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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에 깃든 이야기]-"내 고향 금파도"
2013-07-13 18:24:34 cri

젊음의 상상과 낭만이 너울져 설레는 고향찬가 - "내 고향 금파도"

[노래 1절 깔며]

사회자: 예술가들은 자연의 경물이나 현상에서 창작의 소재를 얻고 또 거기에서 령감이 촉발되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의 변화나 아침에 뜨는 해, 저녁에 솟는 달 그리고 흐르는 강물이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이 모든것이 창작적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삶은 자연속에서 이뤄지며 인간의 감정도 자연의 변화하는 모습을 떠날수 없기때문입니다. 지난 세기 50년대 우리 농촌의 아름다운 정경을 젊음의 상상과 낭만으로 담아낸 노래가 있는데요. 오늘은 이 노래를 소개해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석화: 안녕하십니까.

사회자: 오늘은 어떤 노래 준비하셨습니까.

석화: 오늘은 "내 고향 금파도" 참 아름다운 노래인데요.

사회자: 아름답죠.

석화: 함께 들어볼까요.

사회자: 네.

[노래 – "내 고향 금파도" 3'25"]

사회자: "내 고향 금파도" 듣고 돌아왔습니다.

석화: 이 노래는 김동호 선생님이 가사를 쓰고 김덕균 선생님이 작곡한 노래입니다. 이 노래도 김동호 선생님이 젊은 시절에 쓴 노래입니다. 당시 가사를 쓴 정경을 묘사한 몇구절이 있습니다. 소개해 드릴까요 .

사회자: 네.

석화: "필자가 대학생활을 하던 1950년대 중반이었다. 하루는 내가 고향 평강벌에 나가 산책하다가 벼파도 넘실대는 무연한 논벌을 바라보고있노라니 떠오르는 시상을 걷잡을수 없었다. 눈이 모자라게 펼쳐진 아득한 벌판, 불어예는 금풍에 넘실 춤추는 벼파도… 그 감흥을 한수의 서정시로 엮어보고 싶었다. 수첩을 펼쳐들고 평강벌의 해란강 강뚝에 앉아 시상을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쓴 시의 첫 구절입니다. "여기는 내 고향 / 바다는 멀어도 / 파도치는 푸른 바다 / 부럽지 않노라". "이렇게 첫구절을 떼고 보니 서정시, 랑송시로 쓰기보다 가사로 쓰면 곡이 붙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가사로 바꿨다"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회자: 그렇군요.

석화: 그래서 이 부분이 이렇게 바뀌어집니다. "여기는 내 고향 바다가 멀어도 / 파도치는 푸른 바다 부럽지 않다네 / 해마다 단풍드는 구시월이면 / 우리의 구술땀 스며베인 옥토벌에 / 금빛파도 출렁이는 황금바다 생긴다네…"이런 내용인데요. 이 노래 가사도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고향생각"이라는 노래를 들어본적이 있지요.

사회자: 그렇지요. 지난 시간에 "고향생각"이라는 노래를 소개해드렸잖아요.

[노래 – "고향생각" 1절 깔며]

석화: 김인준 작사, 허세록 작곡의 "고향생각". 이 노래의 포인트가 뭐라고 했지요? "남쪽 바다의 야자나무와 북쪽의 함박꽃", 거리감이라고 했잖아요. 수천수만리의 거리감이, 이런 공간의 차이로 그리움이 생기고 감동이 생긴다는 얘기가 되지요.

사회자: 그렇습니다.

석화: 이 노래 가사도 바로 "푸른 논벌"에서 바다를 그려본 것이지요. 시골에는 바다가 없잖아요. 그리고 방금 얘기한 것처럼 처음에는 여름이었거든요. 여름방학이라고 했지요. 상상의 나래를 펼쳐 황금나락, 금빛파도로 넘어갑니다.

사회자: 가을로 넘어갔네요.

석화: 젊은 시인이, 당시 대학생이었지요. 김동호 선생님이 20세 정도의 학생, 젊은 시인의 머리속에 벌써 생각이 나래쳤습니다. 폭이 넓고 아름다운 장면이 이뤄졌습니다. 이렇게 한수의 작품에 횡적, 종적으로 되는 설계가 깔려있기때문에 명작품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사회자: 그렇습니다.

석화: 이 노래 가사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20대 초반의 젊은 대학생이 쓴 것이라고 했지요. 작곡가 역시 김동호 선생님과 비슷한 연배의 당시 20대 초반의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사회자: 김덕균 선생님요.

석화: 네. 그 분이 이 노래 가사를 받고 곡을 쓰게 된 에피소드, 창작담이 있습니다. 함께 볼까요.

사회자: 네.

석화: 김덕균 선생님의 회고록입니다. "이 작품은 1957년에 작곡한 노래입니다. 제가 1957년도에 연변 예술학교에 입학했는데…" 역시 학생이지요.

사회자: 학생이네요.

석화: 김동호 선생님은 연변대학이고… "개학이 10울이기때문에 동불사에 있는 외가집에 가서 개학할때를 기다리다가 이 가사를 받았습니다…

사회자: 역시 방학입니다.

석화: 방학에 큰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가사가 "내 고향의 금파도"니깐 벌판에 나가서 작곡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논밭에 나갔습니다…"

사회자: 직접 현장에 나갔습니다.

석화: 그렇지요. "처음의 착상은 리듬이 먼저였고 이 리듬에 선률을 붙여서 발전시켰습니다. 처음 4분의 4박자로 시작하였다가 중간의 세번째 악구와 네번째 악구를 4분의 2로 바꾸고… 이것은 금파도가 설렐때 기쁜 심정을 표현하였습니다." 4분의 4박자가 4분의 2박자로 바뀌면…

사회자: 좀 더 빨라지죠.

석화: 그렇지요. " 또 다시 4분의 4가 되어 금파도가 넘실거리는 느긋한 형상을 나타냈습니다…"

사회자: 참 재미있습니다. 작곡가 김덕균 선생님의 고향은 용정이네요.

석화: 그렇지요. 1937년에 용정 길성촌에서 출생해 1949년 연변사범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항상 음악과 떨어질수 없지요. 그리고 재학시절에 허세록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음악적인 꿈을 키웠고. 1955년에 연변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서란현 평안조선족소학교와 서란조선족중학교에서 음악교원으로 교편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1957년에 다시 연변예술학교에 입학하여 작곡학부에서 본격적으로 작곡공부를 하게 됩니다. 1960년 7월에 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편을 잡고 1980년 12월부터 연길시소년궁전 문예부 주임을 맡았고 1984년부터 연변군중예술관 관장을 맡았습니다. 김덕균 선생님은 음악사에서 큰 업작을 쌓으신 분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아까 말씀드린 대학생들,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 여름방학에 만나서 이런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었다는 것은…

사회자: 참 지금은 상상이 안됩니다.

석화: 네~ 그러니까요. 이런 노래, 대학생들이 만든 노래가 지금 명곡이 되어 길이 불러지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사회자: 김덕균 선생님은 가요창작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잖아요. 작품들이 참 많은데요. 아동가요도 많이 창작했잖아요.

석화: 네. 아동가요도 많고… "전사의 미혼처 노래 부르네"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것도 아마 김동호 선생님과 같이 쓴것일거예요. 이외 많은 작품들이 있고. 특히 김덕균 선생님은 음악지식, 보급, 음악 이론 교육 등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가요창작지식", "음악교수법", "중국조선민족예술교육사", "음악기초지식", "음악사전", "조선민족음악가사전" 등 많은 책을 저술하셨습니다.

사회자: 네. 제가 알고 있는 유명한 동요들도 참 많네요. "반디불", "똑또르르", "꽃피는 내 나라"…

석화: 그렇지요.

[노래 "반디불" 깔며]

사회자: "반디불"은 요즘 어린이들도 말문만 트면 배우는 노래가 아닙니까.

석화: 그렇지요. 참 유명한 노래지요.

그후에 "김덕균작곡집"을 출간했습니다. 참 많은 일들을 하셨지요. 김동호 선생님 작사, 김덕균 선생님 작곡… 노래를 들을때마다 참 그립고… 굉장히 멋쟁이고 술도 잘 마시는 분들이예요.(함께 웃음)

사회자: 네. 젊음의 상상과 낭만이 너울져 설레는 고향찬가 "내 고향 금파도", 시인 김동호 작사, 작곡가 김덕균 선생님이 창작한 노래 - "노 고향 금파도", 노래 보내드립니다.

석화: 네.

[노래 – "내 고향 금파도" 끝까지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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