赵玉丹
2021-07-26 11:54:31 출처:cri
편집:赵玉丹

송나라와 원나라 시기의 중국이 보이는 泉州

제44회 세계유산대회가 베이징 시간으로 25일 문화유산 신청 프로젝트인 ' 송나라와 원나라 시기의 세계 해양 상업무역중심인 중국 천주(泉州)'를 심의 통과했다. 이로써 중국의 세계유산 명부에는 또 하나의 보석이 더해졌다. 이 문화유산에는 서기 10세기부터 14세기에 나타나고 지금까지 보존된 일련의 문화유산이 포함된다. 이 유산은 오늘날의 천주 도시 지역을 핵심으로 하는 천주만 지역에 분포하며 22개의 유산을 망라한다. 이런 유산은 고대 동방의 큰 항구로서의 천주의 지위와 기여, 풍채를 빙증한다.

중국 동남연해에 위치한 천주는 13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서기 10세기부터 14세기까지 천주는 번영한 국제 해양무역속에서 왕성하게 발전하여 여러 나라의 상인들이 운집하고 다원화한 문화가 아우러진 '동방 제일의 큰 항구'로 부상했다.

이 역사에 대해 되짚어볼려면 유명한  '남해1호' 침몰선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발견된, 선체가 제일 크고 제일 완정하게 보존된 원양 무역 상선인 '남해1호' 발굴 문물은 18만점이 넘는다. 이 가운데서 철기와 자기가 큰 품목이다.

고고학자들은 침몰선의 선창에서 가쯘하게 배열된 산더미같은 송나라 시기의 대량의 자기를 발견했다.이런 자기는 8백여년 동안 바닷물에 잠겨있었지만 여전히 완정하게 보존되어 있었으며 조형이 정교하고 아름다워 송나라 시기의 발달한 해상 무역을 제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복건성 고고학연구소 전 소장인 가건안(賈建安) 연구원은 옛날 해외에 수출된 자기 중에서 천주의 덕화가마 백자가 뛰어난 대표라고 말했다.

"송나라 때 청백자기로 불렸습니다. 당시 중국이 해외에 수출한 자기 가운데서 주요한 자기 품종이었습니다. 현재 '남해1호'에서 덕화자기는 아주 중요한 지위를 차지합니다. 중고급 자기에 속합니다. 그리고 그 수가 상당합니다. 해외에서 아주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다. 천주 엣성 지하에서도 대량의 도자기가 출토되었다. 이런 도자기는 송나라와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시기인 것이 많다. 이 도자기들은 송나라와 원나라 시기 해외에 도자기를 판매하던 주변의 여러 주요한 생산지에 널려 있다. 가건안 연구원은, 이는 옛날 천주가 전국적으로 해외에 도자기를 수출한 중요한 무역 집산지이며 각 지역의 도자기는 천주를 통해 해외에 운반되었음을 설명한다고 말했다.

"해외 항구와 부두 심지어 침몰선에서 모두 이런 동일한 도자기가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은 이 도자기가 해외에 수출되었다는 아주 좋은 빙증입니다. 이런 도자기는 천주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은 천주가 아주 중요한 집산지로서 여러 지역의 상품이 한데 모였고 다시 천주에서 해외에 운송되었음을 설명합니다. 때문에 이런 도자기를 침몰선과 비교하고 또 해외의 발견과 대조하면 천주가 옛날 해양무역중심의 지위에 있엄음을 잘 설명합니다."

천주 항구에서 수출된 상품은 당연히 자기 뿐만 아니다. 비단, 찻잎 등도 있다. 방대한 운수망은 해외 무역운행을 지탱하는 대동맥으로 되었다. 천주해외교통역사박물관 임한(林翰) 부관장은 박물관에 있는 송나라와 원나라 시기 천주의 운수집산 사진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항구에 중국의 복선(福船)이 있을뿐만 아니라 아랍지역의 삼각돛 선박이 있었다는 것도 보아낼 수 있습니다. 그때 배가 접안한 후 선원이 화물을 배위에 날랐습니다. 일부 선박은 너무 커서 접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삼판을 내려놓아 선박과 잏고 화물을 날라 올렸습니다. 그때 중국에서 수출된 것은 주로 비단, 도자기, 찻잎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천주의 특산물도 있습니다. 외국에서 중국에 운반된  대부분 물품은  향료입니다."

향료는 옛날 중국 상선이 운반했던 중요한 무역품이다. 천주 해외 교통역사박물관에는 남송 시기의 침몰선에서 발견된 용연향과 유향이 소장되어 있다.

임한 부관장은 이렇게 말했다.

"유향은 소말리아에서 중국에 운반되었습니다. 사실 이 침몰선에 앞선 2백여년 동안 천주는 벌써 조정에 4.4만 킬로그램의 유향을 공납했습니다. 이로부터 그때 천주의 해외무역이 번성도를 알 수 있습니다."

빈번한 상업무역 왕래는 상이한 문화의 융합을 촉진했다. 송나라와 원나라 시기의 대량의 건축 유적, 종교 석각은 지금까지 보류되어 있다. 이것은 그때 천주가 동서방 문화교류에서 차지한 중요한 지위를 인증한다.

중국인민대학 역사학원 위견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천주가 현재 중국 세계문화유산 신청에서 성공한 도시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중서방의 문화교류, 해상 실크로드의 교류가 빈번했다는 점입니다. 석각에서 반영된 종교문화의 교류는 그때의 세계의 구조에서 세계문화에 대한 중국의 기여, 종교문화에 대한 중국의 겸용과 수용의 기본책략을 보여줍니다."

 

번역/편집 j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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