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7 09:11:14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26] 진원: 태극의 도시

(사진설명: 아름다운 진원고성)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스물 여섯 번째는 태극의 도시 진원(鎭遠)이다. 천혜의 녹수청산과 소박하면서도 아늑한 물의 도시 특색은 진원을 속세를 벗어난 무릉도원, 꿈속과도 같은 선경으로 만든다.

귀주(貴州) 성의 동쪽, 호남(湖南) 성과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진원은 경치가 수려하고 역사가 유구한 옛 도시로 현재까지 중국에서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4대 고대 성지(城池) 도시 중 하나이다.

묘(苗) 족의 옛 도시인 진원은 서한(西漢) 때 무릉군(武陵郡)에 속했으며 기원전 202년의 한고조(漢高祖) 때 무양현(㶃陽縣)을 설치한 후부터 역대 왕조가 모두 이 곳에 현과 주(州), 부(府), 도(道)를 두었다.

(사진설명: 진원고성의 산과 물)

원(元) 나라 때부터 1949년까지의 700여년 동안 진원은 줄곧 주(州)와 부(府)의 행정 소재지였다. 1950년대에 이르러서도 이 곳은 검동남(黔東南) 묘족 자치주의 주도(州道)였다가 그 뒤에 주도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진원은 현(縣)이 되었다.

산중에 위치한 진원에는 온갖 물길이 모여든다. 또 산악 도시로서의 우월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진원은 예로부터 군사가들이 너도 나도 다투는 요충지가 되었다.

명(明) 나라 때 조정은 운남(雲南)에 거점을 둔, 명 왕조에 귀순하지 않는 원(元) 나라 잔여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수차의 전쟁을 일으켰으며 그 때마다 이 곳에 군대를 주둔했다.

(사진설명: 진원고성의 고건물)

중원(中原) 지역의 많은 상인들이 장강(長江)을 따라 동정호(洞庭湖)를 경유해 진원에 이르면서 진원은 또 경제와 문화의 번창을 이루었다. 그러면서 각지의 상인들은 각자 진원에 회관(會館)을 신축했는데 그 중 규모가 가장 크고 풍격이 가장 독특한 회관은 ‘천후궁(天後宮)’이다.

복건(福建)의 상인과 관리들이 자금을 모아 지은 천후궁은 일명 복건회관(福建會館)이라고도 불리는데 예스러운 이 회관은 진원의 8대 회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수려한 경치와 번창하는 경제로 인해 많은 귀족과 문인들이 진원을 찾아 풍부한 문화재를 남겼다. 그 중에는 삼국(三國) 시기의 유명한 군사가 제갈량이 남긴 제갈동(諸葛洞)과 청(淸) 나라 때 이 곳에서 군사를 훈련하던 군사가 오삼계(吳三桂)가 남긴 오동(吳洞)이 있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진원고성)

맑은 무양하(㶃陽河)는 진원고성을 흘러 지나며 갈지자를 그린다. 그 바람에 고성은 두 부분으로 나뉘고 고성의 중심을 흘러 지나는 강물은 도시에 음양 팔괘를 그린다. 강물을 사이 두고 남쪽과 북쪽에 각각 위치한 부성(府城)과 회성(懷城)은 태극무늬 중의 음과 양 두 점 역할을 한다.

고성의 물가에는 고건물들이 줄지어 있고 옛 거리의 양쪽에는 온갖 모양의 음식점과 가게들이 즐비하다. 고성의 주변에는 수려한 청산이 둘러서 녹수청산은 진원고성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한다.

‘아홉의 산이 물 한 갈래를 품고, 물길이 도시를 둘로 나눈’ 진원고성은 산과 물과 도시가 하나를 이루고 하늘과 사람이 하나로 어우러진 태극의 도시를 형성하며 ‘동양의 베니스’라 불리기도 한다.

(사진설명: 진원고성의 청룡동)

진원고성에는 오늘날도 위성(衛城)이 보존되어 있다. 명 나라 때인 1389년에 축조한 이 성벽은 둘레가 3.07km에 달하며 ‘귀주의 장성’이라 불리기도 한다. 지금은 없지만 원래는 성벽에 1,800여개의 성가퀴와 5개의 성루(城樓)도 있었다.

위성의 끝머리에 산세를 따라 축조한 청룡동(靑龍洞)이 있는데 명 나라 때 신축한 이 고건물은 고대 중국의 3대 ‘공중 건물’ 중 하나이다. 이 고건물의 군락은 청룡동과 자양동(紫陽洞), 중원동(中元洞), 만수궁(萬壽宮), 향로암(香爐岩), 축성교(祝聖橋) 등 33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벼랑에 기대어 축조된 건물은 하나 같이 날아갈 듯 한데 다섯 걸음에 건물이 보이고 열 걸음에 누각이 나타나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여러 민족과 여러 지역 건물의 특징이 어우러져 정교하면서도 우아하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축성교)

무양하를 가로 지른 축성교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최근까지도 동남아 각 나라 사절들이 베이징으로 갈 때 반드시 거쳐가는 요충지였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미얀마의 사절이 수차 진원을 거쳐가면서 이 축성교를 통과했다고 한다.

1950년대 자와할랄 네루 인도 총리는 방중 시 주은래(周恩來) 중국 총리에게 진원의 청룡동과 축성교를 언급했다. 그는 자신이 젊었을 때 진원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자신은 아름다운 진원고성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말했다.

산 좋고 물 맑은 진원고성은 아름다운 무양하와 웅장한 청룡동 고건물의 군락을 거느린다. 그 밖에도 고성의 주변에는 ‘귀주의 구채구(九寨溝)’라 불리는 철계(鐵溪) 풍경구와 역대 명인들의 높은 평가를 받은 진원 12경, 천태만상의 수많은 동굴과 기이한 바위명소들이 산재해 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진원고성)

2000여 년의 유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진원은 두터운 역사문화를 보유하고 수많은 눈부신 문화재를 보존하여 화려하고 다채로운 민족문화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오늘날 이 곳에서 생활하는 묘족과 동(侗) 족인들은 가무에 능해 해마다 명절이 되면 남녀노소 한 자리에 모여 소리 높이 노래를 부르고 흥겹게 춤을 추며 고성에 새로운 활력을 가미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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