权香花
2020-12-25 18:33:29 출처:cri
편집:权香花

[청취자의 벗]2020년 12월 24일 방송듣기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12월의 네 번째 <청취자의 벗>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의 벗>과 함께하는 아나운서 박은옥(MC)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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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월

MC:

‘청취자의 벗’ 방송 시간인 금주 목요일 12월 24일은 양력 한해 가운데 358번째 날입니다. 12월 24일 이날로 올 한해가 마감할 때까지 이제 7일 남았습니다.

12월 24일의 저녁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다시 말해서 크리스마스의 전날 밤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대부분의 기독교 국가가 보내는 크리스마스의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동서방 문화의 융합에 따라 이날은 또 세계적인 명절로 되었습니다.

중국인에게 12월 25일 크리스마스라면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12월 26일은 꼭 기억해야 할 날로 되고 있습니다. 12월 26일 이날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중국인민해방군의 창시자 모택동의 탄생일이기 때문입니다.

모택동은 현대 세계사상 제일 중요한 인물의 하나로, 일찍 유명 간행물 ‘타임즈’에 의해 세계적으로 제일 영향력을 가진 100인중의 1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2월 21일 이날은 금주와 대응하는 또 다른 명절입니다.

이날은 동짓날로 24절기 가운데서 22번째 절기입니다. 이날은 태양이 남회귀선을 직사하는데, 북반구에서 한해동안 낮 시간이 제일 짧고 밤이 제일 긴 하루입니다.

12월 24일 이날은 또 국제 농구의 날이기도 합니다.

농구 운동은 미국의 한 기독교청년훈련학교 교원 스미스 박사가 기타 뽈 운동을 참작하여 발명했다고 전합니다. 1891년 12월 21일, 제1차 세계농구경기가 진행되었으며 훗날 농구계는 이날을 국제 농구의 날로 정했습니다.

 

2. 지명과 연변

계속하여 ‘지명으로 읽는 이민사’, ‘연변 100년 역사의 비밀이 풀린다’ 이런 제목으로 지명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부 연길의 지명 이야기입니다.

연길, 석양(石羊) 울음소리는 어디에

“옛날 우리 동네의 할머니가 길 어구에서 샘물을 팔았다고 하지요.” 청차관淸茶館에서 만났던 장張 씨 성의 아줌마는 그 샘물이 찻집의 찻물처럼 유명했다고 거듭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옛날부터 마을 뒤에 샘이 있었으며 물이 하도 맑고 달아서 작은 새우들이 서식했다.

청차관은 광서(光緖, 1875~1908) 초년에 형성, 산해관山海關 남쪽의 산동山東에서 이주한 중국인들이 최초로 부락을 이뤘던 오랜 마을이다.

누군가는 옛날 이곳에서 길손들이 객담客談을 나누면서 잠깐 휴식을 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샘물을 마셨든 아니면 찻물을 마셨든 길손들이 머물던 객사客舍가 있었다는 것. 마을이름만 보면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한다.

남쪽 산기슭에 자리 잡은 연길 시가지가 손을 내밀면 금세라도 닿을 듯 했다. 지금은 빌딩들이 시멘트의 수풀을 이루고 있지만 옛날에는 늪과 호수, 물웅덩이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고 전한다. 청나라 정부는 이곳에 전문기구를 설립하고 황실을 위해 삼을 캤으며 사슴 등을 수렵했다. 길림吉林의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초의 명칭인 ‘남황南荒 사냥터’라는 이름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누군들 이런 산속에 와서 차를 마실 여유를 즐길 수 있었을까…

“이전에는 우리 이곳으로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고 하던데요.” 장 씨의 목소리는 별로 자신이 없는지 발아래의 땅에 빗물처럼 잦아들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옛날 북쪽 일대에서 연길에 오던 사람들은 거개 이곳의 산등성이를 타고 다녔다는 것이다. 청차관 부근에는 청나라 때의 옛길 흔적이 불과 2년 전까지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이곳에는 정말로 사람들이 목적지를 앞두고 잠깐 다리쉼을 하면서 차를 마시던 객사가 있었을 것 같다.

마침 길 서쪽에 동명의 지명을 딴 것으로 보이는 마을 ‘청차촌淸茶村’이 있다. 이 청차촌은 바로 부근의 산속에 찻물처럼 감미로운 샘물이 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고 지명지地名志가 밝힌다. 정말이지 각본을 미리 맞춘들 이처럼 삼박자가 골고루 맞아 떨어질까 하는 생각이 갈마든다.

기실 청차관이나 청차툰淸茶屯이라는 지명은 연변 서쪽의 로야령老爺嶺 산골짜기와 북쪽의 해림海林, 목릉穆稜, 동녕東寧 등 지역에도 나타난다. 그런데 언어학자들은 이런 지명이 기실 만족 말의 원음을 음역한 것으로 ‘티티새’라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티티새는 우리말로 “지빠귀”라고 하는 철새로, 시베리아에서 번식하며 가을이면 중국과 한반도, 일본에 날아온다. 티티새는 멧돼지의 분변에 섞인 야생과일 씨를 즐겨 쪼아 먹기 때문에 티티새가 있는 곳에서는 멧돼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옛날 만족 사냥꾼들은 티티새가 늘 나타나는 곳에 머물면서 멧돼지를 사냥하였으며 그곳을 티티새의 이름으로 지었다고 한다. 티티새는 만족 말로 “靑扎阿拉嘎斯哈”이라고 발음하며 훗날 중국어로 음역하면서 순화하여 청차관 혹은 청차툰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연길 외곽의 옛 마을 청차관은 실은 만족 말로 된 지명이며 그 뜻인즉 티티새라고 지명지地名志가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웃한 청차촌은 1982년 비로소 생긴 새 마을로 이때는 티티새가 아닌 산속의 샘물을 그대로 지명에 담았던 것이다.

산 아래 확 펼쳐진 벌처럼 그간의 의문이 풀릴 것 같았다. 동명의 두 마을은 기실 한 뿌리에서 나온 열매가 아니었으며 따라서 전혀 다른 족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청차관 아래쪽에 있는 연길 역시 중국글자의 뜻과는 달리 가파른 바위산을 잘 타는 석양(石羊, 산양의 일종)이라는 의미라고 전한다. 청차관처럼 만족 말의 옛 지명이라는 것이다. 지명유래를 전문 해석한 민국(民國, 1912~1949) 연간의 문헌 “금현석명今縣釋名”의 기록에 따르면 지금의 연길은 명나라 때 “호엽길랑위瑚葉吉郞衛”에 속했다. 위衛는 명나라 정부가 요충지에 설치한 군영의 이름이다. 상기 군영이름에서 ‘엽길葉吉’은 만족 말로 ‘석양’이라는 의미이며 나중에 그 음이 변하여 지명 ‘연길延吉’로 되었다는 것이다.

석양은 바위산을 잘 타기로 소문난 짐승이지만 연길에서는 아무래도 사슴이나 늑대, 멧돼지보다 아주 생소하다. 그래서 연길을 만족 말의 지명이라는데 대해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지적이 있다.

안내 삼아 동행을 했던 연길의 친구 역시 무슨 엉뚱한 이야기이냐 하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이봐, 석양이라는 게 무슨 짐승이지?”

아닌 게 아니라 고산지대를 즐기는 석양이 옛날 습지나 다름없었던 연길 분지에 나타났으며 또 나중에 지명으로 고착되었다면 우연의 연속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연길’ 지명의 기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으며 아직 정설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와중에 연길은 실은 길림吉林의 연장이라는 의미이며 또 담배가 많이 나서 장마당을 이뤘기 때문에 담배 시장이라는 의미의 ‘연집烟集’이라고 불렸다는 다소 엉뚱한 설도 있다. 어찌되었든지 모두 연길이라는 지명을 놓고 그냥 글자풀이를 한데 지나지 않는다.

연길의 첫 지명이 ‘남황 사냥터’였다면 두 번 째 지명은 ‘남강 초간국南崗招墾局’이다. 남강은 백두산의 지맥으로 두만강 기슭에 길게 뻗은 산줄기의 이름이다. 청나라 정부는 광서 7년(1881)부터 봉금령을 차츰 폐지하며 지금의 해방로 북쪽에 남강 초간국을 설립했다. 당시 사람들은 개간국을 토지국자土地局子라고 불렀다. 1891년, 이 행정기구를 무간국撫墾局으로 개명하는데 무간국을 중심으로 열린 골목 때문에 국자가라는 이름이 생겨난다. 국자가는 지금의 연변빈관(賓館, 시설이 좋고 큰 여관)과 소년궁전 사이의 남북으로 곧게 뻗은 길이다.

이때부터 남강에는 이민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지금의 부르하통하와 연집하烟集河 주변에 군락이 올망졸망 들어앉으며 차츰 작은 도회지를 이룬다. 아침이면 강 위에 밥 짓는 연기가 안개처럼 자오록하게 피어올랐으며 사시(巳時, 9~11시)가 되어야 차츰 사라졌다. 그래서 남강은 또 연기가 모이는 언덕이라는 의미의 ‘연집강烟集崗’이라고 불렸으며 이와 같은 음의 ‘연길강延吉崗’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연집은 지금도 연길 서북쪽에서 흘러내려 부르하통하와 합수하는 강의 이름으로 남아있다.

그러고 보면 연기가 모인다는 연집烟集이 들짐승 석양이라는 의미의 엽길葉吉보다 연길이라는 이름에 더 근접하는 것 같다.

광서 28년(1902), 청나라 정부는 국자가局子街에 연길청延吉廳을 설립하였다. 관청 소재지로 떠오른 국자가는 민국 시기는 물론 8.15광복 후에도 상당히 오랜 기간 연길의 대명사로 불렸다.

시가지가 차츰 덩치를 불리면서 새로운 지명이 연이어 나타났다. 지난 세기 70년대까지 항간에서 자주 입에 올렸던 옛 지명 ‘아래 개방지下开放地’도 이 무렵에 등장한다. 1910년 연길이 일본의 통상지로 개방된 뒤 일본인들은 그들의 세력범위를 국자가까지 넓히려고 시도하였다. 그때까지 일본인은 중국에서 토지소유권과 매매권이 없었다. 그래서 친일 조선인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명의로 지금의 서시장西市場 거리의 토지를 헐값으로 사들이고 250여 가구의 민가를 지었으며 또 ‘신시가 번영회’라는 조직을 내오고 민가의 사용 및 권리를 번영회에 넘겨주었다. 이리하여 ‘신시가 웃개방지上开放地’가 생겨나게 되었고 따라서 국자가 아래의 동쪽거리를 자연히 ‘아래 개방지’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언제인가부터 ‘아래 개방지’와 같은 많은 옛 지명은 바람처럼 가뭇없이 사라졌다. 혹간 나이가 지숙한 사람들이 지금의 동시장東市場 부근을 지나다가 “옛날에 이곳을 ‘아래 개방지’라고 했었지.”하고 외울 뿐이다. 막상 잔존하는 옛 지명도 대개 굼벵이가 탈피하고 남은 껍데기 모양으로 되고 있다. 지명에 보관된 원초적인 정보들이 거지반 바람처럼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지명에 숨겨있던 온전한 실상은 말 그대로 연집강에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형체를 잃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연길이라는 이름 자체가 시내 남쪽에 우뚝 솟은 모아산帽兒山처럼 거대한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게 별로 이상하지 않다.

이러니저러니 모아산 기슭에 남아있는 일부 지명은 연길의 ‘석양’과 한데 이어진 끈을 꼭 잡고 놓지 않고 있다. 아래 개방지의 동북쪽 산기슭에 위치한 염과성鹽鍋城은 지금의 광명촌光明村인데 만족 말로 ‘표범’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때는 지명의 의미 그대로 표범 따위의 야수가 늘 마을 주변에서 어슬렁거렸던가 보다. 또 옛 지명 애단愛丹은 지금 연길 북부를 동서로 관통한 거리 애단로愛丹路에 그 이름이 남아있는데 실은 만족 말로 ‘멧돼지의 강’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도심의 화려한 건물과 그 사이를 실북 나들듯 오가는 차량들에 잠깐 정신을 놓고 서있었다. 어디선가 차 경적이 아닌 야수의 괴성이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금세라도 귓가에 울릴 듯하다.

실제 아래 개방지의 동쪽에는 약 반세기 전까지 늑대 울음소리가 있었으며 길손들을 늘 두려움에 떨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이마저 벌써 ‘천일야화’와 같은 기담으로 전한다. 그렇다면 연길이라는 지명을 만들었다는 석양의 울음소리는 도대체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네,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부 연길의 지명은 짐승 석양에서 연유될 수 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었습니다.

[청취자의 편지 사연]

이 시간에는 먼저 한국의 안중은 청취자님이 보내온 편지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안중은 청취자님은 최근에 단파방송에 입문한 대학생이라고 합니다. 안중은 청취자님은 17일 여러 채널을 살펴보다가 중국국제방송국의 방송을 듣고 본격적으로 청취하게 되었다면서 이와 함께 12월 18일자 방송을 수신한 보고서를 보내왔습니다.

안중은 청취자님이 문의한 "매일 중국어" 교재와 관련하여 답을 드립니다.

교재 "매일 중국어"는 따로 있고요, '매일 중국어'의 라디오방송은 ,,수에 과목, ,,,일에 과목씩 한주일에 2과목 방송됩니다

네, 중국에서는 생태문명 건설과 제도개혁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은생태환경 보호에서 날이 갈수록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요. 얼마전 중국 길림성 왕청 지역에서 또 야생 동북범 동영상 자료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길림성 왕청현의 리강춘 청취자님이 보내온 소식을 읽어드리겟습니다.

"동북범표범국가공원관리국 길림성 왕청현 천교령국에서 15일 밝힌데 따르면 이 국의 사업인원이 일전에 신개림산작업소는 적외선카메라를 검사하다가 최근에 촬영된 야생동북범의 동영상 자료 2컷을 발견했다.

고한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천교령 신개림산작업소는 생물종류가 풍부하고 다양하며 침엽수, 활엽수 혼성림이 위주이고 대형 육식류동물들이 서식하기에 적합하다. 최근 이곳에서 여러번 야생동북범표범 영상이 포착되였다. 동북범표범국가공원관리국 천교령국의 사업일군 문금장의 소개에 따르면 이번에 신개산작업소는 35림반과 36림반 사이에 있는 두대의 적외선 카메라에 모두 야생동북범의 영상이 포착되였는데 동일한 동북범이였고 화질이 아주 좋았다.

문금장은 동북범표범국가공원체제 시험점건설 사업을 가동한 3년 동안 천교령림업국은 관할구내에 적외선 카메라 1066대를 설치했는데 동북범의 발자국과 영상정보가 도합 28차, 야생동북표범의 발자국, 영상정보를 6차 검측했다고 말했다."

네, 동북범은 또 '동북호랑이', '장백호랑이', '시베리아호랑이', '백두산호랑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현재 야생 동북범은 약 600마리이며 이 가운데서 550마리가 러시아에 분포하고 50마리 정도가 중국 동북 지역에 분포하는 걸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최근연간 천교령림업국과 천교령삼림공안국은 야생동물에 대한 홍보와 보호 강도를 끊임없이 확대하고 불법수렵을 반대하는 전문행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마구 사냥하는 불법범죄 행위를 엄격히 타격함으로써 야생동물들을 위한 안전한 서식환경을 마련했습니다.

리강춘 청취자님이 전한데 의하면 지금 천교령림구의 생태환경은 해마다 개선되고 동북범표범 및 각종 류형의 야생동물 규모와 수량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퀴즈 한마당 코너]

MC:

[퀴즈 한마당] 코너는 달마다 한 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이달에는 지명과 관련한 퀴즈를 내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38년 6월, 한국 경상남도 합천군과 밀양군 사람들이 중국 안도현 명월구에 도착한 후 '어느 마을'에 정착했다고 하는데요, 이 마을의 이름이 무엇이였을까요?

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1938년 6월, 한국 경상남도 합천군과 밀양군 사람들이 중국 안도현 명월구에 도착한 후 정착한 마을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길림성 장춘시 애청 애독자 클럽의 남관구 분회 청취자님이 이번 주에 답안을 이메일로 보내왔는데요, "명월구 혹은 옹성라자(瓮声砬子)라는 곳 즉 지금의 명월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답안을 보낸 이들은 정수이 청취자님을 비롯하여 리월남 리분희 최동중 오인숙 라정자 황광주 강옥화 장혜숙 김종운 김재군 김옥선 이만호 김숙자 리재영 리해선 염복순 림귀인 전금옥 박만술 리혜숙 강춘자 조명기 정연숙 강영숙 김응복 등 26명이었습니다.

그럼 아래에 답안의 내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1938년 6월 한국 경산남도 합성군과 밀양군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마을에 도착하여 정착했다는 것을 문서적으로 저의 수준으로 찾기가 힘듭니다. 단 명월진 인구 중 3분의 1이 조선인이었다는데요, 이 가운데 한국 경상남도 밀양군 사람들이 벼농사를 하면서 거주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명월군는 옹성라자瓮声砬子라고 했는데요), 옹성라자는, 중심 거리에 큰 돌벼랑이 있는데 거기서 나는 소리 때문에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또 유수옹진 (流水瓮镇)이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1881년 청나라 시대 안도현 등 지역을 봉금지역으로 정하여 한동안 사람들이 살지 않았습니다. 그 후 일부 사람들이 거주했는데요, 그들이 벼농사를 지었다는 걸 보아 이곳에 조선인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네, 어떤 청취자님은 사이트나 책에서 12월 퀴즈의 답안을 찾고 있는데요, 퀴즈의 확실한 답안은 11월에 방송한 '청취자의 벗' 프로에 있습니다. '청취자의 벗'은 지금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지명 유래를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청취자의 벗과 연계하는 방법]

MC:

편지는 우편번호 100040번, 주소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주시구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감하는 ]

MC:

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은옥(MC), 편성에 김호림이었습니다.

방송을 청취하면서 여러분이 듣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언제든지 전해주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청취자의 벗]과 함께 한 여러분 감사합니다.

[청취자의 벗]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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