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4 09:25:23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32] 요성: 호심 봉황의 도시

(사진설명: 아름다운 요성고성)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서른 두 번째는 호심 봉황의 도시 요성(聊城)이다. 요성고성에 들어서면 하늘을 찌르는 광악루(光岳樓)가 고성의 중심에 높이 솟아 있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산섬회관(山陝會館)이 중원(中原)인들의 우정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동창호(東昌湖)가 고성을 둘러싸서 푸른 물과 예스러운 고성이 어우러지며 ‘도심에 호수가 있고 호심에 도시가 있는’ 도시 구도를 형성한다. 이로 인해 요성은 ‘강북의 물의 도시’라 불리기도 한다.

산동(山東) 반도의 서부에 위치한 요성은 황하(黃河) 강이 동서로 도시를 흐르고 운하가 남북으로 관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지세가 평탄한 이 곳은 또 토지가 살찌고 물산이 풍부해 눈부신 보석이 노서(魯西) 벌판에 박혀 있는 듯 하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요성)

요성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약 기원전 1000년의 상(商) 나라 때 이 곳에는 미자국(微子國)이 세워졌고 춘추(春秋) 후반에는 요국(聊國)이었다가 제(齊)나라에 의해 요나라가 멸망한 후 나라 이름을 따서 요성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요성은 제나라 서부의 중요한 도읍이었다.

명(明) 나라와 청(淸)나라 때에 이르러 경제가 번창하고 문화가 창성한 요성은 운하 기슭의 9개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다. 당시 회관(會館)이 숲을 이루고 상가가 운집한 요성은 ‘수로의 요충지, 강북의 도시’라 불렸다.

운하의 서쪽 기슭에는 지금도 완전하게 보존된 산섬회관(山陝會館)이 있다. 산서(山西)와 섬서(陝西) 출신의 상인들이 자금을 모아 지은 산섬회관은 사당과 회관이 어우러진 고건물의 군락이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산섬회관)

청 나라 때인 1743년에 신축한 산섬회관은 3,300㎡의 넓은 부지에 산문(山門)과 무대 건물, 비정(碑亭), 관제전(關帝殿), 재신전(財神殿) 등 규모가 웅장하고 구도가 엄밀하며 장식이 화려한 온갖 건물 160여 채를 거느린다.

산섬회관은 중국의 고대 건축역사 연구에서 아주 높은 가치를 자랑하며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지역 출신이지만 사이 좋게 오가며 함께 살아온 고대 중국인들의 돈독한 우의를 증명하는 건물이기도 하다.

공중에서 요성고성을 내려다 보면 남문(南門)이 봉황의 머리와 유사하고 북문(北門)은 봉황의 꼬리를 방불케 하며 동쪽과 서쪽의 두 성문은 마치 나래를 활짝 편 봉황의 날개와 흡사해서 요성은 봉황의 도시라 불린다.

(사진설명: 웅장한 광악루)

구도가 독특한 요성고성은 송(宋)나라 때의 도시 구도를 유지하고 고성 중앙의 광악루(光岳樓)를 중심으로 네 갈래의 도로가 사면으로 뻗어쳐 나가며 주변에 해자를 거느린 네모 반듯한 모양을 가진다.

원(元)나라 후 운하의 개통과 함께 조성한 신도시는 운하 양쪽의 지세를 따라 벨트 모양으로 자유롭게 조성되어 반듯한 고성과 대조적이다. 명나라 초반에 송나라 때의 토성을 벽돌성벽으로 고치고 1372년에 성벽을 수선할 때 광악루를 신축했다.

광악루는 초기에 ‘여목루(餘木樓)’라 부르다가 후에 지명을 따라서 ‘동창루(東昌樓)’라고 개명했으며 그 뒤에 대악(岱岳)의 빛을 받는다는 의미로 광악루로 고쳐서 오늘날에 이른다.

(사진설명: 공중에서 본 광악루)

돈대(墩臺)와 건물 두 부분으로 구성된 광악루는 네 겹의 지붕을 떠 인 열 십자 모양의 누각이다. 건물의 높이와 돈대 하단의 둘레가 모두 고대 중국에서 최고의 양수(陽數)로 인정하는 9장(丈) 9척(尺)에 달한다. 최고의 높이임을 뜻하는 광악루는 요성고성의 심벌이기도 하다.

지난 600여년 간 광악루는 중국에서 가장 웅장하고 가장 높은 목조 누각 중의 하나였으며 많은 제왕과 문인들이 모두 요성을 경유하면서 이 누각에 올라멀리를바라보고 작품을 남겼다.

청나라 강희(康熙)제는 네 번이나 광악루에 올랐으며 건륭(乾隆)제는 아홉 번 요성을 경유한 중에 여섯 번 누각에 올라 ‘광악루’라는 편액을 쓰고 시 13수를 남겼다.

(사진설명: 광악루에서 본 동창호)

광악루에 올라 사면을 바라보면 넓은 수면의 동창호가 한 눈에 보인다. 맑은 호숫물은 마치 거대한 채색의 벨트처럼 고성을 감돌고 고성의 곳곳에 흘러 든 호숫물은 마치 눈부신 거울조각을 방불케 하며 ‘도심에 호수가 있고 호심에 도시가 있으며 도시와 호수와 강이 하나로 어우러진’ 독특한 수상 도시의 구도를 형성한다.

송(宋) 나라 때인 1070년에 형성된 동창호는 고성을 둘러싼 해자를 역대에 걸쳐 확장하면서 조성된 호수이다. 수면 면적 4.2㎢, 수심 2~3m의 동창호는 장강(長江) 이북 최대의 호수이다. 물이 성을 감돌아 흐르는 기이한 경관으로 인해 요성은 ‘강북의 물의 도시’라 불리기도 한다.

운하기슭의 철탑도 동창호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형성하며 고성 요성에 아름다움을 가미한다. 천여 년 전의 북송(北宋) 때에 세워진 철탑은 팔각형의 목탑을 모방했고한 쇠를 주조하여 만들었으며 요성에서 가장 오래된 축조물이기도 하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요성고성)

12층의 철탑 높이는 15.8m에 달하며 기단에 여러 가지 모양의 온갖 정교한 조각이 즐비해 눈을 어지럽힌다. 또 무쇠로 층별로 탑을 주조한 후 순서대로 조립한 이 철탑은 ‘동창의 세 가지 보물’ 중 으뜸이다.

요성에서는 역대로 유명한 인물들이 많이 났다. 상(商) 나라의 임금을 보좌한 현명한 재상 이윤(伊尹)과 춘추(春秋) 시기의 유명한 재상 안영(晏嬰), 군사가 손빈(孫臏), 항일의 명장 장자충(張自忠) 등이 모두 요성출신이다.

요성은 또 중국에서 유명한 서커스 예술의 고장과 경극(京劇) 예술의 고장, 민간 전지예술의 고장, 민간 서예 예술의 고장이기도 하다. 이 곳에서 나는 조각과 목판 세와 등은 모두 산동 서부의 짙은 생활적 분위기를 나타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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