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5 08:48:06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47] 준현: 아름다운 산중의 도시

(사진설명: 아름다운 준현)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마흔 일곱 번째는 아름다운 산중의 도시 준현(浚縣)이다. 역사와 풍경이 있는 옛 도시 준현은 교통이 불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대신 옛 도시의 원초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그래서인지 무척 고요하다.

옛적에 여양(黎陽)이라 불렸던, 하남(河南) 중부에 위치한 이 곳은 산은 높지 않으나 도교와 불교를 품고 도시는 크지 않으나 자공(子貢), 사언(謝偃)과 같은 많은 성인과 학자를 낳았다.

넓은 하남북부 벌판에 불쑥 솟은 대임산(大任山)과 부구산(浮丘山) 두 큰 산 사이에 위치하고 황하(黃河)의 물길을 마주한 준현은 ‘두 산이 한 도시를 품은’ 독특한 구도를 자랑한다.

(사진설명: 준현 고성의 고건물)

2000여 년의 세월 속에서 준현은 많은 명인들을 배출했다. 그 중 춘추(春秋)시기 학자 자공은 공자(孔子)의 72현자 중 앞자리를 차지하고 서한(西漢)시기 경학(經學)자 가호(賈護)는 <좌씨춘추(左氏春秋)>의 중요한 전승인이다.

당(唐)나라 초반의 구어체 시인 왕범지(王梵志)는 중국 통속시의 선례를 열어 그의 시는 ‘범지체(梵志體)’라 불린다. 또 명(明)나라 때의 명인 왕월(王越)은 ‘문무를 겸한 인재’이다.

명나라 때 축조된 준현고형은 오늘날도 여전히 본연의 모습을 유지해 성벽과 문치각(文治閣), 여공사(黎公祠), 한림원(翰林院), 한림부(翰林府) 등 다수의 고건물들을 완전하게 보존하고 있다.

(사진설명: 준현의 웅장한 옛 성벽)

‘남경(南京)에서 북경(北京)까지 준현성에 비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준현성벽은 안팎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명나라 때인 1370년에 축성을 시작한 준현성벽은 현재 서문에서 해자를 따라 북쪽으로 뻗은 700m 길이의 한 구간과 관란문(觀瀾門), 윤숙문(尹淑門) 두 성문만 남아 있다.

준현의 중심에 높이 솟은 웅장한 문치각은 준현고성의 심벌이다. 누각의 신축연대는 미상이나 명나라 때인 1615년에 누각에 종을 걸어 문치각은 일명 종루(鐘樓)라고도 부른다.

청(淸)나라 때인 1709년 누각을 개축하고 ‘문화로 다스린다’는 의미를 따서 문치각이라 개명했다. 20m 높이의 문치각은 상하로 누각과 단 두 부분으로 구성되고 단의 사면에 통로가 조성되어 통행이 가능하다.

(사진설명: 공중에서 본 문치각)

단 위에 지어진 누각은 높이가 10m에 달하고 2층으로 되어 있으며 두 겹으로 된 지붕은 네 귀퉁이가 건듯 들려 예스러움을 자랑한다. 단에 오르면 가까이에서 누각도 보고 난간에 기대어 저 멀리 준현고성을 한 눈에 볼 수도 있다.

고성 남문 안쪽에 위치한 일명 자공사(子貢祠)라고도 하는 여공사는 명나라 때인 1499년에 준현 지현(知縣) 유대(劉臺)가 최초로 축조했다. 지금까지 보존된 사당건물은 청나라 때인 1875년에 당시의 지현 장보희(張寶禧)와 자공의 자손인 단목계민(端木繼敏)이 공동으로 개축한 것이다.

준현의 서대가(西大街)에 위치한 한림원과 한림부는 청나라 때인 1896년 자공의 제78대 손인 단목조침(端木照琛)이 축조한 것이다. 이밖에 준현성 안팎에는 승선탑(昇仙塔)과 북관문창각(北關文昌閣), 은영방(恩榮坊), 자공 무덤 등 유적과 청나라 때 가옥들이 보존되어 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대비산)

드넓은 벌판에 우뚝 솟은 대비산(大伾山)과 부구산은 수려한 바위산에 녹음이 무성하며 그 사이로 풍부한 인문경관이 즐비한, 옛 도시 준현에 박혀 있는 두 개의 아름다운 보석이다.

대비산은 해발고도가 135m밖에 안 되지만 옛날 우임금이 물을 다스릴 때 이 산에 오른 것으로 인해 중국 최초의 사서인 <상서·우공(尙書·禹貢)> 편에 기록되었으며 일명 ‘우공명산(禹貢名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대비산의 독특한 지리적 여건으로 역대로 십여 명의 제왕이 대비산을 찾았고 수많은 명인들도 대비산이 산에 올라 소리 높이 시를 읊거나 바위에 시작을 남겼다.

(사진설명: 대비산의 일각)

한무제(漢武帝)는 대비산에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당(唐)나라 시인들인 진자앙(陳子昻)과 왕유(王維), 송(宋)나라 문인인 범성대(范成大), 명(明)나라 철학자인 왕양명(王陽明) 등 20여명의 문인이 대비산에 올라 명시들을 남겼다.

산의 모양이 두둥실 떠 있는 배와 같다고 이름한 부구산은 동쪽으로 대비산을 이웃하고 서쪽으로 강물과 이웃하며 북쪽으로 고성을 내려다 보는 험준한 산세를 자랑한다.

부구산에도 9곳의 불교 건물과 수많은 정자, 누각 등 고건물이 즐비한데 그 중 북위(北魏) 시기의 천녕사(天寧寺)는 웅장한 석불상으로 유명하다. 22.37m 높이의 석불상은 1600여년 전에 황하강 기슭의 바위에 조성한 것이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부구산)

중국에서 가장 일찍 축조하고 중국 북방에서 규모가 가장 큰 마애불상인 이 석불상은 종교문화와 석각예술, 역사 등 풍부한 함의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석불상의 근처에는 또 유명한 당나라 <대임산명(大任山銘)> 마애석각과 경장각(經藏閣), 풍택묘(豊澤廟), 용동(龍洞), 여조동(呂祖洞), 우왕묘(禹王廟), 양명서원(陽明書院), 호천도원(壺天道院) 등 명승이 산재해 있다.

부구산을 중심으로 하는 준현 정월회(正月會)는 범위가 준현고성과 남관(南關), 서관(西關), 동관(東關), 대정산(大怔山)을 아우르는 성대한 규모의 민속행사이다.

(사진설명: 준현고성의 정월회 현장)

명나라 중반에 시작된 준현 정월회는 해마다 음력으로 정월 보름부터 말까지 이어진다. 이 때면 곳곳에서 신도들이 각자 두령의 인솔하에 깃발을 날리며 벽하궁(碧霞宮)으로 직행한다.

벽하궁에 모인 신도들은 폭죽을 터뜨리고 향을 피우며 신의 보우를 기원한다. 또 행사기간 부구산 산정에서도 주야로 폭죽을 터뜨리고 벽하궁 곳곳에서는 향불이 끊이지 않는다.

준현의 거리와 골목은 인파로 넘치고 교외로 나가는 도로도 마차로 꽉 차서 준현은 ‘집집마다 신도들로 넘치고 거리는 마중과 배웅으로 한가할 사이가 없다.’ 또 하남은 물론이고 인근의 하북(河北)과 산동(山東), 안휘(安徽), 산서(山西)의 상인들도 모여들어 준현고성은 더욱 떠들썩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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