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4 08:40:57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46] 태안: 태산 기슭의 도시

(사진설명: 아름다운 태안)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마흔 여섯 번째는 태산(泰山) 기슭의 도시 태안(泰安)이다. 태안은 태산으로 인해 조성되고 태산으로 인해 내외에 이름이 자자한 역사 문화의 유명한 도시가 되었다.

태안은 태산으로 인해 예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잡았는지 모른다. 태안은 제왕과 귀족이든, 문인과 묵객이든, 일반 백성이든 똑같이 뜨거운 열정으로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을 포용한다.

산동(山東) 중부에 위치한 태안은 고대 제로(齊魯)의 중심지였다. 오악의 으뜸인 태산이 솟아 있고 문수(汶水)강이 감돌아 흐르며 물산이 풍부한 태안은 천 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사진설명: 태안의 고건물)

태안은 중화민족의 중요한 발상지 중 하나이다. 5,000여년 전에 이 곳에서는 눈부신 대문구(大汶口) 문화가 잉태되어 중국문명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현재 태안 도심에 위치한 대문구 문화유적지에는 대문구 문화 발전의 전 과정이 전시되어 이 곳에서는 2000여년 간 존속한, 모계씨족 사회로부터 부계씨족 사회로 이행하는 대문구 문화의 특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태안성(泰安城)은 당(唐) 나라 중반에 규모를 형성해 송(宋)나라 때인 972년에 봉선(封禪)지로 선정되었으며 제왕들의 봉선의식과 종교의 영향으로 ‘신주(神州)’라 불리게 되었다.

(사진설명: 웅장한 태산)

금(金)나라 때 나라와 백성의 평안함을 기원해 ‘태산이 평안하면 사해가 모두 평안하다(泰山安而四海皆安)’는 말에서 두 글자를 따서 태안(泰安)이라 개명했다.

태안의 명성은 오악의 으뜸인 태산과 직결된다. 자연경관이 웅장하면서도 아름답고 줄지은 산이 중후함을 보이며 굵은 가지의 소나무와 거대한 바위, 자욱한 운무의 태산은 웅혼함 속에 밝음을 가지고 고요함 속에서 신비로움을 보여준다.

중국의 산수를 집대성한 태산은 ‘오악의 으뜸’이오, ‘천하 제일 산’이라 불리며 거기에 수천 년에 걸친 정신문화의 침투와 영향으로 인한 인문경관이 어울려 중화민족 정신문화의 축소판이라 불린다.

(사진설명: 태산의 십팔반)

십팔반(十八盤)은 태산 등정에서 지세가 가장 험준한 구간이다. 도합 1,600여 개의 계단으로 구성된 십팔반은 태산의 심벌 중 하나이다. 양쪽에 깎아 지른 벼랑이 막아 서고 그 사이로 아찔한 계단이 정상을 향해 뻗어 있는데 멀리서 십팔반을 바라보면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운제(雲梯)를 방불케 한다.

태산의 웅장함이 집중된 십팔반 등정에서는 태산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십팔반을 다 오르면 태산의 또 다른 심벌인 유명한 남천문(南天門)이 나타난다.

과거에 ‘천문관(天門關)’이라 불린 해발 1,460m의 남천문은 비룡암(飛龍岩)과 상봉령(翔鳳嶺) 사이의 저지에 세워져 있다. 양쪽에 높은 산 봉우리가 있고 그 사이의 문이 마치 열린 하늘의 문을 방불케 한다고 해서 이름하여 천문(天門)이다. 누각 모양의 건물로 된 남천문은 돌로 문틀을 쌓고 그 위에 붉은 벽의 건물을 지었으며 지붕에는 노란 기와를 얹어 웅장함을 연출한다.

(사진설명: 아늑한 흑룡담)

태산 서계(西溪)의 백장애(百丈崖)에서는 폭포가 소리치며 쏟아져 내린다. 자욱한 물보라를 날리는 폭포는 벼랑 아래에 담소를 형성하는데 이 담소가 동해와 연결되어 용이 자유롭게 두 곳을 오간다는 전설이 전해져 이름이 흑룡담(黑龍潭)이다.

서계의 서쪽에 선자애(扇子崖)라는 바위가 하나 있는데 툭 튀어나와 높이 솟은 바위산 모양이 마치 부채와 같다고 해서 이름이 선자애이다. 아찔한 바위에는 ‘선인장(仙人掌)’이라는 명인의 마애석각이 새겨져 있다.

선자애에 서서 북쪽을 바라보면 웅장한 용각산(龍角山)과 아담한 구녀채(九女寨)가 한 눈에 안겨오고 서쪽으로는 오래봉(傲徠峰)의 빼어난 비경이 펼쳐지며 동쪽에서는 맑은 물 넘실대는 용담댐이 청산에 박힌 보석처럼 눈부신 빛을 뿌린다.

(사진설명: 장엄한 태산의 일출)

이 밖에 태산에는 정상에서 보는 일출과 운해(雲海), 서리꽃, 불광(佛光) 등 네 가지 기이한 경관도 있는데 그 중 가장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경관이 일출이다.

한 줄기 빛이 여명 전의 어둠을 밝히고 이어 동쪽 하늘의 검은 장막이 서서히 하얀색으로 변하다가 붉은 색으로 변하며 곧 눈부신 황금색으로 변하고 그 속으로 붉은 태양이 두둥실 떠오른다.

운무가 자욱한 이른 아침이나 황혼 때 태산 정상에 서면 저 멀리 청색과 홍색의 둥근 그림자가 나타나는데 그 속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려 불상의 머리에 비낀 아우라를 방불케 한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대묘의 송천황전)

요임금과 순임금에서 시작해 진(秦)과 한(漢)을 거쳐 명(明)과 청(淸) 의 황제에 이르기까지 태산에 대한 옛 사람들의 숭배는 끊이지 않았다. 태산은 수천 년 동안 역대 제왕들이 봉선(封禪) 의식과 제사를 치르는 신산(神山)이었다.

그들은 봉선의식과 제사를 치르면서 태산 곳곳에 절을 짓고 바위에 글을 새기는 것으로 태산에 대한 경모와 기탁의 심경을 나타냈다. 바로 그런 것들이 모여 태산의 풍부한 인문경관을 형성했으며 태산이 ‘중국문화’의 축소판이 될 수 있었다.

태안성 중심선 상의 메인 건물인 대묘(岱廟)는 앞쪽으로 통천가(通天街)와 연결되고 뒤로는 태산과 하나를 이룬다. 대묘에는 북경(北京) 고궁의 태화전(太和殿), 곡부(曲阜)의 대성전(大成殿)과 함께 ‘중국 삼대전’으로 불리는 송천황전(宋天贶殿)이 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태산)

옛 사람들은 태산 서남쪽의 땅에 제사를 지내는 사수산(社首山)에서 출발해 호리산(蒿里山)을 거쳐 하늘에 알리는 옥황정(玉皇頂)으로 오르는 길은 걸음마다 높아져서 ‘지옥’에서 시작해 ‘속세’를 거쳐 ‘천당’으로 가는 길이라고 인정하며 이로부터 인간세상을 벗어나 선경에 들어선다고 생각했다.

태산의 숭고한 지위로 인해 중국의 역대 명인들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태산과 끈끈한 인연을 맺어 태산에 오르고 태산에 글을 남겼다. 그로 인해 태산에는 20여 곳의 고건물과 2,200여 점의 마애석각이 남아 있다.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조그맣게 보인다(登泰山而小天下)’ 는 공자(孔子)의 말은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고 사람들에게 태산 등정의 본보기를 보여 많은 사람들이 태산등정을 꿈꾸었다.

(사진설명: 태산의 마애석각)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반드시 산의 꼭대기에 올라(會當凌絶頂) 주위 산들의 작음을 둘러보리라(一覽衆山小)’라고 태산에 대한 동경의 마음을 읊었다.

문인묵객들의 이런 글은 태산이라는 이 문화의 명산에 장대함과 아름다움, 기이함을 가미했다. 삼국(三國)시기의 문학자 조식(曺植)은 ‘나는 원래 태산인(我本泰山人)’이라고 말하며 태산에 문화적 함의를 부여했다.

오늘날 태안은 도시와 산이 하나가 되었다.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문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태산과 모던한 현대화 도시 태안은 옛 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를 이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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