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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미향이-1
2009-03-17 16:5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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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고맙습니만 무슨 용건이라도 있으십니까?》

나는 신기루같이 나타난 팬을 깍듯이 대했다.

《용건이라기 보다도 선생님께서 시간을 짜내 저의 얘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얘요.》

《무슨 얘기신데?》

《저의 얘긴 선생님한텐 좋은 글감이 되실거예요. 정말이예요. 흑…》

나의 팬은 말을 맺지못하고 오열을 터뜨렸다. 송수화기로 울려나오는 녀자의 흐느낌소리를 들으니 내가 별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같이 느껴졌다.

《울지마시고 차근차근 얘기하십시오.》

한참만에 나의 팬은 오열을 그치고 울음배인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전화로는 도저히 얘기가 될것 같지 않아요.》

글감이 된다는 나의 팬의 이야기, 더군다나 오열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그 이야기가 무척 궁금스러웠다.

《지금 어디서 전화를 거십니까?》

내 말에 팬은 대뜸 반색한다.

《여긴 공중전화인데 선생님 지금 나와주실래요?》

《그러지요. 그런데 만날 장소를 어디로 정하면 좋겠습니까?》

《전 어제 북경에 오다나니 지리를 잘 몰라요. 제가 안다는 것은 천안문밖에 없어요.》

《천안문앞엔 관광객이 많아 만남의 장소로 정하기는…》

《그러시면 천안문광장 중심에 있는 인민영웅기념비앞에서 만나는게 어떨까요?》

《그런데 어떻게 서로 알아볼수 있겠는지…》

《제가요 아래우를 까만색으로 정장을 했는데 손에 〈연변녀성〉 잡지를 들고 있을께요. 시간을 몇시로 정할까요?》

《오전 11시로 하지요.》

《선생님 정말 고마워요.》

천안문광장의 인민영웅기념비에 이르니 5분전 11시였다. 어떻게 생긴 녀성인지 또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조금은 궁금한 마음으로 기념비 주변을 눈빗질했다. 까만색 정장을 하고 손에는 《연변녀성》잡지를 쥔 녀인을 찾아 기념비 주변을 돌았다. 그러나 그런 녀인은 없었다. 담배 한 대 붙여 입에 무는데 한 녀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까만색 정장을 하고 손에 잡지를 말아쥔 한 녀인이 기념비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얼핏봐서 나이가 40대 초반에 가까운 녀인이였다. 전화로 들은 젊은 목소리에 비해 조금은 상상이 빗나갔음을 느끼면서 나는 그 녀인을 향해 마주 걸어갔다. 전화로 약속한 내 팬이라면 적어도 주변을 두리번 거리겠건만 그 녀인은 고개를 약간 숙인채 내처 걸어왔다. 나는 그 녀인의 곁을 지나치면서 그 녀인이 손에 말아쥔 잡지에 시선을 모았다. 그러나 그 녀인이 잡지를 너무 돌돌 말아쥐였기에 그것이 무슨 잡지인지 알수 없었다.

《저 미안하지만…》

내가 우리말로 그 녀인을 향해 말을 건넸지만 그 녀인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가버렸다. 그 어느 첩보영화에서 보았던 접선에 실패한 한 장면이 떠올라 절로 멋적은 웃음이 힉 나갔다.

담배 한 대를 거의 다 피웠을 때 인민대회당쪽에서 바삐 뛰여오는 까만색 정장을 한 녀성이 눈에 잡혔다. 갸날프리만치 쪽 빠진 몸매를 봐선 처녀로밖에 볼수없었다. 그러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또 실망했다. 그런데 나와 가까운 거리까지 달려온 그 녀성이 멈춰서더니 어깨에 멘 가방에서 잡지 한책을 꺼내는것이였다.

제발 그 잡지가 《연변녀성》이기를…

기대와 맞아떨어졌다. 그 녀성이 가슴앞에 펴든 잡지표지엔 전통 한복을 입은 조선족녀성의 사진이 찍혀져 있었다. 접선 성공이다. 내가 희미한 미소를 입에 단채 그녀한테 다가가자 그녀도 대충은 짐작이 가는지 마주 다가왔다.

내가 그녀가 쥐고있는 잡지를 손으로 가리키며 웃어보이자 그녀는 인차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나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오래 기다렸죠? 차가 밀려서…》

그녀는 흘러내려 눈을 가리는 머리칼을 뒤로 쓸어올렸다. 조금은 넓은 하얀 이마와 쌍거풀이 질가말가한 반짝이는 두눈이 드러났다. 작은 눈이였지만 새물새물 웃는듯한 그런 눈이였다.

《나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아직은 식사전이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식사나 합시다.》

우리는 천안문광장 남쪽켠에 있는 맥드날도로 가서 빈자리가 많이 남은 구석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본 화제에 들어가기전에 나로선 우선 그녀가 나의 전화를 어떻게 알았는가가 궁금했다.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그녀의 대답이 기막혔다. 북경역 지하철입구에 있는 쓰레기통곁에서 나의 명함을 주었다는것이였다. 필경 언젠가 나의 명함을 받은 어느 녀석이 북경을 떠나면서 버린 모양이였다. 그저 간단히《자유기고가》라고만 달랑 밝힌 나의 명함이 그 무슨 사장이요 리사장이요 주석이요 하는 사람들의 명함처럼 정히 명함첩에 모셔질 명함은 아니지만 믿기어려울 정도로 쓰레기취급을 받았다는 것은 억장이 막히는 일이였다. 하긴 돈이나 권세를 가진 사람에 비해 별볼일이 없는 글쟁이의 명함이니 그런 《대접》을 받을만도 하다. 스스로 마음이 비참해지는 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러나 내 명함을 발견하는 순간 얼마나 행운스러웠는지 몰랐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다소 위안을 느낄수 있었다. 그녀가 주은 것이 명함장이 아니라 뭇사람들에게 짓밟힐번한 나의 자손심이였다는 생각까지 들면서 고마운 마음이 앞섰다. 고마움의 표시로 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나 돌리던 휴대폰전화번호와 팩스번호까지 밝힌 명함장을 그녀에게 정중히 내밀었다.

우리는 인차 본 화제로 들어갔다.

《하실 얘기가 뭔데 지금 들어볼까요?》

《선생님 말씀 낮추세요. 선생님께서 말씀을 낮추시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해지고 죄송스러워요.》

《미안하지만 성함은?》

《아이참. 여직 제가 선생님한테 제 이름마저 알려드리지 않았군요. 죄송해요. 저의 이름은 최미향, 올해 나이는 26살, 취미는 독서, 특기사항은 리혼녀입니다.》

초면에 나이뿐만아니라 리혼녀라는것까지도 당당하게 밝히는 그녀의 솔직함이 아주 인상적이였다.

그녀는 무작정 고향을 떠나 일가친척도 없고 별로 절친하게 지내던 친구도 없는 북경에 오고보니 마치도 물에 빠진 사람이 지프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고 허두를 떼고는 본론에 들어갔다.

《선생님을 찾은건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의 글을 통해 저의 기구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리려는데 있었어요. 여느 소녀들처럼 꿈많고 웃음이 많던 저는 하루밤사이에 꿈을 잃고 웃음을 잃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밤이 바로 기구한 운명의 시작이 된셈이지요.》

그러고보면 녀인의 수난사는 대체로 밤에 시작된다는 격언이 아주 적중한가보다. 미향은 아래말을 잇지 못하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달래면 달랠수록 더 울어버리는 것이 녀자와 어린애들이다. 녀자나 어린애들이 울때면 스스로 울음을 그칠 때까지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상책이다. 나의 안해도 이러저런 일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설음을 받을 때는 곧잘 울어버린다. 그럴 때 달래면 안된다. 달래면 더 울어버리다가 나중엔 나를 상대로 스트레스를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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