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 25일
주말과부라는 말이 있다. 외국에서 나온 말이다. 외국에선 대체로 주말에 볼만한 체육경기가 벌어진단다. 남자들이 체육경기를 구경하러 가고 나면 홀로 집에 남은 마누라를 주말과부라고 한다나. 주말과부란 말은 나한테는 너무나 사치스럽다. 주말이 아니라 일주일 과부, 아니 한달 과부, 그것도 아니다. 일년내내 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남은 주말에 가족동반으로 외식하고 또 어디로 구경가고 나들이가고 하는데 홀로 밥상에 마주앉아 아침에 남은 묵은밥이나 긁어먹는 신세, 사는게 다 귀찮아진다.
애가 있을 땐 그래도 말동무라도 있어 괜찮았지. 어서 방학이 됐으면 좋겠다. 애라도 오면 무덤같은 이 공간이 사람 사는 공간으로 변하겠는데…
알다 모를 일. 돈도 없는 사람 저녁마다 내내 술이다. 남의 술 얻어먹으면 드믄드믄 사는 멋도 있어야겠는데 술 산다고 나한테 돈 내라는 말은 없다. 《작은 금고》라도 있는지. 있을리 만무하지. 문화관이란 워낙 로임마저도 자주 체불하는 단위니까. 술먹을 돈을 대줄 사람은 없은것이고. 좌우간 얼굴 하나는 두껍다. 어쩌면 그렇게 매일이다시피 남의 술을 얻어먹기만 할가. 알콜중독자의 일화가 생각난다. 한 알콜중독자가 술 한잔 얻어먹으려고 점심때나 저녁때면 식당앞에서 서성거리면서 그 누굴 기다리는척 하다가 풋면목이나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척 들어앉아 술 한잔 얻어마신단다. 그 량반 그런 신세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 신세가 됐으면 갈 만치 다 간 사람이지…
어쩐지 내가 오늘 술 마시고 싶다. 옛날 시인묵객들은 자기 그림자와 벗해서 권커니 작커니 하면서 시상을 무르익혔다는데 난 술 마시며 뭘 달랠가? 외로운 마음?
사막의 오아시스: 오늘 술 한잔 했어요.
노아의 방주: 즐거운 주말인것 같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울적해서 혼자 마신거얘요.
노아의 방주: 울적해서 마신 술은 몸에 해롭다고 합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방주님은 술 마셔요?
노아의 방주: 가끔씩은 입에 댑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즐기는 편이세요?
노아의 방주: 술을 즐긴다기보다 그 분위기를 즐긴다고 할가 요?
사막의 오아시스: 제가 지내본 사람중 호주머니에 돈 한푼 없 어도 매일이다시피 술 마시는 사람이 있더군요.
노아의 방주: 행복한 분이군요.
사막의 오아시스: 행복하다니요?
노아의 방주: 호주머니에 돈 한푼 없어도 술좌석을 마련해 주 는 분이 있다는 얘기가 아닙니까.
사막의 오아시스: 남자 체면으로는 그냥 남의 술 얻어먹기가 마음 편하지 않을텐데요.
노아의 방주: 남성세계의 술문화에 대해 녀성들이 리해가 가 지않는 부문이 많을겁니다. 남자들은 남이 사는 술을 얻어 먹는다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저 함께 그 분위기에 어울 린다고 합니다. 돈 한푼 없어도 마냥 친구들과 술자리에 어 울린다는 그 분은 대인관계가 좋은 분인것 같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지금 세월에 대인관계란 그 어떤 목적을 념 두에 두고 이루어지는 인간관계가 아니겠어요. 말하자면 승 진이라던가, 명이나 리를 위한것이라던가.
노아의 방주: 글쎄요. 저의 경우엔 술자리에 어울릴때는 그저 그 자리의 분위기가 좋아서 어울리는겁니다. 목적, 의도적 으로 술자리를 마련한다던가 술자리에 참석한다면 그건 진 정한 의미에서의 남자들 술자리가 아니라고 저는 봅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그럼 그저 즐긴다는거얘요?
노아의 방주: 대화하는겁니다. 지금 인간 사이에 대화할 기회 가 아주 적습니다. 술자리도 일종 대화의 장소이라고 저는 봅니다. 스트레스를 풀고 친구의 우정을 다시 확인하고 그 렇지 않으면 피곤한 세상에서 날카로워진 신경을 알콜로 잠시나마 둔화시킨다던가…
사막의 오아시스: 진짜 그런 술자리면 저도 끼우고 싶네요. 스 트레스도 풀고 겸사해서 다믄 술 마시는 그 시간이라도 현 실을 망각에 부치고…
노아의 방주: 그러나 아까 말했지만 울적해서 혼자 드는 술은 몸에 해로울 뿐만아니라 스트레스를 더 받게 됩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그런가봐요.
노아의 방주: 좋은 주말에 왜 술이 화제가 됐습니까? 다른 화 제를 바꿔볼까요?
사막의 오아시스: 좋아요.
노아의 방주: 오아시스님은 지금 현실의 모든 번뇌를 훌훌 털 고 아무곳이든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지요?
사막의 오아시스: 어쩜 그렇게도 제 맘을…
노아의 방주: 얼굴에 씌여져 있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제 얼굴 보이나요?
노아의 방주: 한번 그려볼까요?
사막의 오아시스: 기대되는데요.
노아의 방주: 총적으로 지적이면서도 어딘가 우수가 깔린 그 런 모습인것 같습니다. 남들처럼 미용원을 나들면서 얼굴을 만질 그런 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 얼굴에 꽤나 신경을 쓰시는 분, 그리고…
사막의 오아시스: 얼굴 모습만 그려보세요.
노아의 방주: 살결은 힐것으로 보입니다. 얼굴형은 약간 둥근 것 같고 둥근 얼굴에 비해 눈은 좀 가는 편인데 눈빛만은 날카로울것 같고 그 눈빛에 알맞게 코는 오뚝하게 솟은 편이고 입은 꼭 다물린 작은 입입니다. 어때요? 제가 그려 본 형상이?
사막의 오아시스: 몰라요.
노아의 방주: 어디까지나 저의 상상입니다. 상상이 빗나갔으면 사과하겠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아니얘요.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야 해요. 저 를 좋게 상상해 주셔서…
노아의 방주: 저의 모습 한번 그려줄수 없겠습니까?
사막의 오아시스: 저의 언어표달 능력으로는 방주님을 그릴수 없어요. 대체적으로 받은 인상을 말한다면 방주님은 마음의 여유를 갖고 세상 편하게 사시는 편한 분같아요. 어때요? 제 인상이?
노아의 방주: 너무 과찬이십니다. 하긴 저도 피곤한 세상을 그 래도 마음 편하게 살자고 노력하는 사람이기는 합니다만 현실은 그렇게 마음대로 안됩니다. 범의 코 등의 밥알도 떼 먹는 세상이라고 합니다만 그렇다고 너무 아득바득하면 오 히려 자학적이 될수도 있지요. 그건 그렇고, 주말인데 이러 고만 있겠습니까. 남은 주말이면 어딘가 려행도 떠나고 둘 만의 세계를 마련한다는데 우리도 한번 려행 떠나볼까요?
사막의 오아시스: 바라던 바예요. 어디로 갈까요?
노아의 방주: 미국이나 유럽은 너무 머니까 가까운 곳을 택하 지요.
사막의 오아시스: 가급적이면 문화권이 비슷한 곳으로 택하지 요.
노아의 방주: 그럼 한 문화권이고 언어도 통하는 한국이 어떻 습니까?
사막의 오아시스: 좋아요.
노아의 방주: 그럼 한국에서도 관광1번지로 꼽히는 제주도로 갑시다. 어서 오세요. 대한항공입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즐거운 려행이 되십시오. 호호호…
노아의 방주: 비행기로 날아오니 제주도도 정말 지척이군요. 우선 려장을 푸셔야지요. 방은 어떻게 쓰겠습니까?
사막의 오아시스: 아직은 각방을 쓰는게…
노아의 방주: 그럼 저는 하는수없이 초야권은 보류하겠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아이참…
노아의 방주: 먼저 어디부터 구경할까요?
사막의 오아시스: 아무곳이나…
노아의 방주: 제주도가 처음이여서 어디로 안내해야 할지 갈 피를 잡을수 없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이쯤으로도 만족이얘요. 진짜 제주도로 날아 가 본 기분이얘요.
노아의 방주: 언젠가는 한번 진짜로 제주도 관광을 떠났시다.
사막의 오아시스: 그날을 기대해 볼께요.
노아의 방주: 오늘의 주말 잘 보내셨는지?
사막의 오아시스: 즐거웠어요. 생각같아선 그냥 이 밤 새고싶 어요.
노아의 방주: 제주도에 가서도 각방을 썼으니까 그런대로 자 기 방으로 돌아갑시다.
사막의 오아시스: 그러죠…
노아의 방주: 좋은 꿈꾸십시오.
사막의 오아시스: 자기도…
노아의 방주: …
사막의 오아시스: 세 점은 무슨 뜻이죠?
노아의 방주: 지난번에 제한테 주신 세 점의 수수께끼를 제가 고심고심끝에 종내 풀었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무슨 뜻이얘요?
노아의 방주: 남자들이 가장 꺼내기 힘든 말이 하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 한마디 꺼내면 상대방을 평생 책임져야 하 니까요.
사막의 오아시스: 그 말이 뭔가요?
노아의 방주: 사랑해!
사막의 오아시스: 어머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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