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6 08:56:00 출처:cri
편집:李仙玉

[고성-48] 종상: 明 황제의 고향

(사진설명: 아름다운 종상)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마흔 여덟 번째는 명(明) 나라 가정(嘉靖)제의 고향 종상(鍾祥)이다. 역대에 걸친 선인들의 창조와 수천 년에 걸친 문명의 누적은 4,000㎢에 달하는 이 땅에 많은 문화유산과 명승고적을 남겼다.

유구한 문화전승과 풍부한 초(楚) 문화의 함양, 짙은 문화적 색채, 명인들이 남긴 많은 작품이 눈부신 역사와 문화를 창조하여 종상은 ‘대지의 박물관’이라 불린다.

호북(湖北)의 중부, 한강(漢江) 유역의 중부, 형초(荊楚) 대지에 위치한 종상은 광활한 살찐 땅과 우월한 지리적 여건을 갖춘다. 아름다운 한강이 남북으로 도시를 흘러 지나고 한강의 양쪽 기슭에 넓은 벌판이 펼쳐져 있으며 동쪽과 서쪽에 기복을 이룬 산발이 마주한 종상은 산지와 구릉, 벌판, 강물, 하천, 호수를 아우르는 다양한 지질경관을 거느린다.

(사진설명: 종상의 예스러운 고건물)

문자기록으로 남아 있는 종상의 역사는 2700여년에 달한다. 기원전 701년 종상은 초(楚)나라의 배도(陪都)였으며 그 후 명칭도 수차 바뀌어 석성(石城), 장수현(長壽縣) 등으로 불렸다.

명(明)나라 때인 1531년 가정제가 출세하면서 당시 이 곳을 관장하던 안륙천(安陸川)이 명 왕조의 3대 직할부(直轄府) 중 하나인 승천부(承天府)로 격상되고 상서로운 의미를 따서 종상이라 개칭했다.

초나라의 배도로써 종상은 초문화 발상지 중 하나이자 초문화 발달의 중심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종상의 두터운 역사문화 문을 열면 산뜻하면서도 낭만적인 초문화의 기운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막수촌)

초문화의 형성과 발전은 종상이라는 이 땅을 떠날 수 없다. 중국 최초의 시가 총집인 <시경(詩經)>에 수록된 305편의 시작 중 초나라 운치를 띤, 종상과 연관되는 시작은 <관저(關雎)>와 <한광(漢廣)> 등 수십 편에 달한다.

종상에는 또 고란대(古蘭臺)와 자서대(子胥臺), 백설루(白雪樓), 청설루(廳雪樓), 송오정(宋五井), 양춘백설비(陽春白雪碑), 막수도(莫愁渡), 막수촌(莫愁村)을 비롯한 유적들이 눈부신 별처럼 초나라의 아름다운 하늘을 수놓는다.

종상은 가정제가 태어나고 자라서 황제가 된 곳이다. 명나라 때인 1521년 무종(武宗)제가 붕어했다. 무종제에게 아들이 없는 관계로 자수(慈壽) 황태후와 당시의 대학사 양연화(楊延和)는 ‘동생이 형의 뒤를 잇는’ 조훈(祖訓)에 따라 흥헌왕(興獻王)의 장남을 신 황제로 옹립했다. 그가 바로 가정제이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현릉)

가정제는 보위에 오른 후 부친을 헌황제(獻皇帝)로 추존하고 황제릉의 규격에 따라 부친의 무덤을 개축했다. 그 무덤이 바로 현릉(顯陵)이다. 그리고 1539년 가정제의 모친도 현령에 묻혔다.

1519년에 개축을 시작해 40년 만인 1559년에 완공한 현릉은 둘레가 3,600m에 달하고 붉은 담과 노란 기와의 고건물이 기복을 이룬 울창한 숲 속에 위치해 유난히 눈에 띈다.

30여 개의 웅장한 고건물 군락으로 구성된 현릉은 많은 유적을 완전하게 보존하고 있다. 산자락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순덕산비(純德山碑)와 칙유비(勅諭碑), 외명당(外明塘), 하마비(下馬碑), 신홍문(新紅門), 구홍문(舊紅門), 어비루(御碑樓), 망주(望柱), 석상생(石像生), 영성문(欞星門), 구곡어하(九曲御河), 내명당(內明塘)이 줄지어 있다.

(사진설명: 공중에서 본 현릉)

건물들은 혹은 서로 가까이 혹은 멀리 떨어져서 청산 속에 질서 있게 자리한다. 멀리서 현릉을 바라보면 하늘이 내린 듯 조화의 하모니를 이루는 건물과 자연이 건축예술과 환경미학의 걸작을 펼쳐보인다.

구도와 건축수법이 독특한 현릉은 명나라 황제릉 중 과도단계의 무덤에 속한다. 금병(金甁) 모양의 외라성(外羅城)과 구불구불 흐르는 어하, 용린(龍鱗)의 신도(神道), 꽃 속에 두 마리 용이 새겨진 가림벽, 바깥쪽과 안쪽에 조성된 명당(明塘) 등은 모두 명나라 황제릉에서 유일무이하다.

특히 ‘능 하나에 무덤 두 개가 있는’ 능침구도는 명나라 황제릉은 물론이고 중국의 역대 제왕릉에서도 이 곳밖에 없다. 요대(瑤臺)로 연결된 두 개의 지하궁전은 더욱 신비로워 세인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막수호)

종상은 유구한 역사와 눈부신 문화를 보유한 동시에 아름다운 자연 경관도 거느린다. 국립대홍산(大洪山) 풍경구의 한 부분인 객점(客店) 자연풍경구에서는 무성한 숲과 많은 온천, 여기 저기 산재한 동굴이 명물이다.

그 중 도가(道家)의 조사(祖師)인 황석공(黃石公)이 수련한 동굴이라 전해지는 황선동(黃仙洞)은 큰 규모와 기이함, 아름다움, 절묘함으로 내외에 이름이 자자하다.

대홍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황선동은 동굴 입구의 높이가 100m, 너비 70m에 달하며 동굴에 들어서면 구불구불한 동굴이 높고 낮게 펼쳐져 심히 장관이다.

(사진설명: 황선동의 내부)

황선동에는 또 2만 ㎡에 달하는 연못 ‘요지(瑤池)’가 있어 ‘산 위에 동굴이 있고 동굴 속에 선인이 있으며 동굴 속에 하천이 있고 하천 중에 동굴이 있는’ 기이한 경관을 형성한다.

전설에 의하면 동해용왕의 아들 황룡(黃龍)이 지하물길을 따라 이 곳의 요지에 이르러 선녀가 목욕하는 것을 몰래 엿보았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대로한 옥황상제가 황선(黃仙)을 보내 황룡을 잡아오게 했는데 그 소식을 들은 황룡이 도주하는 바람에 황선은 황룡을 잡지 못하게 되었다. 옥황상제의 명을 집행하지 못한 황선은 하늘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 곳에서 수련했으며 그로 인해 동굴의 이름이 황선동이라는 전설이다.

사계절이 분명한 기후와 산 좋고 물 맑은 환경으로 인해 종상의 사람들은 모두 건강과 장수를 누린다. 제3차 중국 인구조사에 의하면 백세 이상 노인의 수가 중국에서 제3위를 차지하는 종상은 ‘장수의 고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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