权香花
2020-11-27 21:04:51 출처:cri
편집:权香花

[청취자의 벗] 2020년 11월 26일 방송듣기

[청취자의 벗] 2020년 11월 26일 첫 번째 목요일

*****************************************************

(개시곡 1'02" 혼합)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11월의 네 번째 목요일의 <청취자의 벗>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과 함께하는 아나운서 박은옥(MC)입니다.

----------------------------------------------------

1. 11월

MC:

11월 26일은 양력 1년의 330일째 되는 날이며 올 한해를 마칠 때까지 인제 35일 남았습니다.

1981년의 이날 아시아올림픽이사회가 설립되었고 1987년의 이날 심천이 처음으로 토지사용권을 유상 양도했습니다.

1982 11월 26일부터 12월 10일까지 제5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5차 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회의는 국민경제와 사회발전 제6차 5개년 계획을 비준했으며 새로 수정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을 통과했습니다.

새 헌법은 인민대표대회 제도를 강화하고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의 직권을 확대했으며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설립을 회복하고 국가 중앙군사위원회를 설립하며 국무원이 총리 책임제를 실행하고 국가지도자의 임기는 연속 2기를 넘지 못한다는 것을 규정했습니다.

1990년 11월 26일, 상해증권거래소가 정식 창립되었습니다.

상해증권거래소는 개혁과 개방 정책을 실시한 후 중국 대륙에서 개업한 첫 증권거래소입니다. 이어 1991년 7월 3일, 심천증권거래소가 정식으로 개업했습니다.

2007년의 이날 중국 첫 달 사진이 발표되었습니다.

2. 지명과 연변

계속하여 ‘지명으로 읽는 이민사’, ‘연변 100년 역사의 비밀이 풀린다’ 이런 제목으로 지명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옛날 이주민이 정착했던 길림성 도문시의 ‘캄보디아’ 마을 이야기입니다.

                석두하 기슭의 ‘캄보디아’ 마을

  까울령의 동쪽을 흐르는 석두하石頭河는 이름 그대로 돌멩이가 많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청나라 말 훈춘으로 공문을 나르던 관리가 이 강을 건너다가 물살에 수백 미터나 떠밀려갔으며 그 통에 공문서류를 넣은 가방을 유실한 적 있다. 벽지의 초야에 묻혀있던 작은 강은 이 사건으로 하여 청나라 관방문헌에 등장하는 행운을 안는다.

  양수촌凉水村은 바로 석두하가 두만강에 흘러드는 합수목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석두하 때문에 생긴 이름은 아니었다. 양수촌의 강윤정 촌장은 샘물 때문에 마을의 이름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샘물이 정말 찼지요. 치아가 떨어지지 않나 의심할 정도였으니까요.”

  광서(光緖, 1875~1908) 연간, 마을 동쪽의 언덕에서 맑은 샘물이 발견되었다. 부근에 살던 사람들은 샘물터에 돌을 쌓고 나무 난간을 만들어 세웠으며 또 샘물 북쪽에 느릅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 민국(民國, 1912~1949) 초기, 언덕 위에 학교가 서면서 학생과 교원들도 이 샘물을 길어먹었다고 한다. 1964년, 펌프를 사용하면서 더는 샘물을 긷지 않게 되자 차츰 방치되었다. 그 후 나무 난간은 썩어서 없어졌고 샘은 구멍이 막혀 솟아나지 않았으며 오랜 느릅나무도 누군가 베어버렸다.

  맑은 샘물은 그렇게 가뭇없이 종적을 감추고 언제 생겼는지 모를 전설만 아직도 널리 유전되고 있었다.

  옛날 언덕 아래에 농부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마음씨가 비단결처럼 고왔지만 반백이 넘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어느 날 농부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하늘에서 백학이 갑자기 집 뒤의 언덕에 날아 내렸던 것이다. 백학은 발로 땅을 파더니 하늘을 바라고 길게 소리를 질렀다. 이튿날 농부는 언덕에 가서 백학이 내려앉았던 자리를 파보았다. 그곳에서 불현듯 샘물이 퐁퐁 솟아올랐다. 맑고 차고 또 달디 단 물이었다. 농부의 아내는 그 샘물을 마시고나서 금방 태기가 있게 되었으며 열 달 후 아들을 낳게 되었다. 농부 부부는 샘물을 먹고 낳은 아들이라고 해서 이름을 천자泉子라고 지었다.

  샘물의 기문을 들은 마을의 못된 부자는 흑심이 생겼다. 그는 이 샘물을 팔아서 돈을 억수로 벌 생각으로 농부 부부를 살해하고 샘물을 독차지하였다. 미구에 도인의 수하에서 무술을 닦은 천자는 이 못된 부자를 처단하고 샘물을 되찾아 동네 사람들이 마음껏 마시게 한다…

  이로 하여 양수천자凉水泉子라는 지명이 생겨났으며 나중에 인명 천자泉子가 생략되고 양수촌이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찬물’이라는 의미의 지명 ‘양수凉水’는 무더운 한 여름 손부채질을 하면서 냉수에 밥을 풍덩 넣어서 말아먹던 그때 그 시절을 새삼 눈앞에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 때 그 시절 사람들은 시골의 그런 작은 향수마저 마음껏 누릴 수 없었다.

  19세기 중반, 러시아는 두만강 어구를 차지하고 쩍하면 월경하여 사단을 일으켰다. 두만강 하류지역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유민流民으로 전락되었고 땅들이 황폐화되었다. 양수천자에 살던 향민鄕民들도 거개 집을 버리고 타지로 떠났다.

  청나라 정부는 오대징(吳大徵,1835~1902)을 변강사무 도독都督 대신大臣으로 파견하고 길림과 훈춘, 흑룡강 등 지역의 지방 관리와 함께 변강사무를 정돈하게 한다. 1881년, 오대징 일행은 양수천자 부근에 도착하였다. 그는 즉각 명을 내려 초가를 짓고 농업을 권장하는 기구인 ‘권농소勸農所’를 열었다.

  그 무렵 양수천자에는 단지 일곱 가구가 있었다. 그러나 5년 후 오대징이 다시 찾아왔을 때는 벌써 울타리가 서로 잇닿은 부락을 이루고 있었다.

  이때 촌민들은 보은의 심정에서 오대징에게 글을 부탁한다. 오대징은 흔연히 붓을 들어 ‘용호龍虎’라는 두 글자를 남겼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용호’는 용이 서리고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다는 의미의 ‘용반호거龍蟠虎踞’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오대징은 청나라의 고위 관리일 뿐만 아니라 이름 있는 금석학 학자이며 서예가였다. 그의 이런 재간을 보여주듯 ‘용龍’은 금문金文이었고 ‘호虎’는 상형象形 비슷한 문자였다. 촌민들은 이 용과 호랑이를 석물에 그대로 새겨 넣었다.

  그 시기 양수천자와 석두하 사이에는 여타의 부락이 없었다. 그래서 양수천자는 또 강 동쪽이라는 의미의 하동河東이라고 불렸다. 광서 말년, 석두하 기슭에 인가가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한다. 이 마을은 나중에 양수천자 서쪽에 있다고 해서 양수천자의 서쪽거리라는 의미의 서가西街라고 불린다. 만주국 초기, 지역 행정부문은 양수천자로부터 석두하기슭의 서가西街로 이주하면서 아예 이름까지 짐차에 넣어 끌고 갔다. 원래의 양수천자는 이름을 빼앗기고 별명인 하동河東으로 불렸다. 그나마 1981년 하동이라는 이 이름은 동쪽 훈춘의 옛 마을과 동명이며 또 ‘용호’ 석각이 부근에 있다고 해서 ‘용호’ 마을로 개명하게 된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 이 고장에는 전설이 아닌 전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석두하 하구의 서쪽에는 만주족 사람들이 세운 마을이 있다. 함풍(咸豊,1851~1861) 초년, 관關 씨 등 만주족 세 가구가 이곳에 허름한 움막을 짓고 살았으며 그 후 차츰 간민墾民들이 늘어나 촌락을 이뤘다. 이 촌락은 석두하 서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나중에 하서촌河西村이라고 불린다. 석두하를 건너 바로 동쪽에 위치한 마을은 양수천자이다. 그러나 예전에 하동河東으로 불렸던 마을은 이 양수천자가 아니라 양수천자를 지나 동쪽에 나타나는 용호마을인 것이다.

  동네 어구에서 한담을 즐기고 있던 노인들은 용호마을이 하동마을로 불리게 된 내력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옛날 논을 풀 때 두만강 물을 끌어들이면서 용호마을의 서쪽에 도랑이 하나 새로 생겨났지요. 용호마을은 이 도랑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하동 마을로 불리게 된 거지요.”

  그런데 이 도랑은 미구에 메워지고 논은 다시 밭으로 되었다고 한다. 정말이지 오랜 시일이 지난 후 항간에 또 무슨 설이 나돌지 모른다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두루미의 이름자를 달고 있는 학림촌鶴林村 역시 두루미와는 아무런 연줄이 없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었다. 지명지地名志에 따르면 학림촌은 언덕 아래에 물이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학림촌은 광서 말년에 세워졌는데 그때 만주족 말로 지명을 지었다는 것이다. 양수천자 북쪽으로 3리가량 떨어진 이 마을은 둔덕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해서 부근의 동산촌東山村과 학교리學校里와 더불어 일명 ‘닭 덕대 마을’이라고 불렸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웬 나라가 이 고장까지 와서 ‘국기’를 나부끼고 있었다. 바로 학림촌의 서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엉뚱하게 ‘캄보디아’라고 불린다. 멀리 동남아의 열대지역에 있는 나라가 눈발이 날리는 북방의 시골에 문득 나타난 것이다. 지방문헌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 지명은 그야말로 전설 속의 이야기를 방불케 한다. 그러나 양수에 사는 사람치고 ‘캄보디아’ 마을을 모르면 ‘간첩’으로 오인된다고 한다.

  마침 바깥에 소일을 나왔던 안룡산 옹은 이 희귀한 지명을 두고 반색하는 일행에게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뭐 별 것도 아닌 데요. 다른 마을과 동 떨어졌다고 만들어낸 이름이지요.”

  ‘캄보디아’는 부근의 민족도자기공장 주택으로서 어느 마을에도 소속되지 않는 특이한 동네였다. 예전에 학림에서 논농사를 지으려고 석두하를 끌어들이면서 석두하가 이 마을의 앞을 감돌아 흘렀다고 한다. 결국 누군가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엉뚱한 “국명”을 만들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안룡산 옹의 말에 따르면 ‘캄보디아’ 마을은 시초에 또 ‘대만촌臺灣村’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대만은 대륙의 남부에서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큰 섬을 말한다. 이 ‘대만촌’의 원주민은 고산족이 아닌 조선족이었는데 지금은 한 가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여하튼 석두하라는 작은 하천에 에둘린 마을을 바다에 둘린‘대만’이라고 하기에는 아무래도 격에 어울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름이 바뀐 것은 ‘캄보디아’라는 마을을 만든 민족도자기공장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는 ‘훈춘시 민족도자기공장’이었지만 그 후 소속 행정구역이 달라지면서 ‘도문시 민족도자기공장’으로 간판을 바꾸었다.

  이에 비하면 세 번이나 행정구역을 바꾼 양수는 이름 그대로 찬물인지 아니면 뜨거운 물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시초에는 북쪽의 왕청汪靑에 속했지만 훗날에는 동쪽의 훈춘에 귀속되었고 나중에는 서쪽의 도문으로 행정지역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양수에 있던 ‘용호’ 석각은 아예 자리를 떠버렸다. 1940년, 도문-훈춘 도로를 닦으면서 석각은 두만강 기슭을 떠나 산기슭의 도로 부근으로 옮겼고 그로부터 약 반세기 후 훈춘 시내의 공원으로 이사했다. 훈춘 정부는 양수를 도문에 넘기게 되자 석각을 미리 뜰에 옮겨서 ‘가보(家寶)’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100년 세월이 지난 후 ‘용반호거’의 용은 다시 ‘하늘’로 날아가고 호랑이는‘수림’으로 잠적했다. 결국 ‘용호’ 마을은 빛깔 좋은 허울만 달랑 남은 셈이다. 언제인가 석두하 기슭의 ‘캄보디아’처럼 또 뭔가의 새 지명이 생겨날지 모른다.*

MC:

네, ‘캄보디아’ 마을은 독특한 지리적 위치로 하여 현지의 유명한 지명으로 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연변의 지명과 이 지명에 깃든 이야기이었습니다. 노래 한곡 듣고 다음 코너로 이어가겠습니다.

 

[퀴즈 한마당 코너]

MC:

  [퀴즈 한마당] 코너는 달마다 한 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이달에도 지명과 관련한 퀴즈를 내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중국 연변 도문의 백룡촌은 옛날에 다른 지명이 있었는데요, 이 지명은 무엇이라고 했겠습니까?

  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백룡촌의 다른 지명은 무엇일까요.

길림성 장춘시의 애청애독자클럽 제1자동차그룹 분회의 김수금 청취자님이 24일자로 퀴즈 답안을 보내왔는데요. 이 답안 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도문에는 옛날 와룡촌 이야기 그리고 용과 뱀이 싸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여기에서 술도 빚었다고 하였는데요, 샘물로 빚었기 때문에 그 맛이 좋아서 이름을 날렸다고 합니다.

그때 이곳 밭머리에는 쑥대가 무성하고 동쪽에는 산이 있었는데, 마침 용이 엎드려 있는 것 같아서 (부근 마을을) '와룡동'이라고 불렀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후에는 갈대가 많았는데, 그래서 '위자구'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이것이 '백룡촌'의 옛 지명입니다."

김수금 청취자님과 함께 라명희, 주송숙, 박숙녀, 량두봉, 오애화, 허희숙, 한란희, 정기순, 윤영선, 리명희, 박룡익, 정성갑, 방해식, 박영희, 주혜옥 등 16명이 퀴즈 답안을 보내왔습니다.

네, 김수금 청취자님이 보내온 답은, 백룡촌이라는 이 지명의 유래와 조금 떨어진 내용이 되었는데요. 답에서 말씀한 전설 속의 용은 두만강 건너쪽의 산에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명 위자구는 백룡촌 서북쪽의 먼 곳에 있는 산간 마을의 이름인데요, 백룡촌과는 달리 두만강 기슭의 마을이 아닙니다.

네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계속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청취자의 벗과 연계하는 방법]

MC:

  편지는 우편번호 100040번, 주소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주시구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감하는 말]

MC:

 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은옥(MC), 편성에 김호림이었습니다.

  방송을 청취하면서 여러분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든지 전해주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청취자의 벗]과 함께 한 여러분 감사합니다.

  [청취자의 벗]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공유하기:

댓글달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