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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미향이-1
2009-03-17 16:5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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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친구의 아들 돌생일에 우리 내외는 단돈 백원만 가지고 갔다. 아이의 돌상에 사업을 하거나 과장이나 처장같은 장자나 가진 다른 친구들이 몇백원씩 척척 꺼내놓는 것을 보고 안해는 가지고 간 백원을 꺼내놓지 못했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 안해는 울었다. 곁에서 내가 달래니 안해는 그 설음을 나한테 쏟아부었다.

《맨날 그런식으로 살고 있으니 마누라 체면 하나 세워주지 못하지요. 글 만들어내는 그 좋은 머리를 가지고 뭔들 못하겠어요.》

그러면 나는 말없이 서재로 들어간다. 더 곁에 있었다간 좋은 일이 없다. 살아오면서 설음받던 일들이 다 쏟아져나오고 나중엔 아예 나를 바보로 만든다. 글과 씨름하면서 애들과 대화할줄도 모르는 아버지, 안해에게 미용원에 가서 얼굴 한 번 만지라고 몇십원도 쥐워주지 못하는 남편, 남보다 더 잘 살아보겠다는 의욕마저 없는 사내,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술로 화풀이 하는 어리석은 사람, 하여간 나는 지구라는 이 땅덩어리우에 발붙일 자리가 없는 사람으로 되어버린다.

내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두눈을 지그시 내려감고 서재에 앉아있으면 조금후 안해는 언제 투정을 부렸는가 싶게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와 내 앞에 김이 몰몰 피여오르는 커피 한잔을 놔준다. 그러면 나는 씩 웃으며 안해의 엉덩이를 툭 친다. 안해도 웃어버리면서 내 코를 한 번 비틀어놓고는 나가버린다.

안해생각을 하고 나니 오열하는 미향의 어깨라도 한 번 다독여주고 싶다. 40대 남자가 울고 있는 20대 녀자와 마주앉아 있는것이 볼거리나 된 듯 주변의 시선들이 따갑게 맞쳐온다. 나젊은 정부의 고운 투정을 받아주는 사람으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이윽고 미향은 울음을 그치고는 잠간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자리를 떴다. 그 사이 나는 울지않고서는 꺼낼수 없는 미향의 기구한 인생이야기가 시작되였다는 그 밤이 대체 어떤밤이였을가에 대해 추측해 봤다. 폭력에 의한 굴욕의 밤? 아니면 그 어떤 비루한 거래로 이루어진 계약적인 밤? 혹시 그 어떤 피치못할 사정으로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친 밤?

언제 울었나 싶게 새로 화장을 하고 다시 내앞에 앉은 미향이는 밤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추측을 완전히 뒤엎어버렸다. 미향의 기구한 운명의 시작이라는 그 밤은 시인들의 말을 빈다면 천지간의 화합과 령혼과 령혼의 융합이 이루어지는 황홀한 밤이였다. 한마디로 미향이가 녀자로 새롭게 태여나는 밤이였다.

미향의 기구한 생을 미향이가 말한대로 대충 적으면 이러하다. 평소에 백마왕자로 흠모하던 학교의 체육선생과 그 학교 고중졸업생인 미향은 소낙비가 억수로 내리는 밤에 학교 체조련습실에서 육체와 령혼의 향연을 가진다. 그것을 계기로 둘은 나중에 부부가 된다. 미향은 고향마을에서 유치원선생으로 일하고 남편은 체육학원으로 연수를 간다. 그 사이 사랑엔 금이 실리고 미향은 그 금을 메우려고 애를 쓰다가 나중에는 포기해 버리고 만다. 배속에 커가는 아이를 낳아서 키우려던 미향의 일루의 희망마저도 남편의 잔혹한 발길질에 꺼져버린다. 희망의 잿더미속에서 단 하나의 불찌라도 찾으려고 미향은 무작정 고향을 떠나 북경으로 온다.

어디서 많이 들었고 또 녀성잡지에서 많이 보아온 이야기다. 별로 감흥이 가지않았다. 그렇다고 심드렁한 표정을 지을수없어 미향앞에서 진지하게 듣는 모습을 꾸미느라고 애썼다. 가끔 하품이 나오는 것을 참느라고 곤경을 치뤘다. 미향이가 이야기를 마치자 나는 그 이야기를 정리해서 녀성잡지에 보내보라고 했다.

《녀성잡지에 나오는 글은 너무 짧고 깊이가 없어요. 선생님께서 저의 이야기로 장편소설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으면 그 반응이 대단할거얘요.》

단편소설감으로도 안되는 이야기를 장편소설로 만들라니 어이없었다. 그러나 글감이 안된다고 말할수 없었다.

《오늘 들은 이야기만 가지고서는 감이 잘 서지않는데 이러면 어떻소? 미향이가 오늘 할 말을 채 못한 것 같은데…》

미향이가 내말을 잘랐다.

《맞아요. 저의 이야기는 며칠을 새면서 말해도 다 하지 못할거얘요.》

《그러니 그 이야기를 차근차근 정리해보오. 록음기가 있소?》

《없어요.》

나는 호주머니에서 취재용으로 쓰던 자그마한 록음기를 꺼내놓다.

《미향이가 겪은 일과 하고싶은 말을 이 록음기에 록음해주오. 며칠이든 한달이든 천천히 생각나는대로 록음해주오. 할 이야기를 다 했다고 생각되면 그 때 나한테 다시 련락을 주오.》

《녀자는 돈에 웃고 돈에 운다》

그날 그렇게 헤여진후 미향이는 가끔씩 전화가 왔다. 그저 인사차로 걸어오는 전화였다. 할 이야기를 다 록음했는가고 물으면 미향은 번마다 기구한 자기 생에 대해 이야기 하자니 자꾸 설음이 북받치고 눈물이 앞서 도저히 록음을 할수 없다고 했다. 마음이 안정될 때 록음을 하라고 하면 마음이 도저히 안정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럼 우선 일자리나 찾아 일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면 다소나마 마음의 안정을 찾을수 있을거라고 하니 자기도 지금 그럴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평소에 그리 친하지도 않은 친구집에서 눈치밥을 먹자니 살점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그후로 한 반달동안 미향한테서 전화가 오지않았다. 아마 일자리를 얻어 바쁜 일상을 보내는 모양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북경도서관에 가서 창작에 필요한 자료를 찾아보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누구신지?》

아주 딱딱하고 거친 한어말이 고막을 찔렀다.

《당신이 송철인가?》

《그런데…》

《지금 빨리 동향촌파출소로 오시오.》

아주 명령조였다. 죄지은 일 없어도 파출소로 출두하라면 가슴이 뜨끔해진다. 우선 불길한 생각부터 앞세우게 된다. 고중에 다니는 아들녀석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아니면 어느 친척이 범법했나…

북경의 동북쪽 변두리에 위치해 있는 동향촌파출소를 길을 물어가며 찾아가다나니 택시로 한시간 남짓이 걸렸다. 파출소에 들어가니 몸매가 거쿨진 젊은 경찰이 나를 차갑게 맞았다. 그 녀석은 나한테 자리를 권하지도 않은채 심문조로 물어왔다.

《이름?》

《송철.》

《나이?》

《48살.》

《직업?》

《자유기고가.》

《자유기고가가 뭡니까?》

《글쓰는 사람. 잠간만 당신 지금 날 심문하는거요?》

《난 지금 공무를 집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손님한테 먼저 자리라도 권해야 할게 아니오?》

《거기 걸상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의자에 앉아 담배 한 대를 꺼냈다. 그러자 그 젊은 녀석이 고개도 들지않고 말했다.

《여기선 금연입니다.》

《책상우에 재떨이가 있는데…》

《담배 태우라고 놔둔게 아닙니다.》

나는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그냥 재떨이에 던져버렸다.

《신분증.》

나는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젊은 녀석앞에 던져주었다. 신분증을 이리저리 뜯어보던 젊은 녀석이 신분증을 내앞으로 던져주며 물었다.

《가라오케에 자주 다닙니까?》

한때는 가라오케에 자주 나들기도 했다. 지방에서 친구가 오거나 북경에 있는 친구들끼리 파티가 있으면 2차로 이어지는게 가라오케였다. 다른 친구들은 카라오케아가씨들과 잘 어울려 기분을 냈지만 나는 내가 부를 노래 몇곡만 부르고는 술만 마시다가 꼬꾸라진다. 한두번도 아니고 번마다 그 꼴이니 언젠가 한 친구가 아들둔건 봐선 고자가 아닌데 혹시 벌써 고개숙인 남자가 돼버렸나 하고 이죽거리기까지 했다.

가라오케에 가봤댔자 별 재미가 없고 술에 몸만 상하는데다가 오가는 택시료금도 문제가 되어 발길을 끊은지도 오래됐다.

《방금 묻지 않았습니까? 가라오케에 자주 다니는가고.》

나는 대답대신 고개만 가로저었다. 녀석은 서랍에서 명함 장 한 장을 꺼내 내 눈앞에 내댔다.

분명 휴대폰전화번호와 팩스번호까지 찍힌 나의 명함장이였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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