요"하고 답변하였어요,다음 날 정 사장님께서 돌아 갔다고 인사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한국에서는 돌아 갔다는 의미는 사람이 사망하였을때에 돌아 갔다고 표현 한다고 말하는 것이였어요. 저는 연신 죄송하다고 해석하고 오늘부터 당장 시정할게요.하면서 서울에 정 사장의 사모님에게도 전화하여 죄송하다고 사과하였어요.이 얼마나 황당한 사연인가요.

이러한 사연은 이루다 말할 수 없어요.

이런 언어의 차이 때문에 처음에는 낮에 일하고 저녁에 집에 와서는 현장에서 듣은 외래어를 책에다 적어 (메모하여)놓아서 사전,혹은 신문방송을 듣고 중국어로 써 놓고 암기하고 기억하여 조금씩 외래어에 익숙하여서 현재는 현장에서 사용되는 원만한 외래어는 이해하고 작업하는데 지장 없이 진행하고 있어요.

문화의 차이점에서 어려움도 많았어요.

그중에서 술 문화를(酒) 예로들면 한국에서는 술을 냉장고에 보관하여 시원하게 마시고 손님에게 술잔에 술을 따를때에 잔을 채우면 례의가 없다고 하면서 술잔은 가득 채우지 않아요.그리고 첨잔도(添酒)하지 않아요.반드시 손님이 술을 다 마시고 잔을 다비운 다음에 술을 따르는 법입니다.중국식은 (滿杯酒,半杯茶) 술은 넘치게, 차는 반으로 하는 술 문화인데 …1996년 7월 수원의 주택 건설현장에서 일을 맡치고 회식(會餐)을 할때에 한국분에게 술을 따를 때 정성을 들여 술을 술잔에 넘치지 않을 정도로 부었는데 그 분은 술잔을 흔들어 술을 쏟아서 8.9 정도로 남기였어요. 그 후에 한국분들과 알아 보니 한국에서는 술잔에 술을 넘쳐나게 부으면 례의가 없다고 해서 그 후로는 명심하고 술을 상대방에게 가득 채우지 않고 좀 적게 부었어요. 이런 문화 차이로 속도 상하였고 실수도 하였어요.

엄동설한의 깊은 정

1997년 12월 19일부터 경상남도 창원 현장에서 목조 주택 일을 했었는데 일군은 모두 6명인데 월세 방 하나를 맡아서 같이 주숙하게 되었는데 제가 맨 끝자리에서 자게되였는데 낮에 현장에서 춥게 일하고 저녁에 자리에 누우면 난방 호스가 끝자리에 없기에 온기가 없고 추워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여러날을 이렇게 지내는 것을 한국인 손오현은 자신이 내자리에서 자고 나를 안쪽에서 자게 하였어요 낮에 현장에서 얼어 붙은 몸을 녹일 수 있어서 잠자리에 누우면 인차 잠을 이룰 수 있어서 피곤을 풀 수 있었고 다음날 출근에 지장이 없었어요.이것이 내 인생에 한국에 와서 엄동설한에 느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시절이였어요. 지금도 연락하고 가끔 그분의 집에도 놀러 다녀요.언젠가는 그분의 감사한 마음을 신문,방송을 통하여 그 고마움을 널리 전하고 싶은 생각은 항상하고 있었어요.

노래 제목과 가사 내용으로 이어진 사연

2000년 11월 인천광역시(중국의 직할시 해당)옹진군 자월도(섬 마을)보건소 건축현장에서 일할 때 어느날 아침 5시 넘어서 KBS 라디오 "언제나 청춘"프로에서 김안수 가수가 부른 노래 <길림성 편지> 를 듣고 노래 제목과 가사 내용이 가슴에 와 닫아서KBS 방송국에 편지로 김안수 노래 <길림성 편지>를 재방송할것을 신청했어요.

2001년 1월 15일에 섬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KBS 방송국에서 전화가 와서 18일에 내가 신청한 김안수의 <길림성 편지>노래가 방송 된다고 알려 주었어요. 때 마침 강추위로 현장에 작업이 중단되여 몇일을 휴식하게 되어 안산에 와서 녹음기를 구입하여 <길림성 편지>노래가 방송되는 것을 녹음해서 여러번 반복으로 들을 수 있었어요. 얼마후에 김안수 가수가 전화와서 서울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여 만난후로는 지금까지 인연이 되어 한국 KBS 방송국 SBS 방송국등에 여러번 김안수 노래를 신청하여 방송 되었고 한중교류협회에 김안수를 초청하여 여러번 중국동포노래자랑에 출연하게 되었으며 중국의 연변 라디오 방송국 中央電視台 -4 방송되었어요. 중국 국제방송국에도 물론이지요.

기적적인 생명의 소생 사연

2002년 5월 14일 경기도 안산시 고잔 신도시 개인 상가주택 건축현장에서 일할때에 4층 외부에서 추락하여 얼굴,흉부,가슴등에 타박상을 입고 다행히도 119 구호차에 실려 안산고려대 병원에 호송되여 치료를 받고 놀랍게도 기적적으로 생명에는 지장없이 소생하였어요. 병원의 의사들도 담가에 실려 병원에 들어 올때에는 가망이 없다고 예상 하였는데 정말로 살아서 너무나 기적적이라고 하였어요. 상처로 일을 할 수 없으니 요양치료 중에 컴퓨터 공부를 신청하여 2002년 11월 23일부터 밤 9시부터 11시 사이에 22일을 거치여서 컴퓨터를 배웠어요.

2003년 1월 9일에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동포들이 빠른 시일에 컴퓨터를 배울 것을 호소하기 위하여 <동북아 신문>사에 컴퓨터로 쓴 원고를 보냈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신문사의 고명숙 기자가 전화와서 시간을 내여서 면담을 요청하여서 컴퓨터 배우던 교실에 가서 사진까지 찍어 2003년 1월 25일 <동북아 신문>제 11면에 내가 쓴 원고 내용과 컴퓨터 배우던 모습의 사진까지 실리였어요.

한국에 와서 컴퓨터가 유행하는 것을 보고 컴퓨터를 배우고 컴퓨터도 구입하려는 욕망은 많았으니 백만원 넘는 돈으로 컴퓨터를 구입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지요.당시 중국 돈으로 1만원이면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과 집 식구들은 무엇으로 생활하겠어요.그나마 다치여 일을 할 수 없으니 밤에 컴퓨터를 배워서 PC방에 가서 연습하여서 필기책에 메모한 외래어도 중국어 번체로 편집하고 나중에는 간체로 편집하여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어 한국생활에서 외래어로 고생하는 것을 해소했어요. 컴퓨터를 배운후에는 "외래어 簡便中国語 ","캠코더,카메라 용어""현장 외래어 용어"그리고 "외래어 中國語"를 4차나 개편하였어요.

그뿐만 아니라 현재는 디카로 사진을 찍어서 사진관에 갈 필요없이 집에서 컴퓨터로 사진을 출력하고 인터넷 검색 메일을 전송,수신,법무부.출입국 사무소등에 문의 사전예약 중국 티비 시청 인터넷에서 사전 찾기등을 컴퓨터로 자유로이 이용하고 있어요.

정말로 컴퓨터를 배워서 학교에서 다 배우지 못한 것을 배울 뿐만 아니라 저의 시야가 많이 넓어졌어요.

한국의 노무 현장, 힘든 나날들이지만 회고해 보면 배운것도 많고 추억도 많은 유익한 인생 공부였습니다.

2010년 2월 11일

(배경음악)

여: 김춘일 청취자의 한국생활수기 – 고달픈 노무현장의 나날속에서 적응하고 배우고 … 그속의 희로애락을 잘 적은 글이었는데요. 듣는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글이었습니다. 김춘일 청취자 노무현장에서 항상 건강에 유의하시며 돈을 많이 벌고 귀국하시길 기원하면서 즐기시는 노래, 김안수씨의 "길림에서 온 편지"노래를 띄워드립니다.

(길림에서 온 편지)

남: 어느덧 오늘 프로를 마감할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 지금까지 진행에 김태근 한창송이었습니다. 다음 이 시간까지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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