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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역사의 수수께끼를 풀어 가는 고고학자 김창주
2014-01-07 11:39:59 cri






진행자 인사말

이 시간에는 먼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소식을 전해드린다

[연변경관문화우표수집전람회 9일~15일 연길서]

연변인터넷방송에 따르면 연변경관문화우표수집전람회가 오는 9일부터 15일까지 연변에서 열립니다.

현재 연변주에 우표수집애호가가 2만여명 있는데 그가운데 연길시 우표수집애호가만 근 만명에 달합니다.

학생들의 과외생활을 풍부히 하고 우표수집을 통해 역사문화지식과 과학문화지식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하며 청소년들의 흥취와 애호를 양성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연변경관문화전파유한회사와 주우표수집협회가 공동으로 우표수집전람회를 조직하게 됐습니다.

주우표수집협회 동욱신 상무부회장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우표수집전람은 내용이 풍부하고 다채롭습니다. 공업, 농업, 과학기술 등 방면의 전시품들이 아주 많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알려주고 그들의 흥취와 애호를 키우는면에서 좋은 효과를 거둘것으로 보고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연변주 우표수집협회 손홍발 상무이사의 소개에 따르면 전람회에서 28개 부류의 작품을 52개 액틀에 전시하는데 전국우표수집 3등상, 길림성우표수집금상과 은상 등 수상작품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차와 자전거, 승용차계렬에서 작품마다 각종 문화와 과학, 인문지리와 자연풍경을 그려냈습니다. 청소년류에서는 동년의 꿈과 중국역사를 우표로 나타냈습니다.

이번 전람회는 주로 연길시 우표수집애호가들이 소장한 작품들로 꾸미게 됩니다.

주최측에서는 우표수집협회 평심위원을 초청해 애호가들이 수장한 작품을 감정하고 평의하며 전람회를 찾는 청소년들에게는 기념우표도 발급하게 됩니다.

[화룡시 특색농업 발전에 총력]

연변인터넷방송에 따르면 화룡시에서 특색농업 발전에 총력을 기울여 좋은 효과를 보고있습니다.

다종경영을 적극 추진해 농민들의 수익증대를 이끌었습니다. 지난해 전시 농작물 파종면적 2만9000 헥타르 가운데 고수익 공예작물 재배면적이 1만6000 헥타르를 넘겨 반수이상을 차지했습니다.

화룡시 두도진 삼하촌의 온부 촌민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전에 오이, 고추 등 채소만 심다가 지금은 포도와 딸기도 재배하고 있습니다. 두 개 비닐하우스가 있는데 비닐하우스 한 개당 일년에 인민폐 3만원에서 4만원 정도의 수익을 낼수 있다"라고 소개했습니다.

지난해 화룡시 농업 총생산액은 인민폐13억원으로 동기대비 5% 증가했고 농민 일인당 순수입은 8,100원에 달해 전해에 비해 19% 늘어났습니다.

농민들의 자금난도 적극 해결했습니다. 지난해 화룡시 농촌신용합작사연합사 누계 대출금액은 8억원을 웃돌았는데 농민들과 농업 선두기업을 대상한 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우대정책 시달과 자금부축에 힘입어 지난 한해 화룡시에는 주급이상 특색산업 선두기업이 8개, 전문농장이 20여개, 전문합작사가 70여개 새로 증가됐습니다.

새해 화룡시에서는 기존 특색산업 규모를 한층 발전시킴과 아울러 인삼, 오미자 등 보건식품산업 실력을 제고하고 유기록색식품 산업단지 건설을 다그치며 농경생활 체험관광 등 생태관광을 적극 추진하는 등 생태경제 발전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입니다.

[조선피바다가무단 빙설축제에 가무공연 선보인다]

연변일보에 따르면 "2013길림.연길 장백산국제빙설축제"의 열기를 더하기 위해 조선피바다가무단이 기존의 프로그램을 새롭게 편성하여 빙설축제기간 외지관광객들과 연길시민들에게 색다른 민족풍정가무를 선사하게 된다.

"천지신화"는 조선피바다가무단 47명 무용수가 1년반간의 시간을 들여 창작한 무용모음곡이며 가면무용, 도라지타령 등 민족풍정이 다분한 예술형식으로 조선족인민들의 생활하는 모습을 다양하게 표현했다.

피바다가무단은 600여명 최고수준의 예술가로 구성되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을 수여받았다. 가무단은 중국을 포함한 아세아, 유럽, 아프리카의 40여개 나라에서 공연했다.

또한 중국 고전명작 "홍루몽", "량산백과 축영대"(梁祝) 등 우수작품을 가극무대에 올려 국내외관중들의 열렬한 절찬을 받았다. 2013길림.연길 장백산국제빙설축제기간 "천지신화"는 매일 저녁 19시에 공연한다.

[연변위성TV, 정률성 일대기 다큐멘터리 제작방송]

연변일보에 따르면 연변위성TV방송국에서 2014년 정률성 탄생 100돐을 계기로 정률성의 일대기를 다룬 4부작 다큐멘터리 "민족의 얼을 담은 멜로디"(감독 김광현,극본 리혜선, 촬영 량성철, 강용)를 제작, 방송했다.

작곡가 정률성(1914―1976)은 격동의 시대를 거창한 악장에 담아낸 위대한 작곡가로서 조선민족과 중국 음악예술의 전당에 빛나는 이름을 새겨놓은 걸출한 예술가이며 섭이, 선성해와 더불어 새 중국의 3대 악성으로 불리운다.

특히 정률성은 두 나라의 군가를 지어 국내외 음악사상 유례없는 기록을 남긴 작곡가로 일생동안 397수(편)의 음악작품을 창작하였는데 "연안송"(1938), "중국인민해방군군가(원 팔로군행진곡)"(1939), "조선인민군 행진곡"(1948) 등 명곡들은 20세기 조선족은 물론 중국 음악사에 빛나는 위치를 자리매김하고있다.

다큐멘터리제작팀은 역사의 진실을 발굴하기 위해 정률성의 고향 한국 전라남도 광주광역시에 가서 정률성이 생활했던 곳을 답사하였으며 많은 증인들을 만났다.

또 중국 상해, 남경, 연안, 서안, 태항산, 베이징 등지의 생전에 생활하고 싸웠던 전적지를 답사하면서 생생한 역사화면을 재생하였다. 다큐멘터리 제1부는 정률성이 태여나서부터 19살 어린 나이에 독립의 길을 따라 중국으로 이주하기까지 과정을 담고있다.

정률성(본명 부은, 富恩)은 1914년 8월 13일(음력 7월 7일) 한국 전라남도 광주시 양림동의 항일세가에서 태여났다. 정률성은 어린 시절부터 중국으로 망명한 둘째형이 남겨놓고 간 만돌린을 타며 음악과 접촉하기 시작했으며 외삼촌 최홍종의 축음기를 통해 슈만의 "환상곡" 등 세계명곡과 접촉하게 되였다. 1933년 봄, 정률성은 중국에 망명한 셋째형과 함께 고향을 등지고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다큐멘터리 제2부는 정률성이 망명하여서부터 1937년말 왜적의 첩첩한 봉쇄망을 뚫고 혁명성지 연안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었다. 정률성은 중국에 도착한후 의렬단 비밀활동을 하는 한편 조직의 배려로 매주 한번씩 수백리 떨어진 상해를 오가며 레닌그라드의 유명한 음악가인 쏘련교수 끄릴노와문하에서 성악공부를 시작하였다.

다큐멘터리 "정률성" 제3부는 정률성이 연안에 도착하여서부터 1945년 사업의 수요로 조선에 나가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1938년 5월 정률성은 연안 로신예술학원에 들어가 근 4개월 공부하였다.

이 시기 정률성은 혁명성지 연안에 대한 뜨거운 격정을 쏟아부어 혁명송가 "연안송"을 작곡하였다. 1939년 12월 정률성은 당조직의 결정에 의하여 로신예술학원 음악학부에서 성악을 가르치면서 영용한 팔로군장병들을 노래한 "팔로군대합창(중국인민해방군 군가)"을 창작하였다.

1945년 정률성은 광복을 맞은후 조직의 배치에 따라 조선에 나가게 되였고 1947년에는 조선인민군협주단을 창설하고 "조선인민군행진곡"을 창작하였다.

다큐멘터리 "정률성" 제4부는 정률성이 1950년에 귀국한후 1976년 12월 62세를 일기로 뇌출혈로 사망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있다.

4부작 다큐멘터리 "정률성"은 새해 1월에 재방송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연변소식을 전해드렸다. 노래 한곡

[감동중국 조선족걸출인물]-인류역사의 수수께끼를 풀어 가는 고고학자 김창주

MC:안녕하십니까?세계 3대 수수께끼중 하나가 바로 인류의 기원인데요,오랜 세월 인류는 자기의 기원, 진화과정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끊임없는 탐구의 길을 걸어왔습니다.이 가운데는 화석을 통해 그 수수께끼를 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200만년전의 인류생존의 흔적을 발견하고 11만년전의 초기현대인(早期智人) 하악골 화석을 발견해 세계 고고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중국과학원 고척추동물 및 고인류연구소 김창주 연구원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본방송국 강옥기자와 함께 <<감동중국 조선족걸출인물>>-인류사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고고학자 김창주연구원의 이야기를 전해듣도록 하겠습니다. 강옥기자,어서오세요.

강:안녕하세요?강옥입니다.

MC: 고고학이라 하면 적잖은 사람들은 딱딱하고 페쇄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조선족 고고학자로 학계는 물론 세계를 들썽이는 이변을 거듭해 중국 조선족을 빛낸 김창주 연구원은 구경 어떤 분인지 궁금합니다.

강:제가 김창주연구원의 사무실을 찾았을때는 마침 그가 광서에서 야외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였습니다.화석을 둘러싸고 동료들과 담소하는 김창주연구원은 예지로 차넘치는 눈매를 소유한 자상한 대학교수 인상이였습니다.김창주연구원의 어릴적 꿈 역시 무선전을 연구하는 학자로 고고학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하는데요.세기를 넘나드는 화석들로 가득 찬 사무실을 둘러보면서 고고학자의 길은 우연처럼 다가온 숙명이였다는 그의 말에 공감을 가져봤습니다.

MC:무선전을 연구하는 학자가 꿈이였다는 김창주연구원이 고고학자로 명성을 떨치기까지 어떤 우연과 인연들이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강:어릴적부터 공부를 잘했던 김창주 연구원은1973년,장춘지질학원 지질학부에 입학했습니다.지질학에 대한 요해라고는 어릴적 친구들과 함께 뱀잡으로 뒤산에 갔다가 지질탐사대원들을 본 기억이 전부였다는 김창주연구원은 이렇게 우연하게 생판 낯선 학문과 연을 맺게 됐습니다.김창주 연구원의 말씀 한번 들어보시지요?

(음향1-김창주)

"지질학이 무슨 학문인지 전혀 몰랐지요.학교에 와서야 이런 학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차츰 배우면서 지구가 어떻게 형성되고 지구력사에 대해서는 지질학이 가장 잘 해명할수 있는 과학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강: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김창주연구원은 중국과학원 고척추동물 및 고인류연구소에 배치받게 되였습니다. 80여년의 력사를 갖고 있는 중국과학원 고척추동물 및 고인류 연구소는 우리 나라에서 력사가 가장 오랜 연구소로서 세계에서 고척추동물을 연구하는 유일한 연구소이기도 합니다.

MC:지질학의 한개 작은 분야인 고생물과, 그 가운데 척추류 생물연구, 20대의 피끓는 청춘이 많은 이들은 들어보지도 못한 학문연구에 종사하게 됐는데 고민도,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였을 같습니다.고고학자의 삶은 현대인의 폼나는 인생과는 거리가 먼 지루하고 위험하며 고달픈 외곬 인생길이 아닐가 싶은데요, 진귀한 화석을 찾으려면 늘 인적없는 두메산골로 들어가야 하지 않습니까?이런 고생은 아무나 감내할수 있는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강:그렇습니다.요즘도 김창주 연구원의 등에는 늘 묵직한 배낭이 따라 다닙니다.대학교수 차림의 멋진 코트에 어덴가는 어울리지 않는듯한 야외용 배낭이 그를 수십년간 따라다닌 친구이자 그의 보물고입니다. 거의 매일 흙먼지와 씨름하고 모기에게 뜯기는 렬악한 환경이 그를 기다리고 있지만김창주연구원은 화석에 반해 울고 웃습니다.

(음향2-김창주)

"야외답사에서 사람을 가장 격동시킬때는 새로운 표본을 발견하고 그 표본이 어떤 자연과학가치가 있는가를 알게 됐을때 입니다.굉장히 흥분되고 자기 스스로도 자기사업에 대한 긍지감에 부풉니다."

MC: 조선족 고고학자로 김창주연구원은 여러번 세계를 들썽이게 하는 발견으로 고고학계의 주목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강:네, 20세기 80년대부터 인류학연구가 중요한 연구대상으로 되어 인기를 끌면서 우리 나라 인류기원연구도 급물살을 타게 되였습니다. 1998년 봄, 김창주연구원은 중국과학원 안휘 고생물 조사단을 인솔하여 안휘성 번창현(繁昌县)에 내려갔습니다. 번창현의 채석장에서 발견된 동굴에는 오랜 퇴적물이 쌓여있었는데요,퇴적물은 신기하게도 사람 인(人)자 모양을 만들고 있었습니다.이때 인자동(人字洞)이라고 작명된 이 동굴에서 김창주연구원은 수백점의 선사시대 고대인류가 쓰던 석기(石器)들을 발견했습니다.뿐만아니라 검치호(剑齿虎),참대곰,중화유치코끼리(中华乳齿象),하이에나(鬣狗) 등 동물을 비롯한 약 80여종의 원시적인 포유동물 화석들을 발견했습니다.아프리카에서 가장 일찍 발견된 석기의 년대가 240만년 전인데 인자동에서 발견한 석기도 년대 측정에 의해 240~200만년전의 것이라는것이 검증되였습니다.이는 200만년전에 중국 장강류역에서도 고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는 확실한 고고학적 증거를 제공했습니다. 김창주연구원입니다.

(음향3-김창주)

"260-200만년사이 고대 인류가 활동했던 유적지가 발견되였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이른 고대인류의 유적지를 발견하고 이에 따라 우리 선조의 시초점을 찾았을때 나도 인류의 기원에 대해 공헌했다는 생각에 자랑스러웠습니다."

강:이렇게 세계 고고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김창주연구원은 또 한번의 가치있는 발견으로 고고학계의 중심에 서게 됐습니다.현재 세계 고고학계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과제의 하나가 현대인(智人:Homo sapiens)의 기원입니다.현대인의 기원과 발전에 대해 학계에는 두가지 부동한 설이 있는데요.하나는 전 세계의 현대인들은 모두 20만년 전에서 10만년전 사이에 아프리카에서 기원했으며 그후 약 6만년 전에 아프리카대륙을 떠나 아세아대륙으로 이동해 왔는데 지금 유라시아대륙에서 살고 있는 아세아인들은 모두 아프리카에서 이동해 온 초기현대인(早期智人)의 직접적 후손이라는 주장입니다.다른 한 주장으로 중국에서는 북경원인(北京猿人),남경원인(南京猿人),화현원인(和县猿人)으로부터 점차 련속적인 진화과정을 거쳐 현대중국인으로 됐다는 본지기원설(多地区起源论)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2004년부터 김창주연구원은 중국과학원 거원(巨猿) 화석 조사단을 이끌고 우리 나라의 제일 남쪽끝에 있는 광서숭좌(广西崇左)지역에서 고대인류 및 고생물 조사를 했습니다.

2008년 5월, 김창주연구원이 인솔한 고고학 발굴팀은 광서숭좌(广西崇左) 지인동(智人洞)에서 초기 현대인(智人)의 하악골을 발견했습니다. 약 11만년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하악골의 형태로부터 원시인(猿人)이 현대인(智人)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알수 있습니다.이는 11만년전에 벌써 동남 아세아에서 초기 현대인들이 살고 있었다는 학설에 확실한 증거를 제공해 주었습니다.김창주 연구원입니다.

(음향4-김창주)

"중국사람들이 이땅에서 북경원인에서 진화돼 왔다는 것을 증명할 증거가 그전에는 결핍했습니다.광서 목람산 지인동에서 발견한 하악골이 이 학설의 유일한 지지로 됐습니다. 11만년전에 벌써 이곳에서 초기 현대인들이 살고 있었다는 학설의 큰 뒤받침으로 됐습니다.이것을 보면서 학술계에서는 중국사람들은 북경원인으로부터 점차 현대인으로 진화됐다는 학설을 굳게 믿게 됐습니다."

강:2009년 10월 27일,광서쫭족자치구에서 세계 14개 나라와 지구에서 온 유명한 학자들이 참가한 "광서숭좌 유적지답사와 지인동 하악골화석발굴 국제학술회의"가 열렸습니다.그때 그 희열을 김창주연구원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음향5-김창주)

"소식공개회에서 세계 각국 학자들이 모두 유적지에 모여 현대인의 기원에 대해 토론할 때 중국도 인류기원연구의 중심지로 되여 최첨단에서 인류의 기원을 탐구하는것이 자랑스럽고 이것이 제가 평생 탐구해야 할 학문이라고 가슴깊이 느꼈습니다."

강:김창주연구원의 이 발견은 2010년 우주비행,나노(纳米) 등 분야와 더불어 중국 기초과학계 10대 중요성과로 평가받았습니다.

MC:참으로 대단합니다.듣는 저희들도 가슴이 벅차오르네요,하지만 화석채집을 위주로 하는 고고학 연구성과의 뒤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 않겠습니까?생명을 담보로 하는 사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강:그렇습니다.화석채집을 하면서 김창주연구원은 생사를 넘나든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한번은 인자동 유적지에서7-8메터 높이의 벼랑에 매달려 화석을 채집하던 김창주연구원은 낭떠러지로 떨어졌습니다. 한참이나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그를 보면서 동행했던 젊은 동료는 그가 잘못된줄 알고 통곡했습니다. 한참만에 겨우 정신을 차린 김창주연구원은 자기 손부터 살펴보았습니다.김창주연구원입니다.

(음향6-김창주)

"화석을 채집하면서 동물의 하악골을 쥐고 떨어졌던 기억이 있는데 눈을 뜨자마자 그 화석이 손에 쥐여있는가를 보던 일이 지금도 가끔 생각납니다. 손에 화석이 쥐여있는걸 보고 얼마나 다행스럽던지...이걸 놓쳤더라면 얼마나 후회했을가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

강:다행히 생명위험은 없었지만 김창주연구원은 두팔을 모두 상해 수개월간 병원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MC:정말로 화석에 푹 빠진 천상 고고학자가 아닐가 싶습니다.자신의 생명보다도 화석이 우선이라는 고고학자 남편,고고학자 아버지를 둔 가족들의 심정은 어땠을가는 생각이 듭니다.

강:김창주연구원은 자신이 화석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삶의 희열을 느끼고 수많은 영예를 따낼수 있었던것은 언제나 말없이 그의 뒤에서 응원해주고 가정의 모든 짊을 혼자서 도맡은 든든한 버팀목-안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고중 수학교원이였던 그의 안해 신옥선씨는 남편의 사업을 위해 정든 교단을 떠나 연구소에 왔습니다.신옥선씨입니다.

(음향7-신옥선)

"모두 왜 유별난 남편을 만나 고생이냐고 하는데 저는 그것도 한가지 기쁨이라 생각합니다. 남들 다 가는 려행 한번 같이 못가고, 한평생 그런 멋이 없습니다. 생명도 위험하고 지루하기도 하지만 본인이 좋아하고 성과도 나니까 지지해야지요."

MC:성공한 남편뒤에는 현숙한 안해가 있다는 말이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같습니다.

강: 그렇죠.1991년부터 김창주연구원은 일본 오사까시립대학 리학부대학원 지구과학 환경지질학부에서 고고학 박사과정을 밟았습니다.국가에서 발급하는 장학금은 숙식을 해결하기에도 빠듯한 상황이라 집안의 중임은 모두 안해가 떠안아야 했습니다. 일본에서 5-6년간 돈벌이를 하면 돌아와 사업꽤나 크게 벌릴수 있었던 세월이였습니다.많은 사람들이 전업을 포기하고 돈벌이에 나서는것을 보고 김창주 연구원도 마음의 갈등을 겪었습니다.김창주연구원입니다.

(음향8- 김창주)

"그때 집에 편지를 썼습니다.학위를 요구하냐,돈을 요구하냐구요.그때 박사학위를 꼭 받고 오라던 안해의 편지가 인상이 깊습니다.그때 전업기초가 닦여지고 한평생 사업에 영향을 줬습니다.지금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강:특히 2011년, 일본 유명대학인 교토대학에서 김창주연구원을 외국인교수로 초빙했는데요,20년전 어려운 형편에서 박사학위를 마쳤던 가난한 선비가 그때 배워간 지식을 토대로 일본땅에서 강의를 할수 있게 돼 감개무량했다고 합니다.

MC:안해의 희생이 크게 빛을 발하는 순간이였네요, 참으로 가슴이 훈훈해 지는 이야기입니다.

강:이런 지지가 있기에 이제 정년퇴직을 앞둔 나이에도 김창주연구원은 요즘도 광서 목람산부근의 동굴을 오르내리며 흙먼지와 씨름하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현대생활이 생소하기도 하다는 김창주연구원은 사무실에서 표본을 볼때가 가장 즐겁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합니다.김창주연구원입니다.

(음향9-김창주)

"인류기원은 과학계의 영원한 명제입니다.아직도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하는데 저도 좀 더 공헌하고 싶고 한평생 분투하고 싶습니다.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해도 발견하지 못한것을 발견한것이 행운스럽고 자기가 종사하는 전업이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여생도 고고학에 종사하고 싶습니다.걸을수 있으면 산에가 답사하면서 생명이 종지될때까지 견지하고 싶습니다."

MC: 우연하게 다가왔던 고고학자의 길,우연을 숙명으로 안고 오직 고고학자의 외곬길만 고집해온 김창주연구원에게 다시한번 경의의 박수를 보냅니다.강옥기자,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강:감사합니다.

MC:한평생 화석에 울고 웃었던 고고학자-김창주 연구원, 세계를 놀래우는발견으로 중국 조선족을 빛냈던 그는 오늘도 인류사 수수께끼를 향해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이 시간 [사회생활] 방송을 전부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애청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이 시간 진행에 임봉해, 김금철이였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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