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 12일
춥다. 열이 난다. 갑갑하다. 귀찮다. 짜증난다. 허무하다. 서럽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갱년기 증세란다. 녀자답게 살아본 기억도 없는데 벌써 볼장 다 봤는가… 갱년기에 들어선 녀자를 한족들은 《두부찌끼》라고 한다나. 남자들이 내린 너무나 잔혹한 평가다.
《당신 이제부터 주의해. 나 갈건 가고 올건 왔으니까 의사말대로 잘 협조해야 한다니까. 내가 신경질 써도 무조건 다 받아줘야 하고 내 기분도 맞춰줘야 하고.》
내 친구가 남편한테 이렇게 으름장을 놓으니 이튿날부터 아주 곱상이더란다. 친구처럼 그러고 싶지않다. 내가 더 비참해지니까.
요즘은 조끔 달라진 점이 있다. 귀가시간이 빨라졌고 드믄드믄 집안청소도 한다. 평소 가무일에 손 하나 대지않던 사람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찾아서 할 때면 꼭 엉큼한 궁리가 있다. 아니나 다를가 어제밤 내 이불속으로 들어왔다. 구렁이가 기여들어오는것과 같은 기분이다. 부부관곌 한지 언제였던지 기억도 나지않는다. 이불을 몸에 감고 등을 돌릴가 하다가 그냥 몸을 맡겨버렸다. 아무런 감흥이 없다. 일방적일수 밖에 없다. 일을 끝내고 말없이 방을 나가는 뒤모습을 보면서 손에 잡히는대로 뭔가 내던지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눌렀다.
일년전부터 각방을 쓰게 된 리유도 일방적으로 일을 끝낸 뒤 내뱉은 말 때문이다. 지금도 그 말을 생각하면 악이 받친다. 그날도 제기분에 들떠 한참 씨근덕거리다가 떨어져 나갔다. 담배 한 대 피워물면서 하는 말이 이랬다.
《싸늘한게 어디 산 사람이야? 송장이지.》
《그래 난 송장이다. 송장하고 그 짓거리한건 법에 걸려!》
그러곤 이불을 안고 아들이 대학가기전에 쓰던 방으로 건너갔다.
《노아의 방주》가 한 말처럼 남자는 일생에서 권력, 지위, 재부, 성애를 추구해야 한다는데 성애에서도 빵점만 맞는 락제생이다.
어휴, 내 신세…
사막의 오아시스: 보고싶어요.
노아의 방주: 저도.
사막의 오아시스: 방주님의 얼굴을 지금의 가상세계에서가 아 니라 현실에서 보고싶어요. 만나자요. 지금이라도.
노아의 방주: 만나면 우선 실망이 가고…
사막의 오아시스: 욕된 말이지만 혹시 방주님이 장애자라도 저는 실망하지 않을거얘요.
노아의 방주: 그 마음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만 현실에서의 만 남은 포기하시는게 좋을겁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왜서요?
노아의 방주: 만남으로해서 우리는 여태껏 함께 영위해온 생 활의 공간을 잃게 됩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이 공간은 어디까지나 가상의 공간이 아니 얘요. 이제와선 전 이 가상의 공간이 싫어졌어요. 현실적이 고 싶어요.
노아의 방주: 아닙니다. 한사람이 세상 살아가면서 두 개의 생 활공간을 가진다는게 얼마나 쉽지 않다는점 리해하셔야 하 고 또 어렵게 구축한 생활공간을 버린다는게 얼마나 고통 스럽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저는 가상의 공간을 포기할 각오가 돼있어 요.
노아의 방주: 우선 고정하십시오. 누군가 인간은 두 개의 얼굴 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진실한 모습, 다른 하 나는 가면으로 가리운 모습.
사막의 오아시스: 지금 가상의 공간에서 채팅하고 있는 우리 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진실한 모습, 아니면 가면으로 가리운 모습?
노아의 방주: 딱 찍어 말하기 힘듭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저는 어디까지나 진실한 모습이예요.
노아의 방주: 현실이 오히려 더 진실할것 같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아니얘요. 강요된 삶을 사는 저의 경우엔 현실은 탈바가지를 쓰고 가면극을 노는 그런 놀음판이라고 생각해요. 행복하지 않으면서도 남들한테 행복한듯한 모습 을 애써 보여주어야 하고 지어 잠자리에서도 상대방의 기 분을 의식해서 억지로라도 즐거웠다는 표정을 지어주어야 하고. 제가 이런 말까지 해야 하나요? 방주님은 저의 진솔 한 마음을 아직도 리해하지 못하고 있나요?
노아의 방주: 아닙니다. 충분히 리해합니다. 충분히 리해하기 때문에 이 공간을 버리고 싶지않습니다. 바로 이 공간이 있 었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 생활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가리 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인간대 인간으로 허심탄회하게 인생상담도 나눌수 있었고 인간의 진실에 접근할수 있었습 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지금의 저의 마음 리해하시겠죠?
노아의 방주: 방금 말하지 않았습니까. 충분히 리해한다고.
사막의 오아시스: 그럼 제가 솔직한 고백을 할께요. 제가 왜서 저의 이름을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달았는지 아세요? 오아시스는 사막의 생명이고 꿈이고 리상의 세계얘요. 사막 에서 목말라 거의 죽어가는 사람이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 듯이 현실 생활에서 모진 갈증을 느끼면서 사막같이 황페 한 불모의 땅에서 참된 삶의 오아시스를 찾아 헤맨 사람이 바로 저예요. 그래서 삶의 오아시스를 찾아 헤맨다는 뜻으 로 이름을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달았어요. 방주님은 제 가 찾은 오아시스얘요. 메마른 내 삶에 다시금 생기와 활력 을 안겨주고 누구한테 강요된 삶이 아닌 떳떳한 내 삶을 살도록 이끌어줄 분이 바로 방주님이얘요. 사랑해요…
노아의 방주: 그 사랑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우리 사랑합시다. 그리고 행복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봅시다.
사막의 오아시스: …
노아의 방주: …
사막의 오아시스: 그럼 인젠 우리 이 공간에서 나가요.
노아의 방주: 아닙니다. 우린 영원히 이 공간에 있어야 합니 다.
사막의 오아시스: 왜서 이 가상의 공간에 남아있으려고 해요?
노아의 방주: 바로 이 공간에서만 우리의 사랑이 가능하기 때 문입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무슨 뜻이죠?
노아의 방주: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 련인이 되기 도 하고 지어는 결혼식을 올리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까지 낳아 기르면서 부부생활까지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현실로 돌아가면 그것은 불륜입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저의 경우엔 불륜이 아니얘요. 사랑이얘요. 꼭 만나요. 만나지 않으면 전 미칠것만 같아요.
노아의 방주: 그냥 이렇게 나오시면 스스로 이 공간에 무덤을 하나 만들게 됩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무덤이라니요?
노아의 방주: 사랑의 무덤.
사막의 오아시스: 무슨 뜻인가요?
노아의 방주: 현실은 무자비하면서도 또한 확실합니다. 우린 현실에서 만나지 말아야 합니다. 기어코 만나시겠다면 저는 이 공간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상의 공간에 사랑 의 무덤 하나 만들어놓고…
사막의 오아시스: 그래요. 우리 함께 이 공간에서 사라지자요. 우리에겐 가상의 공간이 인젠 그 의미를 잃었어요. 좀 더 실제적이 되자요. 두손 모아 빌어요. 현실공간에서 만나요 네? 무작정 방주님의 뜻에 따르겠으니 꼭 만나요.
노아의 방주: 미숙아 꿈깨!
사막의 오아시스: 아니, 내 이름 어떻게 알아? 너 대체 누구 야?
노아의 방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널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야. 한마디 충고할게. 가상은 어디까지나 가상이고 현실은 어디 까지나 현실이야. 그걸 착각하지도 말고 두 공간을 애써 접 목하려고도 하지마. 가상공간에선 스트레스를 풀 정도면 돼. 우직하게 상아탑을 쌓을 궁리를 하지말고…
사막의 오아시스: 너, 너 대체 누구야?
노아의 방주: 내 말 끊지마. 례모없이. 미숙아 잘 들어둬. 녀자 가 성숙된 표징은 자기를 잘 아는것이야. 넌 지금 자기를 잘 몰라. 우선 자기를 잘 알아야 남을 리해할수 있어. 자꾸 번뇌나 고독, 삶의 고통을 하소연 하지말고 차분한 마음으 로 한번 자기 자신을 들여다 봐. 그러면 남도 리해해줄수 있고 살아온 삶이 비록 구질구질하다해도 쑥대밭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거야. 사람 사는게 다 그래. 욕망 대로 되는 일 별로 없어. 너무 기대도 하지말고. 기대가 크 면 실망만 클뿐이고 자학에 빠질뿐이야. 어서 이 공간에서 나가 남편 잠자리나 펴. 그게 현실이야.
사막의 오아시스: 당신…
※ 부언: 《코리아 야후》 공개대화방에 들어가면 지금도 이런 글이 그냥 떠오른다.
《사막의 오아시스는 노아의 방주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방주님은 어디에 계시나요…》
2001년 2월 20일 북경에서 완고 1 2 3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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