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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4-yy.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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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4일 중국음악 방송분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국음악에서 인사드리는 임봉해입니다.
얼마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 도시설계 사업소에서 근무하시는 변혜란 청취자가 보내온 편지를 받았습니다.
저희 중국음악 프로를 청취하시고 소감을 적어주셨는데요.
읽어드리겠습니다.
"조선어부 선생님들에게 드립니다.
그간 안녕하십니까? 무더운 날씨에도 방송사업을 위해 헌신하고 계실 선생님들을 그리며 다시 펜을 들었습니다. 한해 치고도 제일 무더운 삼복기간, 섭시 30도이상의 고온과 높은 습도가 계속되고 소나기를 품은 날씨로 숨이 꽉 막힐 지경입니다. 그러나 이 무더위속에서도 저는 저녁시간이면 어김없이 귀방송을 듣고 있습니다. 전번 편지를 보낸지 얼마되지 않아 이렇게 또 다시 소식을 전하게 되는것은 8월 10일에 들은 내용이 아주 인상적이였기때문입니다. 특히 부부를 화재로 한 노래와 이야기가 가슴에 닿습니다.
'알콩달콩하면서도 아웅다웅하고 누구보다도 너그러운 상대이면서도 야속한 존재', '부부는 마주보는 거울과 같다', '부부는 평행선과 같다'등은 부부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파장장애로 음절은 깨끗하지 못했지만 '부부사이는 춘하추동'이라는 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프로였습니다. 부부가 다정하고 가정이 화목하며 사회의 세포를 이루는 모든 가정이 공고할때 부강조국건설이 더욱 앞당겨질것이 아니겠습니까.
믿음이 없는데서 부부의 정이 생길수 없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없이 희생정신이 나올수 없다고 봅니다. 언젠가 귀방송에서 이혼의 첫째가는 피해자는 그 자식들이라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자식들을 가진 어머니로써 이혼의 재해속에 버림받는 아이들 생각만해도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나라에도 행복한 부부를 형상한 노래들이 많습니다. 특히 '우리집사람'은 남녀로소 모두가 즐겨부르는 노래입니다. 귀방송에 이 노래자료가 있으면 방송으로 꼭 들려주었으면 합니다. 청취자 모두가 알게 하고 싶은 노래입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그칩니다.
부디 건강한 몸으로 이 좋은 프로들을 방송해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2013년 8월 13일 변혜란 올림
변혜란 청취자님 무더운 여름날에도 우리 방송프로를 애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부부를 형상하는 노래 '우리집사람'을 요청하셨는데요. 아쉽게도 저희들 노래자료에 이 노래가 없네요. 다음에 기회되면 꼭 이 노래를 찾아 들려드리겠습니다.
오는 19일은 추석인데요. 온 집안의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웃음소리, '우리엄마 기쁘게 한번 웃으며'를 대신 보내드리겠습니다.
이 노래를 감상하시면서 우리 모두 환하게 한번 웃을수 있길 바랍니다.
[노래 – '우리 엄마 기쁘게 한번 웃으며']
2'09"
중국음악, 오늘은 조선 평양에서 보내주신 변혜란 청취자님의 편지사연으로 프로를 시작했습니다.
청취자분들의 편지를 받아보는 순간은 저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요즘 시원한 가을의 파아랗고 높은 하늘처럼 말입니다.
노래 '하늘처럼'을 보내드립니다.
홍용암 작사, 김창근 작곡, 박홍철, 김청이 부릅니다.
[노래 2'33"]
오는 19일은 중추절, 즉 추석입니다.
한가족이 단란히 모여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을 즐길수 있는 의미있는 명절 - 추석, 둥근 달을 바라보며 가족을 생각하고 달 노래를 들으면서 가족을 그리워합니다.
달과 관련된 노래 두곡을 준비했습니다.
치친이 부른 "달은 내 마음을 대표하네"에 이어 유환이 부른 "쪼각 달"을 보내드립니다.
[노래 '月亮代表我的心' '弯弯的月亮']
[노래에 깃든 이야기] - "내 고향 오솔길"
18'35"
[노래 "내 고향 오솔길" 깔며]
사회자: 오늘 역시 석화 선생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석화: 안녕하세요.
사회자: 반갑습니다. 오늘은 어떤 노래 준비하셨습니까.
석화: "내 고향 오솔길" 엄청난 노래입니다.
사회자: 그렇지요.
석화: 기억나시죠 멜로디…
사회자: 그럼요. 가사는 이러합니다.
"곱게 핀 함박꽃 반겨웃는 산기슭에
안개 타고 내렸나 숲속에 숨었나
산나물 돋아나는 오솔길은 걷기 좋아
포동진 애고사리 손잡고 놓질 않네
음 아, 내 고향 오솔길은 걷기도 좋네"
석화: 네. "내 고향 오솔길"입니다.
[노래 끝까지]
석화: 네. 이 노래는 최삼명 선생님이 창작한 대표곡입니다. 하지만 이 노래는 가수, 한국화란 이름과 떨어질수 없는 노래입니다.
사회자: 그렇지요.
석화: 한국화 하면 어느날 하나의 별처럼 갑자기 떠올라 찬란한 빛을 보인 가수입니다. 그 부분을 소개해드릴가요.
사회자: 네.
석화: "한잠 자고 깨여 일어나보니 어느사이 스타가 되여있고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여있더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수나 탤런트 또는 화가나 작가와 같이 문학예술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가운데서 가끔씩 일어나는 현상인데요. 어떤 특별한 작품으로 삽시간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대중들에 의하여 곧바로 스타덤에 오르는 경우를 가리켜 하는 말입니다. 한국화 가수가 바로 이러합니다. 그 당시 80년도에 창작되었는데요. 당시 연변 가무단은 각 현시 순회공연이 있는데 순회공연에서 연변가무단이 온다고 하면 화룡에서는 그런 현상이 나타났답니다. 거의 절반 관객은 한국화 가수를 보러 왔다고 합니다. 매표공연에서 표값의 절반은 한국화 가수가 벌어들인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한국화가 이 노래를 불러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사회자: 그렇지요.
석화: 70년대를 지나 80년대에 접어들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 그런 부분에서 수년간 메말랐던 땅에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분다던가, 한줄기 시원한 샘물이 흘러온다던가 하는 식으로 표현이 됩니다. 한국화 가수의 감미로운 목소리, 그리고 가사의 아름다운 구절, 특히는 최삼명 선생님의 멋있는 음악, 선률, 이 모든것이 조합되었습니다. 시대적인 요청, 가수의 특점, 작사작곡자의 모든 부분들이 하나로 모아져 "내 고향 오솔길"이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입니다. 그 당시에는 우리 동네에는 "내 고향 오솔길"밖에 없었습니다. 방송에서 이 노래가 나오고 결혼집에도 나오고 회갑집에도 나오고…
사회자: 그만큼 여러사람들이 널리 불렀고 사랑받은 곡입니다.
석화: 이런 부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창작자, 최삼명 선생님이 이 창작을 어떻게 이루어내었는가 하는 부분에서 우리가 노래를 부르면 즐거워하고 노래를 들으면 즐거워하는 속에서 창작자의 고민은 그만큼 깊은 것입니다. 우리말에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산이 크면 그림자가 크다"라는 말처럼 어떤 성과를 이루었을때 그 성과의 반대부수적인면도 엄청 크다는 것입니다. 이 노래가 80년대를 시작하면서 70년대를 떠나보내는, 70년대는 문화대혁명 시대를 떠나보내면서 개혁개방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첫 아침, 그리고 첫 물결 등 이런 부분에서 참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여기에 최삼명 선생이 이 작품을 쓰고 창작조로서의 깊은 고민을 토로한 부분이 있습니다. "문학과 예술"이라는 잡지가 있는데 1987년도 어느 잡지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 부분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글은 이렇게 썼습니다. "근래에 최삼명선생이 '색다른 가요' 몇수를 세상에 내놓은탓으로 음악계 일부 사람들의 뒤공론을 듣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나는 선생의 말을 들어보려고 그를 찾았다"… 얼마나 살벌한가요. 좋은 노래를 만들었는데 뒤공론을 듣고 있으니까 "문학과 예술" 잡지를 꾸리는 기자가 최삼명 선생님을 찾았갔습니다. 이렇게 시작을 떼고 작곡가에게 몇가지 질문을 하고 그에 답하는 형식으로 글이 씌여졌습니다.
사회자: 제가 기자역을 할까요?
석화: 아니예요. 제가 할게요.(웃음)
질문1: 시대와 가요의 주인인 대중들의 미학관념의 변화의 관계에 대해 작곡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 사람들의 미학관념은 시기에 따라 변할수 있는데 사람들의 미학관념이 변할수 있는 충분한 계기가 주어진 그때마다 대중들이 즐겨부르는 노래가 따로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해방초기엔 "농민의 노래"거나 "좋은 종자 가려내세"와 같은 신민요풍격의 노래를 즐겼는가 하면 건국초기엔 "아름다운 내 고향"이거나 "고향산기슭에서"와 같은 서정성이 짙은 노래를 즐겼습니다. 그 원인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람들에겐 새로운 미학적요구가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음악에서는 선률, 절주, 조식에서 나타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질문2: 음악창작에서의 전통에 대한 계승과 혁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 우리는 민족음악유산에 대한 효자현손으로 되여야 할뿐만아니라 무정한 반역자로 될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 반역자가 되는 목적은 효자현손질을 더욱 잘하기 위함입니다. 일부 중청년작곡가들이 자기의 민족음악바탕에 대하여서는 "백지"나 다름없으면서도 아프리카나 인도 등 외국음악을 모방하면서 거기서 "2분휴지부의 사용창시자"인듯 자기를 내세워보기도 하고 또는 민족바탕을 조금 떠나 약간만 색다른것이 들어오기만 하면 "이것은 우리의것이 아니다"라고 대성질호하면서 "아무리 창작해봤댔자 민요나 판소리를 초과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작법들은 모두 우리 조선족음악을 외곬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질문3: 그럼 우리 작곡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 시대를 정시한 토대우에서 우리의 전통과 외래의 사조를 많이 학습해야 하고 대중들의 미학요구의 변화에 대하여 사색해야 하며 새로운 것은 탐구해야 합니다. 이 새로운것이란 전통에 대한 반복이 되지 말아야 할것은 물론 남의것에 대한 모방도 되지 말아야 합니다. 실로 우리의것이면서도 그전에 들어보지 못하던 참신한것이여야 하고 남의 것 같으면서도 우리의 맥박이 뛰게 해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 시대적사명을 띤 우리 작곡가들의 노력이 경주되여야 할것입니다.
석화: 그러면서 최삼명선생님은 이 노래 "내 고향 오솔길"을 창작하면서 얻은 소감을 아래와 같은 세가지로 귀납했습니다. 그 부분을 부탁합니다.
사회자: 네. 첫째, 창작에서 코기러기가 된다는것은 모험을 동반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시비와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히 새로운것에 도전해야 합니다.
둘째, 반드시 민족의 심미리상을 반영한 가곡을 창작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민족 정서와 정감에 바탕을 두어 창작해야 합니다.
셋째, 시대정신과 결합된 가곡을 창작해야 민족의 계선을 넘어 모두가 좋아하는 가곡을 창작해낼수 있습니다. 시대를 외면한 가곡은 관중이 먼저 알아보고 거부합니다.
석화: 모든 창작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둘째 민족심리, 그리고 계선을 넘어 창작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수 있다고 귀납했습니다.
사회자: 최삼명 선생님의 대표곡 "내 고향 오솔길"을 보내드립니다. 함께 감상하시죠.
[노래 끝까지]
어느덧 작별인사를 나눌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애청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진행에 임봉해였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