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7 11:01:47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12] 성도: 천혜의 땅

(사진설명: 아름다운 성도)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열두 번째는 천혜의 땅이라 불리는 사천(四川)의 성도(成都)이다. 장강(長江) 상류에 위치한 고대 문명의 중심지인 성도의 산과 들에는 조상들이 남긴 흔적이 지금까지 많이 남아 있다.

중국 서남쪽의 고성 성도는 과거 촉한(蜀漢)의 도읍이었고 따라서 성도에는 말하고 말해도 끝이 없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이야기들이 오랜 세월 동안 전해져 내려온다.

중국 서북지역의 고원과 사천(四川) 중부의 구릉 지대 사이에 위치한 성도는 오늘날 사천성의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자 중국의 유명한 역사문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사진설명: 성도의 옛 거리)

4세기에 촉(蜀) 왕 개명씨(開明氏)의 자손이 촉의 도읍을 성도로 천도하고 이 곳에 성곽을 축조해서부터 성도는 24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1년 만에 성읍(成邑)하고 2년 만에 성도(成都)했다고 해서 성도(成都)라 부르게” 되었다.

기원전 311년 촉수(蜀守) 장약(張若)이 함양(咸陽)의 성곽을 모방해서 성도성(成都城) 축조를 시작했고 이듬해 축성을 마쳤다. 성도는 기반이 습하고 약해 성을 쌓기가 어려워 지세를 따라 성벽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대성(大城)과 소성(小城) 두 부분으로 나뉘는 성도성은 네모나지 않고 거북이 모양과 비슷해 성도는 ‘거북이 도시’라고도 불린다.

221년 유비(劉備)가 성도에서 황제로 칭하고 국호를 한(漢)이라 했다. 역사는 이 한 나라를 촉한(蜀漢) 혹은 촉(蜀) 이라 부른다. 263년 위(魏) 나라가 촉을 점령하면서 성도는 43년의 국도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사진설명: 성도의 금사 유적지)

그 뒤 서한(西漢) 후반에 공손술(公孫述)이 성도에서 황제로 칭했고 한무제(漢武帝)는 촉의 땅에 인구가 많은 것을 감안해 성곽을 개조하고 외성을 새로 쌓았으며 치도(馳道)를 건설했다.

한(漢) 나라 때 성도의 채색무늬 공단(織錦)업이 발달해 정부는 이에 관한 전문기관인 ‘금관(錦官)’을 두어 관리했으며 이에 따라 성도는 ‘비단의 도시’라 불리기도 한다.

오대(五代) 때에는 후촉(後蜀)의 군주인 맹창(孟昶)이 고성의 성곽에 부용나무를 심어 가을이 되면 아름다운 부용꽃이 곳곳에 피어난다고 해서 성도는 일명 ‘부용의 도시’라고도 부른다.

(사진설명: 성도의 무후사)

40여 년간 촉 나라의 국도가 되었기 때문에 성도에는 많은 촉 나라 유적이 남아 있다. 성도시 남쪽 교외에 위치한 무후사(武候祠)는 221년에 삼국(三國) 시기 촉 나라의 승상 무향후(武鄕侯) 제갈량(諸葛亮)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면적 37,000㎡의 무후사는 촉 나라의 선주(先主) 유비(劉備)의 소열묘(昭烈廟)와 이웃한다. 명(明) 나라 초반에 무후사와 소열묘는 하나로 합쳐 군주와 신하가 함께 하는 독특한 구도를 형성했으며 따라서 무후사의 정문에는 ‘한소열묘(漢昭烈廟)’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남쪽을 바라보는 한소열묘의 앞쪽에는 소열묘가 자리하고 그 뒤에 무후사가 위치한다. 오늘날의 건물은 청(淸) 나라 때인 1672년에 개축한 것이다. 사당에는 809년에 조각한 유명한 당(唐) 나라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비석의 글은 서예가 유공작(柳公綽)이 쓰고 노건(魯建)이 조각했는데 글과 서예, 조각기법이 모두 훌륭해서 후세에 ‘삼절비(三絶碑)’라 불리기도 한다.

(사진설명: 무후사의 일각)

엄밀한 구도를 자랑하는 사당은 대문(大門)과 이문(二門), 유비전(劉備殿), 제갈량전(諸葛亮殿)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건물과 건물은 회랑으로 연결되어 웅혼하면서도 아름답다. 유비전과 나란히 한 제갈량전은 건물이 높고 넓으며 내부에는 금박을 칠한 제갈량 조손 3대의 조각상이 공양되어 있다.

예로부터 촉의 땅에서는 많은 인재가 나고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도 이 곳에서 나서 서한(西漢) 시기 성도는 ‘이 세상 최고의 문장’이 나는 곳으로 인정되었다.

문학가 사마상여(司馬相如)와 양웅(揚雄)은 중국 한부(漢賦) 창작의 대표이자 중국 문학사상 최초로 개인 전집을 펴낸 몇몇 안 되는 작가들이다. 진(晉) 나라 때의 성도사학자 상거(常璩)는 중국 최초의 지방지(地方志) 저서인 <화양국지(華陽國志)>를 펴냈다.

(사진설명: 책으로 보는 화간집)

후촉(後蜀)의 성도 사인(詞人) 조숭(趙崇)은 중국 문학사상 최초의 사집(詞集)인 <화간집(花間集)>을 편집했고 후촉의 군주 맹창은 “새로운 한 해 조상의 덕을 물려 받고 아름다운 명절은 영원한 봄빛을 예시하네”라는 중국 최초의 설 대련을 어필로 썼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성도지역은 경제와 문화가 번창하고 사회가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많은 문인들은 성도를 동경했다. 중국의 문학사상 많은 유명한 시인들이 모두 성도를 방문해서 성도를 문학 창작의 본거지나 두 번째 고향으로 여겼다.

그 대표적인 시인들로는 왕발(王勃)과 이백(李白), 두보(杜甫), 고적(高適), 이상은(李商隱), 육유(陸游), 범성대(范成大)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밖에 근현대 문학의 대표주자들인 곽말약(郭沫若)과 파금(巴金), 생물학자 주태현(周太玄), 신해(辛亥) 혁명의 선구자인 팽가진(彭家珍) 등도 성도에서 태어났거나 성도에서 학문에 정진했다.

(사진설명: 성도의 두보초당)

성도시 서쪽 교외의 완화계(浣花溪) 기슭에 위치한 두보초당(杜甫草堂)은  당 나라 때 유명한 시인 두보가 안사(安史)의 난을 피해 성도에 왔을 때 머물던 저택이다.

두보는 이 곳에서 4년 간 머무는 동안 247수의 시를 창작했다. 그의 유명한 시 ‘초가집이 가을 바람에 날려 가는구나(茅屋秋風所破歌)’가 바로 이 곳에서 창작되었다.

북송(北宋) 때 신축한 두보초당은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부지 20만 ㎡의 초당은 대해(大廨)와 도사당(濤史堂), 시문(柴門), 공부사(工部祠) 등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초당 앞에는 수목이 울창하고 맑은 물가에 붉은 꽃이 화사하게 피어 정자, 누각, 연못, 방갈로와 조화를 이룬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망강루 공원)

금강(錦江)의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망강루(望江樓) 공원은 당(唐) 나라 때 유명한 시인 설도(薛濤)를 기리기 위해 조성했다. 당시 설도는 이 곳에서 우물을 길어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숭려각(崇麗閣)과 탁금루(濯錦樓), 완정(浣亭) 등 건물을 보유한 망강루 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대나무숲이다. 공원 곳곳에 온갖 귀중한 대나무가 자라는 망강루 공원은 이로 인해 ‘금성의 대나무 공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명(明) 나라와 청(淸) 나라 때에 조성된 숭려각은 웅장하면서도 화려하다. 높이 39m에 도합 4층으로 된 숭려각은 붉은 기둥에 푸른 기와를 얹었으며 지붕의 보정(寶頂)에는 금박을 칠했다. 금강의 기슭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망강루라고도 하는 숭려각은 성도의 심벌이자 금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사진설명: 청양궁의 구리 양)

성도의 서쪽에 위치한 청양궁(靑羊宮)은 서남 지역 최대 규모의 도교(道敎) 암자이다. 청양궁은 당(唐) 나라 때 신축했으나 오늘날의 건물은 청 나라 때 개축한 것으로 영조전(靈祖殿)과 건곤전(乾坤殿), 팔괘정(八卦亭), 투로전(鬪姥殿), 당왕전(唐王殿), 노자장생대(老子將生臺), 설법대(說法臺)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삼청전(三淸殿) 앞에 있는 구리로 주조된 한 쌍의 청 나라 때 양 동상이다. 모양이 기이한 이 양 동상은 도교 문화를 연구하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기나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성도는 오대십국(五代十國) 시기 전촉(前蜀) 황제의 능묘인 수릉(水陵)과 불교 문화재의 집산지인 문수원(文殊院), 그리고 21세기 고고학의 중대한 발견인 금사(金沙) 유적지 등 다양한 유적지도 거느린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청성산)

‘천혜의 풍경’과 ‘판다의 고향’, ‘촉한의 문화’ 등 3대 특색을 자랑하는 성도는 서령(西嶺) 설산과 청성산(靑城山), 구봉산(九峰山), 구룡구(九龍溝), 천대산(天臺山), 용천호(龍泉湖), 계호(桂湖), 황룡계(黃龍溪), 고요한 시골풍경 등 다양한 자연경관으로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기도 한다.

성도시 판다 번식기지에는 세계 80% 이상의 판다가 서식하며 이로부터 성도는 ‘판다의 고향’이라 불린다. 이 곳에서는 귀여운 판다를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판다에 관한 최신 과학연구 성과도 알아볼 수 있다.

일찍부터 ‘촉희관천하(蜀戱冠天下)’라는 미명을 자랑하는 성도는 중국 희곡의 고향이기도 하다. 청 나라 때 형성된 천극(川劇)은 중국의 중요한 지방 극의 하나이다.

(사진설명: 천극의 탈)

천극에서 특히 유명한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얼굴에 쓴 탈을 바꾸는 ‘변검(變瞼)’과 입으로 불을 토해내는 ‘토화(吐火)’ 등 기교이다. 변검은 한 명의 배우가 무대에서 여러 가지의 탈을 바꾸어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천극 고유의 형식인 변검은 극중 인물의 마음과 사상, 감정, 즉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추상적 정서와 심리적 상태를 보이기도 하고 만질 수도 있는 세부적인 이미지인 탈로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변검의 탈은 최초에 두꺼운 종이로 만들었으나 후에는 엷은 종이로 만들다가 오늘날은 비단으로 만든다. 변검의 탈은 주로 귀신이나 도깨비 형상을 한 인물을 보여준다.

(사진설명: 사천요리 중 단단면)

사천요리인 천채(川菜)는 광동(廣東) 요리, 산동(山東) 요리, 회양(淮陽) 요리와 함께 내외에 이름이 자자한 중국 4대 요리를 구성한다. 사천요리는 식재료를 엄선하고 조리법이 까다로우며 맛이 다양한 등 특징을 가진다.

특히 다양한 맛과 변화하는 맛을 추구하는 사천요리는 ‘요리마다 독특한 풍격을 자랑하고 백 가지 요리가 백 가지 맛을 가진다’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 밖에 성도에서는 가격이 저렴하고 맛이 좋은 스낵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 매콤한 국수 단단면(担担面)과 물만두 용초수(龍抄手), 매콤한 두부 요리 마파두부(麻婆豆腐), 소 내장 무침 부처폐편(夫妻肺片) 등이다.

(끝)

공유하기:
뉴스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