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십니까. 송휘입니다.
중국 중부의 안휘성 황산시에는 당모라고 하는 오랜 동네가 있습니다. 당나라 당, 법 모 자를 쓴 당모란 이름은 당나라 성세시기의 모식과 풍격, 기준에 따라 만들어진 동네라는 의미입니다. 천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오랜 동네에는 지금도 100여채의 청나라 민가와 4채의 규모를 갖춘 청나라 사당이 완정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럼 오늘은 저와 함께 안휘의 오랜 동네-당모촌으로 여행을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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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따라 축조된 동네 당모에는 또 옛 다리와 옛 우물, 천년의 은행나무 등 특색있는 경관들이 있습니다. 휘(徽)문화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는 호청천시는 당모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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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에 가장 일찍 입주한 민가는 왕(汪)씨인데 바로 당나라 말기의 왕화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군사를 모아 수나라를 반대했는데 나중에 당나라가 건립된 후 당고조 이연이 그를 월국공(越國公)으로 봉했습니다. 왕화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은 이곳 풍수가 좋다고 여겨 이곳에 안착하게 되었습니다. 이 은행나무는 바로 그의 아들이 심은 것인데 이 동네의 발전역사를 견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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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당모는 조용한 전원풍광과 고풍스럽고 소박한 인문경관이 아주 잘 융합되어 있습니다. 청산녹수와 흰 담벽들은 짙은 휘파문화의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당모인들이 생존공간을 선택하고 만들어가는데서 보여준 창거는 환남(晥南) 옛동네의 전형입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당모의 석판길을 걷다보면 마치도 과거로 돌아간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당모촌위원회 오지굉 주임은 당모를 소개할 때 항상 자부심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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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모는 강 양측을 따라 가옥들이 축조되었습니다. 이 수로를 따라 내려가면 수구(水口)정원을 볼 수 있습니다. 수구정원은 휘주일대에서 가장 훌륭한 정원입니다. 정원에는 팔각정도 있고 4, 5백년의 수령을 가진 고목도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서호도 있는데 항주 서호를 모방해 만든 것입니다. 수구문화는 우리 당모에서 가장 잘 구현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당모는 강남수구 제1촌이라는 미명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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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는 풍수학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수구란 수원이 나오는 출구를 말하는데 휘주촌락의 건설중에서 아주 중요한 시설이며 녹화와 생태환경보호에서 아주 전형적인 의의를 갖고 있습니다. 휘주인들이 모든 동네를 수구에 만들려고 열정을 다하는 이유는 풍수이론의 영향을 받아 물이 재부의 상징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재부가 밖으로 새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을 응당 "수구"에 건설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호청천시는 수구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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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기에 있는 많은 탑들은 일반적으로 물의 하류지역에 있습니다. 이런 탑들은 재부를 모으고 마을의 풍수를 지키는 역할을 합니다. 수구도 이와 같은 개념입니다. 간단하게 이해하면 마을에 물이 나오는 곳이 있으면 수구라고 부릅니다. 물은 만물을 키우지만 잘 보호하지 않는다면 해가 됩니다. 우리는 수구가 재물을 모으고 물을 모을 수 있도록 제방을 만듭니다. 그리고 정자나 누각을 짓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이곳을 쉼터로도 이용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건은 수원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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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모촌의 수구정원에서 보면 동네는 보이지 않지만 동네입구에 있는 모양이 특이한 정자-사제정(沙堤亭)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정자는 또 팔각이기 때문이 팔각정이라고도 불립니다. 멀지 않은 시냇물옆에는 400여년이 된 고목이 자라고 있습니다. 나무밑둥부분에는 큰 구멍이 나있는데 마치도 세월의 풍파를 다 겪은 노인이 입을 벌리고 앞을 응시하는듯 합니다. 이곳은 한때 영화 촬영지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작은 서호"로 불리는 단간원(檀干園)이란 정원이 나오는데 이곳은 개인정원입니다. 단간원은 또 청나라 휘주 6대 정원의 하나에 속합니다. 단간원은 당시 현지에서 살던 허이성(許以誠)이란 부자가 그의 노모를 위해 만든 정원입니다. 현지 오(吳)씨 가이드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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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시는 것은 '작은 서호'입니다. 이곳은 '효자못"이라고도 부릅니다. 이곳에는 이런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청나라초기 당모촌에는 허이성이라고 하는 효자가 있었습니다.허이성은 절강과 강소일대에서 대량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부유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다들 하늘에는 천국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고 하는데 자신도 한번 항주 서호에 가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허이성은 연세가 많으신 어머님이 항주 서호를 다녀오려면 한두달이 걸려야 하는데 그러다가 불상사라도 생기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항주 서호를 모방하여 정원을 지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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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간원의 "경정(鏡亭)"은 정원에서 가중 진귀한 부분입니다. 정자의 중간과 앞뒤 양측의 벽에 모두 역대 유명 서예가들의 18점의 작품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민간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일입니다.
동네를 가로질러 단간계(檀干溪)를 지나 한참 가면 이번에는 폐기된 사당이 나옵니다. 규모가 큰 이 사당은 허씨사당입니다. 비록 청조 태평천국년간에 전쟁으로 파괴되어 원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지금의 유적으로나 면적, 규모상으로 여전히 당시의 웅위롭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당은 동네에서 아주 중요한 건축이기 때문에 부지를 선택할 때 풍수지리를 아주 중시하였습니다. 결국 허씨사당의 건축자는 단간계 옆에 있는 이 명당자리를 선택했습니다.
당모촌의 가장 큰 볼거리는 수가(水街)이다. 약 백여채의 민가들이 단간계의 수로 양측을 따라 건설되었는데 그 경관이 아주 볼만합니다. 단간계에는 또 10개의 다리가 있는데 그 중 가장 특색있는 것이 고양교(高陽橋)입니다. 고양교위에 지은 회랑은 지금 찻집으로 개조되었습니다. 고양교의 찻집에 앉아 차 한잔 마시며 수가 양옆의 경치를 감상하다보면 여행의 피로가 싹 가셔집니다.
수가 양안에는 잡화점, 백화점 등이 있으며 또 40여미터의 비를 피할 수 있는 장랑도 있습니다. 장랑에는 또 "미인쉼터"가 있는데 여행객이나 현지인들은 이곳에서 휴식의 한때를 보냅니다.
특색있는 시골관광자원으로 지난 세기 80년대부터 당모촌의 관광업이 점차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당모의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2007년 황산시는 프랑스 국가광관국과 <중-프 안휘성 휘주시골관광 협력비망록>을 체결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안휘성 관광그룹은 프랑스 해당 부문과 당모시골관광 개발협력을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와 협력하게 된 계기에 대해 황산시 휘주구 관광위원회 류빈빈주임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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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국제적으로 시골관광업이 아주 잘된 나라입니다. 유럽의 시골관광업은 아주 발전했습니다. 그들은 시작이 빨랐을 뿐만아니라 발전도 빠릅니다. 우리 황산시는 관광자원이 아주 풍부합니다. 시정부의 목표는 현대화한 국제관광도시를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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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프랑스는 당모를 시범으로 삼아 국제화한 시골관광경관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완정한 유산보호 개발이용, 수환경보호, 시골여관과 특색도시란 체계를 내놓았습니다. 류빈빈 주임은 프랑스측의 관광개발이념은 촌민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었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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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측의 개발모식은 우리 국내의 일부 모식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인문과 역사, 생태, 원초적인 것을 아주 중시합니다. 외국 여행객들은 자신이 직접 체험하거나 셀프서비스같은 것을 즐깁니다. 때문에 우리 시각에서는 비교적 낙후해보이는 생활방식이 여행객들에게는 하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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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프랑스는 당모촌 개발협력에서 두가지 절차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안휘성 관광그룹이 당모의 시골여관을 관리하고 두번째로 조건이 성숙되었을 때 다시 프랑스모식에 따라 농가 가정식으로 시골여관을 경영하는 것입니다.
현지에서 자자손손 살아온 왕(汪)씨가문의 44대 후손 왕아저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당모촌 개발후 많은 변화가 생겼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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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아주 큽니다. 환경과 생활이 좋아지고 사람들의 사상수준도 제고되었습니다. 아주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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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은행나무와 함께 당모는 오늘도 변함없이 세계 각국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당모여행 마지막으로 중프 양국의 관광개발협력이 잘 이루어져서 당모가 더더욱 활력과 생기를 띠기를 기원해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