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멀미를 무섭게 타는 우리 셋째누나는 아직도 한번 연변을 가보는것이 평생 소원이라고 한다. 돈벌러 한국까지는 비행기를 타고 두번씩이나 가보았지만 한국이 아무리 잘 산다고 해도 연변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고 한다. 내가 출장길에 연변으로 해서 매하구에 들릴 때마다 항상 마음대로 연변을 드나드는 나를 부러워하며 연변을 그리워하군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려서부터 산거지구에서 자란 나한테는 연변이 그렇게 멀고 또한 그렇게 가깝게 와닿는 고향이였다.

그날 우리가 통화에서 기차를 타고 연길로 갈 때 길림을 지나 교하를 거쳐 돈화에 들어서면서부터 조선족이 사는 하얀 벽돌집들을 바라보면서 나의 마음은 저으기 술렁대기 시작했다. 창문밖을 쳐다보던 나는 강가에서 흰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토닥토닥 빨래망치를 두드리는 아줌마를 바라볼 때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아, 이게 바로 우리 민족이구나! 하고 그 무엇이 가슴을 치는것이였다. 더우기 연길역에 내려 광장에 있는 조선족녀성의 조각상을 볼 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앞을 가리웠던것이다.

정말 그때는 왜 그리도 감동이 많았던지…

그렇게 동경하던 연변을 갔을 때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 사람이 바로 길림신문사의 윤효식부사장과 리혜선씨 등 고마운 사람들이였다.

그때부터 아마도 혜선씨야말로 우리와 상당히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산거지구에 우리말 신문이 나온다는 이 한 점에서만도 우리는 마음이 설레였고 또 거기에서 사업하는 기자라는데서 더욱 우리와 가까울것이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얼마후 리혜선씨가 길림신문사에서 나와 다시 작가협회로 자리를 옮기면서 우리와 더욱 가까워지게 되였다.

나는 1985년부터 줄곧 장백산잡지사에서 소설편집으로 장장 20여년을 해왔다. 그 사이 나는 리혜선씨의 많은 소설을 편집할수가 있었다.

《한국의 작가들과 겨뤄볼수 있는 작가》라고 나는 항상 리혜선씨를 칭찬한다.

우리 문단에도 많은 소설가들이 있지만 리혜선씨만큼 글이 미끈하고 감각이 좋은 작가는 몇이 안된다.

그의 글은 생김새와 마찬가지로 거의 손을 안댈 정도로 깔끔하다. 대강대강 써서 훌쩍 편집부에 보내는 그런 작가의 글보다는 정말 한자한자씩 다듬어서 자기의 작품을 자식 대하듯 사랑을 몰붓는 사람이 바로 리혜선씨다.

문학은 언어예술이다. 제아무리 제재가 어떻고 수법이 어떻고 하더라도 첫째는 언어가 미끈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정말 한국의 문단에 가서 떳떳하게 선보일수 있는 작가가 바로 리혜선씨가 아닐가 생각된다.

리혜선씨의 작품이 올 때마다 나는 기분이 좋다. 편집으로서 거의 손댈 필요가 없기때문이다. 정말 다 리혜선씨 같은 글이라면 편집도 할만한 직업이라 하겠다.

그러면서도 리혜선씨는 항상 원고 뒤부분에는 편집께서 마음대로 손을 대도 무방하다고 믿음을 단다. 이게 편집들한테는 너무나 고마운 말이기도 하다.

나는 20여년을 편집하면서 별의별 사람들을 다 보았다. 금방 원고를 보내놓고는 날마다 전화를 와서 문의하는가 하면 때론 퇴고신을 사장한테 보내서 편집을 고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니면 아예 원고를 사장한테 보내서 압력을 가하는가 하면 원고앞에다가 나는 당신네 잡지사 모모를 아니 아예 내달라는 식으로 하는 그런 문인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리혜선씨만은 종래로 그런적이 없다. 그는 아예 안되면 퇴고하고 마음대로 손을 대여도 된다고 항상 나를 믿어주었다. 저명한 소설가 림원춘선생님도 항상 나를 믿어주셨는데 아마 재간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겸손한 모양이다. 한번은 림원춘선생님의 미니소설 제목을 제가 잘못 편집하여 《빽》이 그만 《뻑》으로 나갔는데 제목이 잘못됐으니 실수도 얼마나 큰 실수인가! 그런데도 림원춘선생님께서는 되려 전화를 걸어와서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그 인격에 나는 다시한번 머리를 숙이게 되였다.

아마 리혜선씨도 오래동안 작가협회에서 근무하면서 림원춘선생님한테서 그런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을가 생각된다.

사람이라고 과오를 범하지 않는 법이 없다. 편집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문단은 비평보다도 칭찬해주고 고무해주는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저 자기의 잘못은 모르고 남만 꼬집기를 좋아하는 그런 인격은 제창할바가 못된다.

그후로는 리혜선씨와 나는 작가와 편집인으로서 절친한 사이가 되였다. 친구들은 쩍하면 밤늦게 술을 마시다가 리혜선씨한테 전화를 걸어 장춘에 리선생이 왔는데 나올수가 없느냐고 익살을 부리면 혜선씨는 아무리 늦은 밤중에라도 서슴없이 나와주는 그런 친구이다. 리혜선씨의 남편 림선생은 항상 내가 전화를 할 때마다 너무 반갑게 대해주어서 송구스러울 지경이다.

아무리 늦은 밤에 나와서 친구들하고 술을 먹고 걸죽한 롱담을 걸어도 혜선씨는 한번 얼굴 붉힌적이 없었고 또한 한번도 흐트러진적이 없다.

언제 봐도 혜선씨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자기의 신분을 굳건히 지키는 형이였다.

그래서 나는 또 그에게 항상 이렇게 고운 《욕》을 하군 하였다. 《바늘 찔러도 피가 안난다》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딱 한번 리혜선씨가 흐트러지는 모습을 목격한적이 있었다. 아니 흐트러지기보다는 흐트러지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았던것이다.

박향숙을 애타게 보내는 날이였다. 생전에 딱친구였던만큼 박의 죽음은 혜선씨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였던것이다.

그날 화장터에서 돌아와 가족에서 차린 식당에서 술을 들다말다 하다가 우리 몇 친구는 다시 박의 어머니를 위문하러 박의 집을 찾았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