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0 10:04:56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21] 랑중: 웅장한 풍수의 도시

(사진설명: 아름다운 랑중고성)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스물한 번째는 웅장한 풍수의 도시 랑중(阆中)이다. 사천(四川)의 랑중은 운남(雲南)의 여강(麗江), 산서(山西)의 평요(平遙), 안휘(安徽)의 흡현(歙縣)과 함께 중국 4대 고성에 든다.

중국 4대 고성 중에서 흡현과 여강고성은 집집마다 문 앞으로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강남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평요고성의 특징은 웅장함이다. 그와 반면에 랑중고성은 유구한 역사와 특색 있는 민가로 사람들에게 랑중만의 매력을 펼쳐 보인다.

사천 북부, 가릉강(嘉陵江) 서쪽 기슭에 위치한 랑중은 사면에 산발이 둘러서고 삼면으로 강물이 감돌아 흐르면서 천연의 병풍을 형성한다. 또 랑중은 지난 2천여 년 동안 사천을 드나드는 촉도(蜀道) 남쪽 코스의 요충지로도 인정된다.

(사진설명: 랑중고성의 전경)

과거에 랑원(阆苑)이라 불린 랑중은 상고시대 제왕인 복희(伏羲)씨가 태어난 곳이라고 전해진다. 전국(戰國) 시기 중반 랑중은 파(巴) 나라의 별도(別都)가 되어 파나라는 이 곳에서 7개국과 세상을 다투었고 이로 인해 랑중은 경제와 군사적으로 중요한 도시로 성장했다.

기원전 314년 진(秦) 나라가 파나라를 멸한 후 진혜왕(秦惠王)은 이 곳에 랑중현을 두었다. 그때부터 촉의 땅에 설립된 최초의 현인 랑중현은 오늘날까지 23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가릉강 기슭에 위치한 랑중고성은 원래는 현재의 현성에서 10km 거리의 백사패(白沙坝)에 위치했는데 한(漢) 나라 초반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후에 장비(張飛)가 성을 증축하면서 거리에 돌을 깔고 청색의 벽돌로 성을 쌓았다.

(사진설명: 랑중고성의 성문)

명(明) 나라 때에 이르러 또 증축하면서 성벽의 안팎을 돌로 쌓고 성곽의 위에 건물을 지었으며 4개의 성문을 내고 성문 위에는 월성(月城)을 지었다. 그 뒤에 또 성벽의 바깥 쪽에 해자를 파고 해자의 물이 강물에 흘러 들게 했다.

과거 랑중은 사천 북부의 중요한 도시이자 진 나라에서 촉으로 드나드는 교통 요충지였다. 미창(米倉)과 금우(金牛) 대도 등 육로가 랑중을 경유하고 수로로는 가릉강이 랑중을 흘러 지나는 이 곳은 예로부터 군사가들이 너도 나도 다투는 곳이었다.

삼국(三國) 시기 유비(劉備)는 익주(益州)에 도읍을 둔 후 장비를 보내 7년이나 랑중을 지키게 했고 당(唐) 나라 때는 등왕(騰王)이 랑중 자사(刺史)로 임명되어 랑중을 수비했다.

(사진설명: 랑중고성의 건물)

청(淸) 나라 초반에는 남명(南明)의 장군 조영귀(趙縈貴)가 랑중에 주둔했는데 청 나라 평서왕(平西王) 오삼계(吳三桂)가 대군을 거느리고 사천에 들어와 랑중에서 조영귀와 결전을 벌였다. 그 밖에 역대의 농민 봉기군도 모두 랑중을 거점으로 삼았다.

산과 물, 도시가 어우러진 랑중고성은 ‘랑원선경(阆苑仙境)’이라 불리며 ‘현무(玄武)가 머리를 숙이고 주작(朱雀)이 춤을 추며 청룡(靑龍)이 구불구불하고 백호(白虎)가 저택을 지키는’ 풍수를 보여준다. 랑중은 고성 전체가 좋은 풍수를 자랑할 뿐만 아니라 건물 하나하나도 모두 고대 중국의 풍수관을 잘 보여준다.

지리적 환경의 폐쇄로 인해 랑중고성은 상대적으로 잘 보존되었다. 오늘날 보는 랑중고성의 전체적인 구도는 당(唐) 나라와 송(宋) 나라 때 형성되었고 주요 건물은 명(明) 나라와 청(淸) 나라 때 신축한 것이다.

(사진설명: 랑중고성의 거리)

랑중고성에는 59갈래의 옛 거리가 있고 거리 양쪽에는 여러 개의 뜰을 거느린 60여 채의 민가가 산재해 있다. 또 장원가(壯元街)와 학도가(學道街), 관성가(管星街), 삼진가(三陳街) 등 고성의 거리들은 명칭도 저마다 고유의 함의와 각자의 역사를 보유한다.

고성의 건물들은 남방과 북방의 건물양식을 아우른다. 랑중에서는 북방 고유의 사합원(四合院)도 만날 수 있고 남방 고유의 정원식 건물과 독특한 모양의 안휘(安徽) 풍격의 건물들도 볼 수 있다.

건물들은 전통적인 풍수 이론을 구현한 동시에 중앙의 마당을 둘러싸고 주변에 건물이 많을 다(多)자나 물건 품(品)자의 모양으로 펼쳐진다. 또 건물의 문틀이나 창틀에는 다양한 내용의 조각이 즐비해 랑중고성은 ‘파촉 고건물 실물의 보고’라 불리기도 한다.

(사진설명: 랑중고성의 백탑)

유구한 역사는 랑중에 중국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청 나라 때 과거시험장인 공원(貢院)과 랑중고성 풍수의 심벌인 백탑, ‘랑중의 제일 건물’로 인정되는 광화루(光華樓), 이슬람 신도들이 참배하는 바바(巴巴) 사원, 장비를 기리기 위해 지은 한환후사(漢桓侯寺) 등 수많은 유적을 남겼다.

백탑은 랑중고성 동쪽, 가릉강의 맞은 켠에 자리잡은 탑산(塔山)의 정상에 우뚝 솟아 있다. 명 나라 중반에 축조한 누각 양식의 경관 탑인 백탑은 랑중고성 풍수의 좌표이기도 하다.

높이 36.24m의 백탑은 팔각의 추체(椎體)형으로 마치 거대한 죽순이 푸른 하늘을 향해 치솟은 듯 하다. 백탑 내부의 나선형 계단을 통해 탑의 정상에 올라서면 아름다운 가릉강이 한 눈에 안겨온다. 단, 문천(汶川) 강진 때 12층 높이 중 6층이 무너져 유감을 자아낸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화광루)

판룡산(蟠龍山) 자락에 자리잡은 바바사원은 이슬람 신도들의 성지이다. ‘바바(巴巴)’란 아랍어로 ‘조상’을 뜻하며 랑중의 바바사원은 제일 첫 사람으로 중국에서 이슬람교를 전도한 아부둥라시의 무덤이다. 부지 13,000㎡의 사원에는 벽돌 조각과 목각이 아주 정교하며 정원과 무덤은 중국 서부의 건축양식을 자랑한다.

랑중고성의 많은 누각 중 가장 일찍 축조되고 기세가 가장 웅장한 화광루(華光樓)는 랑중고성의 심벌로 인정되며 ‘망원의 첫 번째 건물’이라 불리기도 한다.

화광루는 높이가 36m에 달하는데 귀퉁이가 건듯 들린 세 겹의 지붕에는 초록색의 유리 기와가 덮여 있다. 화광루는 또 전부 목조 건물로 되어 있으며 내부에 조성된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서 난간에 기대어 저 멀리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 볼 수도 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랑중과 금병산)

랑중고성에는 풍부한 역사유적이 남아 있는 동시에 풍부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도 많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자연명소는 고성 남쪽 교외에 위치한 금병산(錦屛山) 풍경구이다.

산세가 독특하고 험준한 금병산은 해발고도가 480m에 달한다. 유교(儒敎)와 불교, 도교(道敎)를 한 몸에 모은 금병산은 예로부터 ‘가릉(嘉陵)의 제일 강산(江山)’이라 불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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