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소개
게시판
조선어부 소개
 
cri korean.cri.cn/
차마고도를 탐방하다
2012-01-19 12:24:07 cri
 

과거 중국 서부의 사천성에서 나는 찻잎은 말이나 낙타에 실려 사천 아안(雅安)에서 출발해 이랑산(二郞山)을 넘어 강정(康定)을 거치는 등 산전수전을 겪은 뒤 티베트에 이르렀습니다. 사천-티베트간의 이 차마고도(茶馬古都)는 운남성에서 출발해 티베트에 이르는 운남-티베트 차마고도와 함께 "세계적으로 해발이 가장 높은 중국 고대 문명 전파의 길"로 불립니다.

천여년동안 사람과 말의 발자국에 의해 생겨난 이 길은 꼬불꼬불 심산속을 누비면서 마냥 목적지만을 향합니다. 편리한 교통시설이 많은 오늘날 이 차마고도는 더는 수송의 과업을 짊어지지 않고 관광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 오늘은 저와 함께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차마고도로 여행을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사천-티베트간 차마고도는 천여년전인 당(唐)나라 때 생겼으며 동으로 사천아안에서 시작해 강정을 거쳐 서쪽으로 티베트에 이른 다음, 다시 부탄과 네팔, 인도까지 이르렀으며 그 종착역은 서아시아와 서아프리카의 홍해연안이었습니다.

총 거리가 4000km에 달하고 13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차마고도는 내륙지역과 티베트고원을 연결하는 통로일뿐만 아니라 긴 복도처럼 연선의 모든 민족을 하나로 통합시켜준 통상의 길, 문화전파의 길이었습니다.

티베트고원에서 사는 사람들은 "밥 없이는 살아도 차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육류위주의 식사습관으로 인해 티베트족들은 수유차를 마셔야 체내 유지의 균형을 맞출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한지대의 티베트에서는 엽차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동시에 엽차를 생산하는 내륙지역에서는 티베트지역의 질 좋은 말이 필요했기 때문에 차와 말을 바꾸는 물물거래성격의 무역이 점차 형성되었고 엽차를 수송하기 위한 무역통로를 차마고도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차마고도는 말이나 낙타의 등에 물건을 실어 나르거나 혹은 사람의 힘으로 화물을 수송하는 길입니다. 산을 오르내리고 길이 험난하기로 유명한데 특히 강정구간이 험준합니다. 따라서 이런 구간에서는 말이나 낙타도 소용없고 사람의 잔등에 물건을 실어 나를수밖에 없었습니다. 체력으로 짐을 나르는 사람들을 등 배, 사내 부를 써서 "배부(背夫)"라 불렀습니다.

음향1

방금 들으신 노래는 사천 천전(天全)에서 전해지는 배부가(背夫歌)라는 노래였습니다. 배부의 삶을 그린 이 민요는 지난 세월의 풍상고초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차마고도가 형성되면서 천전의 촌민들은 등에 차를 실어나르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깊은 산속의 꼬불꼬불한 산길 그 어디서나 등에 물건을 지고 지팡이를 짚고 오가는 짐군들의 모습을 볼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산속의 자욱한 운무속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구성진 산노래만이 또렷하게 귓가에 들려왔다고 합니다.

당시 짐군들이 실어나른 포장엽차는 하나에 8kg이고 1회에 10-12개씩 운반했으며 거기에 짚신과 먹을 양식까지 지녀야 했습니다. 짐이 무거웠기 대문에 짐군들은 50m에 한번씩 쉬어가야 했고 따라서 하루에 3,4km밖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한번 길을 떠나면 적어도 한달을 산속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차마고도위의 짐군-배부들의 수송길은 이처럼 험난하기만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랑산을 넘기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험난하고 기나긴 수송길에 도중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없지 않았는데 그러면 돌아올 때에야 시신을 집으로 가져왔다고 합니다. 천전현에서 살고 있는 84세의 배부 이번림씨의 말입니다.

음향2

<길을 떠나면 길바닥 어디서든지 자야 했고 잘때는 짚으로 만든 깔개밖에 없었습니다. 잘 때 베개는 통나무를 쪼개서 만들었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깔개가 시원찮았으며 덮고 자는 이불은 더 더럽고 너덜너덜했습니다.>

음악

이같이 배부들은 한번 길을 떠날 때마다 생사의 기로를 오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산과 물을 넘어 차마고도위를 천여년동안 오가면서 자연을 정복했습니다. 수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배부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자연을 정복한 그들의 용기만이 아니며 그들의 낙관적인 정신과 그들의 삶을 그린 배부민요들입니다. 배부민요는 생사사이를 오가는 그들의 삶을 그린 것도 있고 용기백배로 산을 넘나드는 그들의 기백을 묘사한 것도 있으며 길떠난 배부를 그리워하는 아녀자의 애틋한 마음을 보여주는 사랑이야기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뒤로 1958년 사천-티베트 도로가 개통되면서 짐군의 발자국이 찍힌 산길이 역사의 한 폐지로 남았습니다. 차마고도는 비록 역사에 묻혔지만 없어진것이 아닙니다. 어젯날의 은은한 낙타방울소리와 저 멀리 퍼져가던 차의 향기가 어제로 사라져간 차마고도를 대대손손 기억하고 있습니다.

"산간에 방울소리 들려오면 마방(馬邦)이 나타나"는 경관은 차마고도의 특이한 장면입니다. 잔등에 짐을 실은 말이 보이기 전에 말이나 낙타의 목에 건 방울소리가 먼저 들려온다는 뜻입니다.

차마고도에서 산세가 험악한 일부 구간에서만 사람의 힘으로 짐을 수송하고 대부분은 말이나 낙타를 사용했는데 이를 마방이라 불렀습니다. 차마고도에서는 오늘날도 이런 마방을 찾아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짐을 나르지 않고 대신 관광객들을 싣고 차마고도를 오갑니다. 사천성 서북고원에 있는 송번고성은 한때 차잎과 말의 교역중심이었습니다. 지금도 송번성에서 마방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의 말과 낙타등에는 짐이 아니라 관광객들을 태우고 있습니다.

곽상씨는 송번현 순강촌의 농민입니다. 그는 차마고도가 여행지로 개발되면서 관광업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촌민들과 함께 100여명 가이드의 마방팀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의 마방팀은 말을 타고 설산을 누비고 싶었던 많은 국내외 여행객들의 꿈을 이루어주었습니다. 곽상씨의 말입니다.

음향4

<우리는 홈페이지 같은 특별한 홍보수단이 없지만 이곳을 다녀간 중국인이든지 외국인이든지 모두 이곳의 마방이 훌륭하다고 홍보해줍니다. 때문에 더더욱 유명해져서 한 외국인이 쓴 책에서도 우리 송번의 마방팀이 나옵니다.>

음악

송번의 마방팀이 유명해지자 곽상씨는 또 50여만원을 투자해 작지만 깨끗한 청년여관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말입니다.

음향5

<우리 여관에서는 모두 셀프서비스를 합니다. 때문에 외국여행객들도 세탁같은것을 자체로 해결합니다. 외국여행객들은 큰 짐 작은 짐을 짊어지고 물어서 이곳까지 찾아옵니다. 그리스, 브라질, 아이슬란드에서 온 여행객들도 있었습니다. 이란, 이라크 같은 아랍국가를 제외하고 많은 나라의 여행객들이 다녀갔습니다.>

음악

중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말을 타고 설산에도 오르고 차마고도를 걸으면서 그 유구함과 고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어젯날의 차마고도에 오늘날도 마방의 그림자가 보이고 방울소리와 함께 산 노래가 울려퍼져 차마고도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머나먼 외국에서 온 여행객을 말잔등에 태우고 차마고도를 돌아본 현지의 가이드가 그 외국인과 사랑을 맺어 말잔등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습니다.

오늘날, 힘들게 짐을 나르던 배부들의 그림자와 은은한 낙타방울소리도, 차의 향기도 멀어져 갔지만 차마고도위에 남겨진 선인들의 발자국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사람들에게 어젯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1 2
  관련기사
  리플달기
   Webradio
선택하세요
cri korean.cri.cn
  추천기사

[차이나는 중국] 바오쯔

꿈의 마을 조원

새해가 왔어요~

영상으로 보는 제2회 중한성장지사회의

제2회 중한성장지사회의 베이징에서 개최
중국각지우편번호중국각지전화코드편의전화번호호텔
China Radio International.CRI. All Rights Reserved.
16A Shijingshan Road, Beijing, Ch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