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5 09:39:47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18] 여강: 예스러운 문화의 도시

(사진설명: 아름다운 여강)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열여덟 번째는 예스러운 문화의 도시 여강(麗江)이다. 여강은 시간을 잊게 하는 곳이자 한 번 가면 떠나기 싫은 곳이기도 하다.

산 고장의 특색도 보유하고 물 동네의 경관도 자랑하는 여강에서는 시냇물이 모든 주민의 집 앞을 흘러 지나 문을 열면 흐르는 물이요 창문을 열면 휘늘어진 수양버들이 반겨준다.

운남(雲南)의 서북부, 사천(四川)과 티베트 접경지대에 위치한 여강은 나시(納西) 족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겨울에 춥지 않고 여름에 덥지 않는 여강은 ‘고산 위 봄도시’라 불린다.

(사진설명: 여강고성 전경)

천여 년 전의 남녕(南寧) 시대에 벌써 어느 정도의 규모를 형성한 여강고성은 사면에 산발이 둘러서고 맑은 물이 감돌아 흐르는 아름다운 옛 도시이다. 해발고도 2,400m 의 둔덕에 자리잡은 여강은 북쪽으로 상면산(象眠山), 서쪽으로 사자산(獅子山), 남쪽으로 문필산(文筆山)과 이웃하며 그 사이로 맑은 강물이 흐른다.

여강은 중국의 역사 문화의 옛 도시 중 유일하게 성곽이 없는 고성(古城)이다. 전한데 의하면 여강의 세습제 지배자의 성씨가 목(木)인데 성곽을 축성하면 갇힌다는 의미를 가진 곤(困)자를 방불케 한다고 해서 종래로 성을 축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강고성은 성을 쌓지 않은 도시 사면의 험준한 지세를 이용해 탑문관(塔門關)과 석문관(石門關), 구문관(九門關), 태자관(太子關), 구당관(邱塘關) 등 다섯 개의 관문을 두었다.

(사진설명: 여강의 토사관아)

여강을 관리하는 기관이었던 토사(土司) 관아는 도시의 남쪽에 위치해 있고 주변에 많은 왕궁의 전각과 정원을 거느린다. 고성의 북쪽은 사방가(四方街)를 중심으로 하는 상가이고 동쪽은 유관(流官) 관아의 소재지이다.

여강고성의 디자이너는 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고성 동북쪽의 흑룡담(黑龍潭)에서 흘러나와 남쪽으로 흐르는 옥천수(玉泉水)는 여강고성이 가까워지면 동하(東河)와 중하(中河), 서하(西河) 세 갈래로 나뉘어 여강으로 흘러 들고 이어 수많은 갈래로 나뉘어 건물을 안고 돈다.

(사진설명: 여강고성의 물길)

2,3m 너비의 시냇물 양쪽에는 푸른 버드나무가 자라 맑은 물 위에 녹음과 그 녹음 속의 예스러운 고건물이 거꾸로 비껴 아름다운 조화의 극치를 이루며 이 고산 지대에서 집집마다 문 앞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강남의 도시를 만든다.

물이 있으면 다리가 있기 마련이다. 여강 고성의 수많은 물길 위에는 도합 345개의 다리가 놓여져 밀도로 보면 1㎢의 땅에 평균 93개의 다리가 있는 셈이다.

여강의 다리들은 모양도 다양하다. 풍우교(風雨橋)와 아치 석교, 석판 석교, 목판교 등 풍격이 상이한 다리들이 여강을 명실공히 ‘교성(橋城)’, 다리의 도시로 만든다.

(사진설명: 명대목부의 일각)

명대목부(明代木府)는 중원 황궁의 풍격을 가지는 왕성(王城)이다. 명나라 때 여강 목부의 두령은 목득(木得)이었다. 그는 산중에서 넓은 세상을 내다 보고 산악지대를 벗어나 중원의 당시 명 나라 때 국도에 이르렀다.

명 나라 도읍 북경(北京)에서 그는 눈부신 자금성(紫禁城)에 감탄하고 짙은 중원문화에 매료되어 나시(納西)로 돌아온 후 중원지역의 생산기술과 문화교육제도를 적극 도입하고 중원의 명사들을 널리 사귀었다.

그는 또 건축과 광산, 공예 등 여러 분야의 내륙 인재들을 여강에 초청했으며 그 결실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중원 황궁의 풍격을 가진 왕성, 즉 명대목부였다.

(사진설명: 여강고성의 가옥)

부지 40만 ㎡의 목부는 지세를 따라 줄지은 충의방(忠義坊)과 의문(儀門), 만권루(萬卷樓), 광벽루(光碧樓), 옥음루(玉音樓) 회랑, 그리고 수십 개의 마당과 사자산의 어원(御苑)을 거느려 웅장한 규모와 화려한 건물로 ‘여강의 자금성’이라 불린다.

일반 백성들의 민가는 다수가 문을 동쪽으로 내고 홀이 넓고 크며 창틀에는 꽃과 새 등 무늬를 조각해 짙은 문화적 분위기를 풍긴다. 여강고성의 사람들은 또 정원에 꽃나무를 심고 분재를 가꾸기를 좋아해 여강에는 꽃나무가 없는 곳이 없다.

여강고성의 거리와 골목에는 모두 붉은 색의 사암으로 된 바닥재를 깔아 장마에는 질척거리지 않고 맑은 날에는 먼지가 날리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라 수십 세대를 걸쳐 사람들이 걷고 밟아서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바닥은 고성과 조화를 이루며 고성 고유의 볼거리가 되었다. 

(사진설명: 여강고성의 거리)

고성의 중심에 위치한 사방가(四方街)에는 예로부터 상가가 집중되고 거래가 흥성하는 곳이자 명절날 장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 곳 거리와 골목에는 오색의 돌을 깔아 다채롭다.

여강고성의 거리를 거닐면 거리의 양쪽에 가게들이 즐비한데 입구에서 주인이 호객행위를 하는 가게는 하나도 없다. 그들은 손님의 행방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가 손님이 자신의 가게에 들어서서 어느 한 상품에 눈길을 주면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그 상품의 역사와 용도, 가격을 설명한다.

가게에 손님이 없을 때면 그들은 바깥세상이 그들과는 전혀 무관한 듯 두터운 책 하나를 들고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천천히 책장을 한 장씩 넘긴다.

(사진설명: 여강고성의 만고루)

여강고성의 심벌인 만고루(萬古樓)는 다섯 겹의 지붕을 한 탑 모양의 누각이다. 목조 건물로 된 이 만고루는 높이가 여강 나시족 자치현의 33만명의 현민을 대표하는 33m에 달한다.

날아갈 듯 건듯 들린 13개의 지붕 귀퉁이는 옥룡산(玉龍山)의 13새 설봉을 의미하고 지붕까지 뻗은 16개의 나무 기둥은 나시족의 전설 중 하늘을 연 개천(開天) 9 형제와 땅을 가른 벽지(劈地) 7자매의 전설을 대변한다.

만고루에 올라서면 동쪽으로 아담한 다리와 맑은 물가에 자리잡은 여강고성이 한 눈에 보이고 북쪽으로는 저 멀리 신기하고 아름다운 옥룡설산의 빼어난 경치를 볼 수 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옥룡설산)

여강고성의 북쪽에 위치한 옥룡설산은 남북방향으로 35km, 동서방향으로 12km 뻗어 있는데 정상에는 일년 사시절 하얀 눈이 덮여 있어서 옥으로 된 용이 구름 속에 드러누운 듯 황홀하다.

옥룡설산에서는 얼음 폭포를 망라한 고대 지모의 무궁한 변화도 볼 수 있다. 아름다운 산수는 거의 다 섭렵한 명 나라 여행객 서하객(徐霞客)도 아름다운 여강에 매료되어 여행수기에서 여강을 이렇게 묘사했다.

“맑은 물이 나지막한 둔덕을 돌아 흐르며 벌판을 적시고 또 다른 한 갈래 시냇물이 동산(東山)에서 흘러 나와 더 넓은 땅을 관개한다. 그리고 서남쪽의 문필산에서 흘러 내린 물은 동쪽으로 흐르며 삼생교(三生橋)에서 다른 두 물줄기와 합류해 넓은 강물을 형성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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