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을의 어느 하루, 나는 우편물을 찾아가지고 19층에서 내려올 채비를 하고있었는데 편집부 후근쪽의 일을 보던 오랜 직원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북경 딸집에 휴가를 다녀온 얘기를 들려주었다. 으리으리한 아빠트얘기로부터 딸과 한족사위의 친절한 접대까지로 이어진 그녀의 려행체험을 재미있게 듣다보니 나는 언제 1층으로의 락하가 마감되였는지 몰랐다. 환담은 결국 건물 앞마당에 나와서야 겨우 막을 내리기는 하였지만 그때 나누었던 그 담화의 열기는 지금도 잊혀지지를 않는다. 그리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이 역시 오직 엘리베이터라는 특별한 상봉장에서 오래만에 만나야만 가능한 장면이 아니였을까 한다.

물론 내부면적은 작아도 엘리베이터는 필경 내가 사는 도시의 축소판일수밖에 없다. 엘리베이터라고 해서 리상향일수는 없고 그 안에 하냥 따뜻한 봄바람만 불라는 법은 없다. 여의치 못한 바람이 스쳐지나갈 때도 없지 않은것이다.

엘리베이트에 오르내릴 때부터 벌써 서로 사양할줄을 모르는 페단이 보인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동승을 하면 무덤덤하기가 일쑤이다. 그래도 그 정도는 약과다. 어느 층인가에서부터 아는사이인 누군가와 엘리베이터에 동승을 하게 되였는데 그（혹은 그녀）가 만약 상대방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이여서 몇초간 숨막히는 정적만 흐른다고 생각해 보라. 그리 친숙하지는 않아도 분명히 익숙한 직원인데도 인사는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을 때의 그 부자연스러운 정경을 말이다.

허구가 아닌 직접 겪어본 일이기는 하나 여기서 굳이 이름이나 성별, 민족, 직위같은게 운위（雲謂）될 필요는 없다. 책망같은 생각은 더구나 나지 않는다. 나는 다만 이런 때에 엘리베이터에 감도는 공기상황이 북극 동토대의 한기는 몰라도 적어도 저기압을 동반한, 어지간히 답답한 랭기일수밖에 없다는 점을 환기시키고자 할뿐이다. 혹시 그가 치통으로 고생해서일까, 그게 아니면 혹시 시력감퇴가 심해서일까 해서 여겨보면 그렇지는 않다. 그는 현직에 있는 상급이나 동료가 들어오면 용하게 알아보고 대화도 완전히 정상이다. 그게 좀 의아하고 신기해서 이렇게 한번쯤 뇌까려볼뿐이다.

이렇게 엘리베이터는 꽤 멋진 무언극이나 훌륭한 드라마의 현장일수도 있다. 문제는 어떤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인가 하는것이다. 출연자들의 개성있는 연기, 말하자면 등장인물들의 표정관리와 정감관리가 섬세한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일것은 물론이다. 목석같이 무표정한 연기를 하는 배우가 득실거리는 드라마는 살풍경이다. 그렇다면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이 흠모하고 살기좋은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그것은 필시 한랭전선이 가시지 않는 동토대의 나라가 아니라 신사스러운 겸양과 성숙된 온정, 그리고 다정한 미소가 넘쳐나는 따사로운 나라일것이다.

올림픽전야의 북경, 엑스포를 앞둔 상해의 TV프로는 요즘 례절훈련, 웃음훈련프로로 성업이다. 그 웃음짓기프로가 걸작이다. 남녀로소가 지어내는 웃음이 억지스럽고 각양각색이여서 코미디의 군상을 련상시킨다. 갑작스런 훈련도 필요한 일이기는 하겠지만 몽테뉴가 말했듯이 《가슴속, 마음속에 질서를 세워보는 일》이 보다 중요할것이다. 정돈된 심령의 질서, 세련된 정신생활의 풍요가 전제되여야 이곳저곳에 남아있는 한랭전선은 마침내 물러갈것이다.

변화는 항상 새로운 전기를 로정（露呈）하건만 나는 어쩐지 요즘에도 신문사걸음을 두고 생각이 오락가락할 때가 없지 않다. 불편해소의 견지에서는 일층의 평면행진이 그립지만 엘리베이터의 저 변화무쌍한 풍경을 생각하면 그래도 수직고공행진쪽에 마음이 더 기우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