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1 11:16:47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37] 소주: 아름다운 정원의 도시

(사진설명: 아름다운 소주)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서른 일곱 번째는 아름다운 정원의 도시 소주(蘇州)이다. 양쪽으로 하얀 담벽에 검정 기와의 건물이 즐비한 거리를 거닐고 가냘프고 은은한 노랫소리를 들으며 처마 밑에서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 너머로 고요한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아름다운 ‘천당’의 도시 소주이다.

장강(長江) 하류, 태호(太湖) 기슭에 위치한 소주는 2500여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짙은 오(吳) 문화를 보유한 옛 도시이다. 약 기원전 11세기에 현지의 부족이 스스로를 ‘구오(勾吳)’라 부르면서 소주는 ‘오(吳)’와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었다.

기원전 514년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부친 합려(闔閭)가 오자서(伍子胥)에게 명해서 축성한 합려성(闔閭城)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으며 이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다. 합려성은 후에 성의 서남쪽에 위치한 고소산(姑蘇山)으로 인해 고소성(姑蘇城)이라 불렸으며 고소성이 위치한 도시는 소주라 부르게 되었다.

(사진설명: 소주의 골목)

고소성 안팎은 경치가 수려하고 태호 기슭에는 영암산(靈岩山)과 천평산(天平山), 천지산(天池山), 동정산(洞庭山)이 줄지어 강남 고유의 아름다운 화폭을 그린다.

아름다운 정원도 있고 빼어난 산과 물도 있으며 자연과 인문경관이 어우러진데다 문인묵객들의 글도 가미되어 소주는 항주(杭州)와 함께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이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는 미명을 자랑한다.

소주 고성은 아주 작아서 옛 도시를 한 번 도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미궁과도 같은 골목을 다 걸어 보려면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소주의 볼거리들은 모두 이런 골목 깊이 숨어 있으니 골목을 빼놓을 수도 없다.

(사진설명: 소주의 물길)

소주의 골목 여기저기에는 아늑한 마당을 홀로 지키는 우물과 골목의 한쪽 귀퉁이에 세워진 비석, 정교한 조각이 눈을 어지럽히는 대저택의 창문 등 눈부셨던 어제를 그대로 담은 많은 볼거리들이 남아 예스러움을 자랑한다.

소주에서는 또 정원을 빼놓을 수 없다. ‘강남의 정원이 이 세상에서 으뜸이고 소주의 정원은 강남에서 으뜸이다’라는 말이 있으며 소주의 정원은 ‘봄과 여름, 가을, 겨울 모두 경관이 있고 흐리거나 개이거나 눈과 비가 내리거나 모두 운치를 자아낸다’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소주의 정원은 복제할 수 있으나 소주의 운치와 풍토는 소주에서만 느낄 수 있다. 소주에는 크고 작은 정원 200여개가 있으며 졸정원(拙政園)과 유원(留園), 창랑정(滄浪亭), 사자림(獅子林), 곡원(曲園), 창원(暢園)을 비롯해 완전하게 보존된 정원도 수십 개에 달한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졸정원)

졸정원은 강남 정원의 대표이자 소주 정원 중에서 면적이 가장 큰 정원이다. 이 곳은 처음에는 당(唐)나라 때 시인 육구몽(陸龜蒙)의 저택이었는데 명(明)나라 때의 어사(御史) 왕헌신(王獻臣)이 벼슬에 실의를 느끼고 소주에 은둔한 후 이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유명한 화가인 문정명(文征明)을 설계에 참여시키고 16년에 걸쳐 정원을 신축하고 자신과 같은 졸자(拙者)의 정치를 정원에 꽃을 심고 물을 주는 것에 비유해 졸정원이라 이름했다.

졸정원이 조성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왕헌지가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이 도박을 놀다가 하룻밤 사이에 정원을 서씨(徐氏)에게 잃었다. 그로부터 400년 동안 졸정원의 주인은 많이 바뀌었지만 정원은 담담하면서도 시원한 분위기의 명나라 풍격을 그대로 유지하며 ‘중국 개인 정원 중의 으뜸’을 유지한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창랑정)

아늑하고 소박한 경치를 자랑하는 창랑정에 들어서면 동산과 연못이 지붕을 하고 벽체를 세운 복도를 사이 두고 마주 바라보는데 벽에 난 다양한 모양의 창으로 정원의 경치가 보여 운치를 자아낸다.

창랑정 정자는 동산의 동쪽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 정자에 청(淸)나라 때 박학(朴學)의 대가 유월(兪樾)이 쓴 ‘창랑정(滄浪亭)’ 세 글자가 새겨져 있다.

송(宋)나라 때 정원의 대표인 창랑정은 북송(北宋) 때 시인 소순(蘇舜)이 입지를 구매한 후 정자를 짓고 ‘창랑의 물이 맑거든(滄浪之水淸兮) 내 갓끈을 씻는다(可以濯吾纓)’는 뜻을 빌어 창랑정이라 이름했다고 전해진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호구산)

소주에는 아름다운 정원도 있고 빼어난 산수도 있으며 문화재도 곳곳에 즐비한데 소동파(蘇東坡)의 말처럼 ‘소주를 유람하면서 호구(虎丘)산을 보지 못하면 유감’임으로 호구산을 빼놓을 수 없다.

소주성의 서북쪽에 위치한 호구는 오왕 합려가 죽은 후 묻힌 곳인데 그로부터 사흘 뒤 ‘백호가 그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고 전해져 호랑이 언덕이라는 의미로 호구라 이름하게 되었다. 25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호구산은 소주성의 대표적인 경관이자 ‘오중(吳中)의 제일 명승’이라 불리기도 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소주 자사(刺史)로 있을 때 호구산에 물을 끌어 들이고 언제를 쌓아 산 좋고 물 맑은 곳으로 만들었다. 오늘날도 아름다운 호구산에는 볼거리가 아주 많이 집중되어 있다.

(사진설명: 호구산의 사탑)

그 중 가장 유명한 명소가 바로 천 년이 넘도록 비스듬히 솟아 있는, 세계 제2의 사탑인 운암사탑(雲岩寺塔)이다. 예스럽고 웅장하고 기이한 이 탑은 소주고성의 심벌로 자리매김했다.

그 밖에도 호구산에는 오왕 합려의 아늑한 무덤과 그 무덤에 깃들어 있는 신비한 이야기, 옛날 강의를 들으려고 천 명이 줄지어 앉았다는 천인석(千人石)바위 등 다양한 경관이 있다.

“달 지고 까마귀 우는데 하늘 가득 찬 서리 내리고(月落烏啼霜滿天), 강가다리 옆에서 고기잡이 등불 바라보다 시름 속에 잠을 청하네(江楓漁火對愁眠). 고소성 밖 저 너머에 한산사라는 절이 있는데(姑蘇城外寒山寺) 한밤중에 울리는 종소리 여기 객선까지 들려오누나(夜半鐘聲到客船)”라는 당나라 시인 장계(張繼)의 명시 <풍교야박(楓橋夜泊)>이 바로 호구산의 일각을 보여준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한산사)

풍교는 사실 강남에 흔한 석조 아치교이다. 대운하(大運河)가 소주를 경유하면서 이 곳에는 오가는 선박이 모여 들어 옛날에는 밤이 되면 물길을 막아 고요한 안식처가 되었으며 다리를 봉쇄한다는 의미의 봉교(封橋)로 불리다가 장계의 시로 인해 풍교(楓橋)라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풍교 옆에 위치한 한산사는 14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한산사 대웅전의 오른쪽에는 1906년 일본인이 기증한 구리 종이 하나 걸려 있는데 이 종은 당시 동시에 두 개를 주조해서 하나는 일본 관산사(館山寺)에 걸려 있다.

굳이 장식하지도 않고 자랑하지도 않지만 멋진 풍채를 자랑하는 도시가 바로 소주이다. 넓은 가슴에 함축적이고 내적이고 우아한 소주문화를 품은 소주는 누구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아름답고 아늑한 도시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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